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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부 시민기자단 Dec 27. 2021

그들은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 걸까?

‘언어장애’라는 표현을 바꾸고 싶습니다.

나는 소리 내어 말을 할 수가 없다. 

지금은 글자판, 태블릿 PC, 문자, 이메일 등 여러 가지 도구와 채널로 소통을 한다. 6~7세 무렵 나는 사람들에게 의사표현을 어떻게 했을까? 당시 어른들은 “삼식아, 내 말이 맞으면 눈 한번 감고 틀리면 두 번 감아.” Yes or No로 내 의사와 감정을 표현하다 보니 인위적으로  의사 표현을 할 때도 있었고, 너무 답답할 때는 누워서 그냥 울었다. 사람들을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내가 눈을 깜박이면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신기했었나보다. 이렇게 눈을 깜박깜박하는 게 나의 첫 번째 대화의 방법이었다.       


그럼 비장애 아동은 어떨까? 어떤 책에서 읽었다. 

말을 못하는 아기라고 하여 말을 안 걸어주면 안 된다고 한다. 아기는 울음도 자기의 표현이며 안아주면 좋아하고 겁을 주면 운다. 말로 표현하지는 못해도 기쁨, 슬픔,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끊임없이 말을 들려주면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언어도 같이 성장한다.      


살면서 당황스러운 순간이 있다.  

나와 대화를 나눠야 하는 사람들이 내 옆에 나는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종종 내가 아닌 그 사람만 보고 대화를 한다. 물론 언어 장애인과 처음 대화를 하는 경우, 대화하는 방법을 모르고, 어색해서 그러는 건 이해가 된다. 특히 장애에 대해 잘 모르는 비장애인이 그런 행동을 하면 충분히 이해를 한다. 하지만 장애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그러면 솔직히 '내가 귀찮나?'하는 생각이 들어 섭섭한 것도 사실이다.    

  

의외로 나와는 대화 시도 하지 않는 채 활동 지원사와 말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지원사가 통역사 역할도 해주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100% 내 마음을 다 알까? 특히 일에 관해서는 나와 직접 대화해야 할 내용들이 있다. 당사자인 내가 어떤 말을 해야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활동지원사와 얘기를 나눠버리면 힘이 쭉 빠져 말하기가 싫어진다.  

의사소통 권리라는 것이 있다. 여러 가지 권리 중에 ‘내가 직접 애야기하고 내가 직접 들을 권리’가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장애인과 의사소통 할 때 보호자나 활동지원자들이 대신해서 대화하곤 한다. 이 때문에 보완대체의사소통이 필요 없다고도 한다.   

  

수어에서도 상대의 눈. 얼굴을 마주 보고 말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이건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인 것 같다. 의사소통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청자와 화자간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다. 따라서 의사소통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eye-contact, 상호작용이 이루어져야 의사소통이 가능할 수 있다. 나의 활동지원사를 보면서 대화하는 것이 과연 나와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헬렌 켈러 여사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지만 대학 교육을 받았고 훌륭한 글을 썼다. 언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신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I am not dumb”


그녀는 왜 자신이 언어 장애인이 아니라고 말했을까? 

여전히 '언어 장애인'이라는 용어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으로 심한 의사소통 장애는 중도 의사소통장애(severe communication  impairments)로 언급되어 왔습니다. 국제 보완대체의사소통학회(ISAAC)와 미국언어치료사협회(ASHA)는 중도 의사소통 장애처럼 이전에 사용된 용어들을 대체하기 위해 복합적인 의사소통  요구(complex communication needs: CCN)을 채택했습니다. 이 용어는 의사소통의 복잡성을 강조하여 의사소통 맥락, 상대자, 방식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료-사람과 소통)




김삼식 기자             

호기심과 물음이 많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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