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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부 시민기자단 Oct 25. 2022

희망이 꿈으로만 끝나지 않으리라

 “평범한 것이 얼마만큼 값지고 소중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시간이 날 때 문뜩 해보게 된 게 언제부터인지. 생활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지만 세상을 즐기며 살아가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리라고 본다. 특히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살 수 없기에 항상 그에 따른 삶의 그늘을 더 크게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장애인일 것이다. 꿈의 실현에 있어 쉽게 한계에 부딪히는 문제 때문에 작은 것들에 더욱 감사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모습이다.      


 내가 예전에 사회복지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게 될 때만 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은 확실해 보였다. 중도장애란 삶의 걸림돌을 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돌다리가 될만한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내 소신이었다. 하지만 ‘도전의식의 부족이 문제였을까, 인성이 그만큼 따라오지 못해서였을까?’ 사실 전의 복지관장님과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있지만, 뇌전증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물론 어느 장애인들 고운 시선으로 보겠는가?      


 아직 난 투병 중이지만 희귀난치성질환이지 불치병은 아니기에 언젠가 완치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신앙의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지만 뇌전증에 대한 세상의 눈은 차갑고 여전히 냉소적이다. 흔히 보게 되는 경련과 아주 가끔씩 일어나는 발작으로 인한 쓰러짐 때문에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과 우려가 평범한 생활은 무리일 거란 편견이 되었다. 그것이 사회생활에 쉽게 동화 못하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또한 장애명이 개명된 지 10년이 지나도록 아직 뇌전증장애라고 말하면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간질장애’에서 세계 최초로 학회에서 개명된 ‘뇌전증’이란 호칭조차도 아직까지 잘 모르는 분들에게 널리 알려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이 가장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선입견과 편견은 장애당사자들을 사회의 구석으로, 어두운 곳으로 내몰았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그 편견을 깨고자 시도하는 뇌전증 장애 당사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몇 년 전 지역축제에서 다른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시도해 본 적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잠깐에 불과했다. 필요한 건 꾸준한 당사자들의 노력과 인내심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 역시 원하는 만큼 부지런한 인식개선의 중심에서 알리고 싶은 심정이기도 하다.     


 회상해보자면 2019년 우리나라에서 4년째 접어드는 의미 있는 ‘세계뇌전증의 날 기념식’에 나 역시 뇌전증장애인 중의 한 사람으로 처음 함께할 수 있어 소중한 시간이 되었던 게 기억난다. 그날 대한뇌전증협회 홍승봉 회장님은 함께하신 국회의원들께 뇌전증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인한 사람들의 차별과 소외라는 문제점에 대해 무엇인지 하나하나 밝혀주어 ‘뇌전증지원법’을 토대로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그동안처럼 낙오자로 살 수밖에 없었던 삶에서 벗어나도록 모두가 당당하자고 힘주어 말했고 공청회에 모인 국회의원들과 우리 모두가 함께 공감대를 가질 수 있었다. 

 후반부엔 ‘뇌전증 지원법’의 제정이 왜 시급한지 그 당위성에 대해서 최경애(한림대학 강남성심병원 사회사업팀장)이 뇌전증 환자의 삶의 문제점과 사회의 병든 시선과 부조리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전달해 주는 짧았지만 큰 교훈을 주는 시간도 갖게 만들었다. 고쳐져야 할 사회복지 서비스 문제점은 생애 전반에 걸친 변화와 위기에 따른 적절한 대응책으로 사례관리 차원의 지원이 필요함을 말했고, 환자들이 질병의 노출에 대해 매우 꺼리는 경향 때문에 사회적 낙인을 가져오고 그것이 정당한 사회서비스와 혜택 받기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므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한 문제점으로 전문가의 부재가 사회적 장애를 가져오는 사회인식이나 불합리한 사회제도가 변화하기 위해 정책의 변화, 사회적 옹호, 학교 교육 및 일반인에게 사회교육이 이뤄지기 위해 전문가의 양성이 시급한 과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진단 초기부터 최선의 치료와 재활, 원만한 사회복귀 적응을 위한 의료사회복지사 개입, 수가 반영이 필요함과 함께 지역사회에선 연계기관을 통해 더욱 지역 내 인식개선과 옹호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지역사회에서의 시정 변화를 위해서 시간이 걸릴 것으로 개인적으로 느끼게 된다.


