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를 읽고
나의 사다리는
진정한 것, 진실 사랑은 깎이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바로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진실은 무수한 거짓을, 사랑은 반드시 상처를 양산하고야 만다. 사랑의 가장 큰 흔적인 십자가에 매달린 그분의 죄목이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요한 수사는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다. 그분의 허락도 받았고 이제 마음 가는 대로만 하면 되는데 그것은 그분과의 관계 회복 디딤돌이었다. 잃어버린 사람들로 인한 채워짐의 시작이었다.
또한 예라는 대답은 삶에서의 고통들을 내 것으로 기꺼이 소화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물로써 신앙이 되지 않을까. 안양의 중앙 성당에서 현대 영성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강의에서 유일하게 기억하는 대목이었다. 과연 야훼 이레에 어울리는 대답이다. 모든 것들을 마련해 주시기에 나는 그저 순명하기만 하면 된다. 다만 믿음과 정의의 토대 아래서. 또한 분처럼 신중하기도 하다. 봉헌물에 흠집이나 손상으로 망가져 있으면 그 의미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요자에게나 공급자에게나.
마지막으로 요한 수사의 고뇌 중 하나인 죽음에 관한 글이 눈길을 끈다. 태어나기 전에 인간에게 최소한 열 달은 준비하게 하는 신은 죽을 때는 아무런 준비도 시키지 않는다. 바로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를 의미한다는 성인들의 말씀을 기억하게 한다. 이모부의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는 사촌오빠들의 행동으로 충분히 드러났다. 큰오빠는 넋이 나간 것 같았고 작은 오빠는 수많은 ‘왜’를 외치며 벽과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그 모습들이 앞으로 내게 다가올 고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통과의례이기에. 요한 수사는 가까운 동료 선배 수사를 많이 잃는다. 동기 수사들을 교통사고로 그는 몸도 마음도 많이 상한다. 가까운 이의 갑작스러운 부재는 혼란에 빠뜨리지만 처해지는 상황들이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한다. 이것이 신비스러운 그분의 섭리다.
과거는 그분의 자비에 미래는 그분의 섭리에 현재는 그분의 은총에 맡겨드려야 한다는 아우구스투스 성인의 말씀을 떠올려본다.
예수님의 떨어지려는 옷깃에라도 닿아있었으면 좋겠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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