우리 집에서 10분 남짓 되는 거리를 도보로 걸어가면 큰 건물의 대형마트가 있다. 대부분은 물건을 많이 살 것에 대비해서 자동차를 끌고 가지만, 나는 사시사철 변하는 날씨를 음미하며 산책하는 것을 좋아해서 종종 걸어가곤 한다. 그리고 손에 아담한 장바구니만 가볍게 쫄랑쫄랑 들고 가기 때문에 물건을 그만큼 알맞게 사게 된다는 점도 무엇보다 기분 좋은 일로 느껴진다.
그날의 날씨는 나무마다 하얀빛과 분홍빛으로 물들인 벚꽃이 피는 봄날이었다. 사람의 가슴속에 화사한 설렘을 선사해 주는 벚꽃이 여기저기 만개해서 기분이 좋은 건지, 그 아주머니를 만나서 벚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그 아주머니의 존재를 인지하기 전까지 마트를 가는 길은 내게 그저 그런 평범한 길이었다.
우리 집에서 마트까지 이어진 길은 약간의 경사가 진 내리막길로 쭉 이어져있다. 오르막길이 아니라서 힘이 들진 않지만, 그럼에도 얕은 내리막길이라 걸을수록 자연스럽게 발걸음에 속도가 조금씩 붙는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풍경이 무심코 지나쳐서 기억에 남지 않는다. 어차피 매일 보는 길목이고, 늘 항상 그 자리에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마트에 다다랐을 때, 나는 스마트폰의 잠금화면을 켜서 메모장 어플을 열었다. 메모장에 장보기 목록을 체크한 후에 오늘 꼭 사야 할 것들 중에 무겁지 않을 만한 품목을 고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밝고 높은 톤의 목소리로 누군가가 인사를 했다. 나에게 건넨 인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아주머니의 밝은 목소리가 나의 사소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목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더니 나를 바라보는 그 아주머니와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 아주머니는 요구르트를 판매하는 아주머니인데, 전동 카트를 세우고 그 자리에 서서 내게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 나는 그 아주머니에게서 요구르트를 구매한 적이 없었고, 구매할 일도 없고, 앞으로도 쭉 초면일 예정이었는데, 처음 본 나에게 인사를 한 것인가 하고 당황했다. 혹시나 해서 내 등 뒤로 그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는 사람이 있는 줄 알고 주변을 돌아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 아주머니는 정확하게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 나는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바로 대처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얼굴로 스마트폰을 보는 척하며 걸어갔다. 나도 인사를 할 걸 그랬나? 아니지, 새로운 영업 전략일 수도 있잖아. 괜히 요구르트 살 일도 없고. 혼자 낮게 중얼거리며 나는 마트로 발걸음을 향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나는 다시 요구르트 아주머니를 만났다. 이번에도 인사를 하면 어떻게 하지? 하고 힐끔 쳐다봤다. 다행히 그 아주머니는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고, 때마침 많은 사람들이 뒤섞여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그 길을 지나쳐서 걸어갔다. 모르는 사람이 내게 말을 거는 것에 낯을 가리고 불편해하는 내 모습이 조금 별로였다.
그 인사가 뭐 별거라고 맞받아치지 못하고 피해버리는 것일까.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요구르트 아주머니의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나는 어김없이 외출 준비를 했다. 산책하기 좋은 봄바람이 부드럽게 얼굴을 스쳤고, 나는 걸으면서 머릿속으로 오늘 먹을 커피 메뉴를 떠올렸다. 풍미가 진한 맛있는 라테를 사 먹을 기대감에 경쾌한 발걸음으로 또다시 마트로 향했다. 그러자 멀리서 요구르트 전동카트가 보였다. 설마, 이번에도 내게 인사를 하지 않겠지? 별생각 없이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 아주머니가 며칠 전과 같이 나를 향해 밝고 높은 톤의 생기 어린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나는 절반의 확률로 그 아주머니가 내게 인사를 건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 아주머니를 바라보고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곧이어 그 아주머니는 또 누군가를 향해 밝게 인사를 건넸다.