 치매, 뇌졸중, 뇌전증을 신경과 3대 질환 중 하나라고 하면서도 뇌전증은 우리나라 정부에선 복지정책에서 그동안 너무도 사람들에게 무시와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두 질병은 사람들의 관심 안쪽에 있었지만 뇌질환들 사이에서 뇌전증은 정부지원의 차이가 너무도 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아픔을 참아가면서도 일하고 싶은 욕구가 더 커서 감추고 싶은 생각에 말하지 않았던 장애당사자들이 더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었을지 모른다.


뇌질환들 사이에 빈부 격차가 너무 커지고 있어 심각한 수준으로 한국의 뇌전증 치료는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정도이다. 뇌자도(MEG)란 수술에 중요한 검사장비를 보면 미국, 유럽에선 100대 정도가 가동 중이고, 일본에만도 50대가 가동 중이라고 하지만 정작 한국에선 단 한 대조차도 없는 실정이다. 또한 지원센터도 전무한 상태이기에 치료에 대한 발전 가능성이 희박하게만 보였다.


 뇌질환들 사이 뇌전증 연구에 대한 지원계획도 없고, 정부 지원의 차이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뇌전증 치료에 대한 발전 가능성은 너무도 낙후되어 있는 상태다. 뇌전증 환자들을 표적으로 부당하고 잔인한 삭감이 벌어지고 있다. 마지막 희망, 죽을 각오로 받는 뇌수술인데 부당 삭감을 피하기 위해서는 수술을 대강하던지 아니면 병원 측이 손해를 봐야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임상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비급여 항목들의 급여화에 너무 많은 재정이 낭비되고 있다. 그 예로 경도인지장애 뇌의 MRI, 각종 유전자 검사들을 들 수 있다.


 복지사업법 규정에 의하면 사회복지사 자격을 가진 자 중 환자의 갱생, 재활과 사회복귀를 위한 상담 및 지도 업무 담당자 한 명 정도는 종합병원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의료사회복지 수가 확대 적용이 필요함에 대해서도 제언하면서 뇌전증 환자 장애인만 갖는 의료, 사회적 특성이 특수하게 반영된 별도의 ‘뇌전증지원법’의 필요성과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활성화를 위해 ‘뇌전증지원센터를 통해서 진단부터 퇴원 후의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위한 필요를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정부에서 내놓은 5년 계획으로 332조 원 들여 삶의 질을 OECD 20위로 상승시키기 위한 보건복지부의 제2차 사회보장계획이 뇌전증 환자의 삶의 질 향상되기 위해 도움 될 수 있도록 생각으로만 끝나지 않고 현실로 다가오도록 주변의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유사 법률과의 관리체계와 사업내용 비교와 더불어 꼭 필요한 사안을 기초로 한 법률안이 우선 제정되고 그 후에 운영과정에서 보완점을 찾아 개정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하겠다. 뇌전증환자와 같이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험상품을 개발하고 출시한 곽근호 에이플러스에셋그룹 회장이 영예의 Purple Light Awards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끝부분엔 환우와 가족, 정부에게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뇌전증 환자들이 더 이상 주위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로 인한 상처받음으로 아팠던 가슴을 치료받을 수 있도록 주변의 따뜻한 시선과 배려가 필요함을 각인시키고 갈 수 있는 만남이 되어 의미 있었다. 정부의 진심 어린 관심이 더욱 필요함 또한 느낄 수 있었던 유익한 자리였다. 


 지금부턴 앞으로 그동안 준비하고 계획했던 뇌전증 환자와 장애인을 위한 플랜이 그저 꿈으로만 끝나지 않으리라. 지역사회에서 어디서나 당당한 모습의 나를 일깨워 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것이 초석이 되어 큰 성을 쌓을 때까지 차근차근 준비해야겠다.




김석인 기자

조심스럽지만 할 말은 하는 사람

전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

사회에 진한 애정이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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