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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부 시민기자단 Dec 28. 2021

시설? 혹은 탈시설?

우리하나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은평구 장애인 탈시설조례제정 토론회 발제문

 한때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한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내 아이보다 하루 더 사는 것 이라고 무슨 슬로건처럼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자식이 먼저 가기를 바라는 부모는 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내 아이의 공격성으로 인해 주위에 있는 주간보호센터에서 모두 거절을 당하다보니 이런저런 방법을 찾다가 나도 한 10년 전쯤에 아이를 시설에 보내려고 알아본 적이 있었다. 경기도를 비롯해 여기저기 상담하고 문의해봤지만 공격성이 있는 자폐성장애인이라고 사실대로 말을 했더니 모두 거절을 했다. 이유는 시설 거주인이 모두 방어를 못하는 장애인이라서 안 된다고 했다. 거절의 이유가 타당하든 아니든 그때 당시도 시설에 들어가기가 참 어려웠다. 내 아이가 시설에 들어갔으면 지금 나도 보건복지부 앞에서 피킷 들고 탈시설 반대를 외치며 또 다른 절박함을 소리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뒤로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는 내 아이는 햇빛 한 번 제대로 못보고 나는 몇 년의 세월을 술과 정신과 약으로 버텼다. 탈시설을 외치는 발달장애인 가족이나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연일 탈시설 반대를 외치는 부모들 마음은 모두 대안 없는 현실 앞에 절규를 하는 같은 마음인 것이다.        

   

 발달장애인 보호자들은 ‘탈시설이다’, ‘시설이다’를 놓고 공방을 펼치거나 갈등을 겪은 적이 없다. 그냥 현실에서 내가 내 가족이 어떻게 살아갈까?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도 최선의 방법을 찾아 우리발달장애인들한테 주어진 현재 시스템 안에서 선택을 했을 뿐이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왜 시설을 찾는가?     


 물론 내가 살던 곳에서 내 집처럼 편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발달장애인이 이용하는 것들은 대부분이 사업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사업이란 영리를 목적으로 하고 지속적인 경제활동이 필요한 것이다. 사업은 철저히 운영자, 오너, 기관, 센터 즉 주체 측에 모든 포커스가 조정되어 있다.      


 현 시스템에서 그래도 우리 성인중증발달장애인 부모들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고 이용하는 곳이 주간보호센터다. 물론 발달장애인도 다양하게 진행되는 주간보호센터를 좋아하고 그곳에서 많은 사회활동을 한다. 그런데 그 주간보호센터 마저 사업이란 이름이 따라다닌다. 사업이 아닌 제도화 되어야 한다. 그래서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이 있다면 제도권 밖의 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서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진정한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     


 주간보호시스템과 단기보호시스템이 같은 곳에서 이뤄져야 한다.      


 작년 8월에 발달장애인한테 일어나서는 안 될 사고가 있었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데 24시간 돌보다보니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지칠대로 지친 어머니가 잠깐 지쳐 쓰러져 잠든 사이에 발달장애인 자녀가 평소에 먹던 약을 한꺼번에 다 먹은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약을 둔 방문을 깜빡하고 잠그지를 않았던 것이다.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결국은 깨어나지를 못하고 말았다.  

 올 봄에는 평소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가 안 좋은 일을 당하셨다. 발달장애자녀를 어디 보낼 곳이 없어 치료시기를 놓치고 혼자서 전전긍긍하다가 불행한 일을 당하셨다.      


나 어떻게 살아, 죽을 것 같아!


 며칠 전에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어머니 한분이 전화가 왔다.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 보니 온몸에 멍이 들고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발달장애인자녀를 묶어 놓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19가 발생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성인중증발달장애인은 집에서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돌봄의 주체인 보호자와 부딪힘이 더욱 심해졌다.      


 그 밖에도 많은 일들이 지금도 발달장애인 가정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에 서울시발달장애인센터에 전화를 했었다. 발달장애인 자녀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하룻밤이라도 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성인중증발달장애인을 돌봐줄 수 있는 곳이 있느냐고 문의한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센터가 열악해서 그런 시스템은 없다고 했다. 국가가 사회가 특히 예산부족이라는 이유로 우리 성인중증발달장애인의 삶을 외면하면 할수록 성인중증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은 건강과 생명에 계속 위협을 받을 것이다. 우리 성인중증발달장애인 보호자들은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고 싶을 때 늘 이용할 수 있고 내 아이가 하룻밤을 자더라도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해 할 것이다.     


