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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부 시민기자단 Oct 29. 2020

긴 여행의 시작

거주 시설에서 생활할 때에 가끔 여행을 갔었습니다. 주로 단체 여행이었지요. 사전에 직원분들이 계획한 대로 여행을 다니니 편안히 다녀서 좋았지만, 단체 여행이 그렇듯 개인 시간이 없어 아쉬울 때가 많았습니다. 시설에서 독립한 후 여러 가지 좋은 점들이 많지만, 특히 여행을 단체가 아닌,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싶은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은 비록 더 고생스럽고 불편해도 늘 즐겁고 행복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긴 여행을 가기 전에는 겁이 납니다. 이번에 또 어떤 고생이 하게 될지 사실 걱정이 많습니다. 탈시설 후 낯선 동네, 처음 보는 이웃들과 살아가는 것이 제게는 긴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내년이면 6년 동안 살던 장애인 자립생활 주택에서 나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합니다. 시설에서 나올 때도 오랜 준비와 큰 결심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자립생활센터(IL센터)의 도움으로 주택을 지원받았습니다. 이렇게 6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시설에서 자립 후 7년(현재는 4년으로 변경됨)이 되면 이제는 정말 진정한 자립을 해야 합니다. 살 집도 스스로 마련해야 하고, 지금까지 먹고, 씻고, 자고... 혼자 살기를 해야 합니다.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먹고, 씻고, 자는 것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인데 말입니다. 기초생활수급비 80만원과 원고를 기고하고 받는 약간의 수익으로 생활하는 장애인이 7년 이내에 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특히 이런 환경에서 구한 집과 동네에 장애인 편의시설은 바랄 수도 없습니다.   

  

저는 긴 여행을 이제 시작하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장애인은 비용 등으로 원래 살던 곳에서 살지 못하고 먼 동네로 이사를 갑니다. 가까이에 아는 사람도 없고, 장애인 편의시설도 부족한 새 동네에서 시작하는 삶. 장애인에게는 극한 여행과 같습니다. 저는 다행히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은평구에 집을 얻게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이번에 떠나는 긴 여행에 여러분도 함께해 주세요. 그리고 저처럼 다른 장애인들도 자신들이 살던 동네에서 살 수 있길 바라봅니다. 




김삼식 기자             

호기심과 물음이 많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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