아, 그냥 인사만 하는 것이구나. 나에게 대화를 시도해서 요구르트를 팔려고 하는 목적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그저 단순하게 인사만 건넸다. 그래도 이번엔 내가 그 아주머니의 인사를 받아주어서 언짢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인사를 받아준 나의 태도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어. 오히려 괜찮았어!
그로부터 또다시 며칠이 흘렀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에 오늘은 해님이 숨고 바람이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날카로운 찬 바람에 두툼한 외투를 입고 머리에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현관문 자석걸이에 달린 마스크를 챙겨서 집을 나왔다. 온통 흐린 하늘에 날이 어둑어둑해서 도시의 건물들이 전부 칙칙한 무채색으로 보였다. 별 볼일 없는 풍경에 눈을 흐리멍덩하게 뜨고 마스크를 쓰고 마트를 향했다.
낯가림이 심한 나는 마스크를 쓰면 비교적 편안한 기분을 느낀다. 얼굴의 드러나는 감정을 감추기 위해 애써 표정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고, 긴장감 없이 일관된 무뚝뚝함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어서이다. 나는 나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불편한 긴장감을 가지고 에너지를 담아서 말을 건네는 성향이 있다. 심드렁하고 무뚝뚝하게 대할 줄을 모르는 나를 위해 마스크라는 것은 무척 편리한 수단이다. 나는 계속해서 눈에 힘을 풀고서 캡모자로 인해 좁아진 시야만 보고 길을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그 아주머니는 이렇게 흐린 날에도 변함없이 밝고 높은 톤의 생기 어린 목소리로 나에게 상냥한 인사를 건넸다. 순간, 나는 계획도 없이 나의 단전에서부터 에너지를 끌어모아 그 아주머니에게 들리게끔 소리 내어 인사를 했다.
"네, 안녕하세요!"
무의식 속에서 충동적으로 의욕이 앞선 순간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나를 향해 생긋 눈웃음을 지어 웃어주었고, 나도 눈웃음으로 화답을 했다. 분명 흐린 하늘로 어둑어둑하고 칙칙한 날었는데, 갑자기 나의 정신이 맑아지고 시야가 밝아졌다. 커피를 마시기 전이라 아직 내 몸에 카페인이 흡수되지 않았는데, 수액을 맞아 에너지가 도는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의욕이 생겨 발걸음에 힘이 났고, 남은 시간을 무엇을 하며 즐겁게 보낼까 하며 여러 가지를 떠올렸다.
내게 단순히 건네는 그 아주머니의 인사 한마디는 실로 대단한 영향을 주었다. 나는 그날 하루를 아무 감정 없이 무심하게 보냈을 뻔했는데, 그 아주머니를 만나고 나서 흐린 날씨는 그대로였지만, 마치 햇빛이 들어 날이 화창해진 것처럼 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 이후로 그 아주머니가 머무는 길목은 마치 어린이보호구역의 옐로우 카펫처럼 은은하면서 밝은 빛이 났다. 아주머니의 따뜻하고 상냥한 인사 한마디로 인해 나는 마트 가는 길에 항상 설렘을 간직하며 다닐 수 있었다. 오히려 그 아주머니가 없는 날에는 아쉬움이 마음에 감돌 정도였다. 야트막한 온기가 뿌리내린 그 길목을 지날 적에 나의 발걸음은 오늘도 내일도 경쾌하기 그지없다.
처음 인사를 받았을 때의 회피한 나의 창피한 모습부터 마침내 아주머니에게 힘차게 인사를 건넬 수 있던 나의 당찬 모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리 수월하지도 않았다. 내가 변화하는 모습이 무척 재밌었고 끝내는 나의 마음에 쏙 들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인사성이 밝지 않은 편이라 아는 사람을 만나도 일단은 피한 채로 고민부터 했다. 인사를 할까 말까 하고 말이다. 반가운 마음이 들지 않으면 인사를 하지 않았고, 반가운 사람이거나 필요한 사람이면 웃는 가면을 쓰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인사를 받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니, 인사라는 것은 무척 반갑고 기쁜 일이었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나에게 애써 아는 척을 해주고 웃으며 활기를 전해주는, 사소하지만 선한 일이라고 여겨져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이렇게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절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리고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어도 선한 영향력이라는 것은 언제든 어디서든 행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