 공격성이 있거나, 자해, 타해 등 성인중증발달장애인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언제부턴가 ‘도전적 행동’이라고 말을 한다. 물론 중증발달장애인의 인권적인 측면에서 그들을 조금이라도 존중하고 사회적인 거리감을 줄여주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현장에서는 도전적 행동이라 쓰고 문제행동이라고 읽는다. 도전적인 행동은 그냥 문제행동에 불과하다. 우선 주간보호센터 이용이 어렵다. 재가 성인중증발달장애인은 주로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되고 그곳에서 모든 사회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도전적 행동이 있는 발달장애인은 그곳에서도 배제되고 퇴출을 당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차별금지법이 생기고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2015년도에 시행되면서 최중증성인발달장애인의 차별은 더욱 심하게 되었다. 이유는 안전관리지침이란 이유로 그들을 배제하고 차별한다.     


어느 유명한 인권강사한테 질문을 던졌다. 타해를 하면서 다른 이용자의 인권침해자로 내 아이는 아무 곳도 이용할 수가 없는데 내 아이 인권은 어디에서 찾을까요? 답변은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이 그 문제로 제일 골치 아파합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한테는 사업이지만 누군가는 절박한 삶이다. 성인중증발달장애인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프로그램은 보통 사업성을 띄고 있다. 그러다보니 단기 내지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인발달장애인의 주요 활동처인 주간보호센터 조차 5년이란 기간을 두고 있다. 물론 이용자가 최적화 된 곳은 종결없이 그러나 필요에 의해서 소급적용하며 기간이 없는 곳도 있다.     


 우리 성인중증발달장애인 당사자와 보호자는 지역에서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 주간보호와 단기보호가 한 곳에서 진행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내 아이가 주간보호센터에서 활동을 하다가 갑자기 보호자의 돌봄이 어려워질 때 긴급 돌봄으로 전환되는 주단기보호센터가 꼭 필요하다. 보호자들이 안심하고 필요에 따라서 긴급 돌봄을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은 지역사회에 꼭 있어야 한다.      


 현재 최중증성인발달장애인의 사회활동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챌린지2가 있는데 이는 오히려 최중증성인발달장애인의 주간보호센터 이용에 어려움과 갈등을 만들고 그들한테는 낙인이 되는 곳으로 보호자들이 기피하고 싶은 곳이다.      


 차라리 최중증을 위한 주단기보호센터를 설립해서 그들을 위한 최적의 공간으로 다른 센터와 차등지원체계로 운영되어 최중증성인발달장애인과 그 보호자가 사회에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 진정한 인권이 될 것이다.      


 우리 성인발달장애인 보호자가 원하는 삶은 그렇게 거대하거나 큰 욕심이 있는 게 아니다. 발달장애인자녀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보호자가 아프거나 돌봄에 어려움이 있을 때 지역에서 편하게 돌봐줄 수 있는 시스템과 특히 엄마가 이 세상을 끝날 때 마음 편하게 맡기고 눈 감을 수 있으면 그것이 최고의 바람이다. 


 사업이 아닌 삶. 발달장애인의 삶을 한 땀, 한 땀 엮어서 그들의 삶을 그냥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는 일. 탈시설이든 시설이든 모든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은 그러면 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립지원주택은 재가 성인중증발달장애인 보호자들은 그림의 떡이라고 말을 한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설명을 들어보니 사업의 모든 포커스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한테 맞춰져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우리 성인중증발달장애인 누구나 쉽게 거주할 수 있는 그야말로 진정한 자립생활의  공간으로 자리매김이 되는 날도 올 것이라는 희망 또한 갖고 있다.     




손창명 기자      


잘 웃고, 잘 먹는 사람.          

속으로만 삐지는 사람.          

자연에 순응하는 사람.          

인권과 관련된 기사를 누구보다 잘 써 내려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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