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영화 내 사랑을 보고..
1930년 아일랜드 배경으로 그린 <내 사랑> 이 영화는….
깊은 숲 속에 한 채의 하얀 집이 있었다. 그 가정부가 올 때까지 한 눈에도 인간관계도 별로 없는 어부가 살았다. 그는 일하기도 힘든데 식사도 차려주며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공모를 냈다.
그녀는 애초에 사람들의 동정 따위는 버렸다. 가족들의 시선도 불편했었고 더구나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재산도 빼앗기고 그녀의 존재도 사라졌다. 배신감에 의지할 때도 없어 무작정 그 공모 모집을 보고 가정부에 마음을 맡겨 숲 속에 하얀 집으로 향했다. 후회마저 잃어버린 채. 올바른 길인지도 모른 채. 그냥 자신에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상-하였다. 그녀의 배경은 성인이 되었어도 숙모와 함께 살았지만, 이성적인 대우도 아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취급을 받으면서 살았다. 어부도 몸 하나 가누지 못하던 그녀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고 폭행과 성관계까지 강제로 요구했었다.
이 시대적인 여성의 삶에는 소수자들의 삶도 그려내고 있었다. 과거와 지금도 사회적 배경에는 항상 소수자의 삶은 무언가에 좌절과 목마름이 있었다고 말하곤 한다. 이것도 전혀 다른 말이 아니다.
두 사람도 다른 어두운 방에 살다가 혼자인 게 익숙했던 삶에 차근차근 서로의 이야기. 또는 마음까지도 알게 된다. 그도 점차 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그녀도 취미로 그리는 그림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게 된다. 그러자 서로 선명하게 동정도 연민도 아닌, 사랑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그림이란 존재가 있었는데 훗날에는 사람들이 그녀의 작품들을 사랑해주었다. 그를 위해 가정부의 일을 다 해놓고 틈틈이 벽마다 그리기 시작한 이유는 단지 동정. 사랑도 아니라, 이제야 '사람으로서 보는구나!'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 숲 속에 하얀 집은 곁으론 차갑고 휑한 달리 집 안에는 어두웠던 그것들을 그림으로 덮을 수가 있었다. 어쩌면 지고지순한 사랑의 표현 방법이 아닐까?
이 영화에 느낌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장애'란 자체가 없었다. 자신도 조금 불편할 뿐이었고, 본인의 의사 전달을 분명히 말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리고 그녀의 한마디 '내 인생 전부가 이미 액자 속에 있어요.' 어쩌면 액자 속에는 여성 차별이 없는 세상을 그려내고 있었다.
김삼식 기자
호기심과 물음이 많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