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부 시민기자단 Oct 25. 2022

역지사지

 “여보세요. 저는 담당자 대신 전화 받은 누구라고 합니다.”


 ‘대신 전화를 받다니....?’

 난 의문을 넘어 무시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걸려온 전화였는데 담당자가 청각장애인이라 통화가 힘들어서 대신 통화를 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전화업무가 주요업무인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일전에 공단에 담당자와 통화를 시도했는데 불발이었다. 하루 종일 전화를 하는지 전화하는 족족 통화 중 이었다. 결국 손을 든 것은 나였다. 이러할진대 주요 업무를 못 한다니 아니, 누군가가 대신 해야 한다니 너무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울러 복지의 최전선인 공단에서 복지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자괴감도 불렀다. 최적의 자리에 최적의 인물을 배치하는 것 또한 복지라고 생각한 터였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얼마 가지 못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장애 때문에 그만두어선 안 된다”는 복지사 님의 말을 듣고 바뀌었다. 그건 그렇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난 이해하려고도, 이해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만약 누군가가 ‘넌 타자가 느리니까 글 쓸 자격이 없어. 시도해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니 일찌감치 그만 둬’라고 포기를 종용한다면 쉽게 물러나겠는가. 난 분명 글 쓰는 것에 대해서 열정도 있고 흥미도 있는데, 글 쓰고 있으면 더없이 행복해지는데 내게서 그 행복을 빼앗겠다고?     

 절대. never다. 오히려 오기발동이다.      


 그런데 나는 그 공단 직원의 행복을 무시한 셈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상대방의 생각이 보인다. 그 생각이 들리고 느껴진다.     


 사실 나도 장애인이지만 다른 장애유형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음을 시인한다. 사실, 아버지의 한쪽 귀에는 고막이 없다. 유년시절 귀에서 흐르는 고름을 감추기에만 급급하셨단다. 중이염. 간단한 질병이지만 그 당시 약은 커녕 끼니를 걱정해야 할 판국에 병원은 사치였다. 그런 상태로 비장애인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가정을 이루셨다. 그 좋아하시는 음악도 볼륨을 높이면 안되기에 소리를 줄여가며 즐기셔야 했다. 그러한 아버지 모습이 연민 반, 분노 반으로 점철되곤 하였다.     


 아마도 그것이 시각이나 청각장애인에게 투사된 모양이다. 내 잠재의식에 숨어있던 녀석이 기어코 일어선 셈이다.      


 조금 느리고 돌아가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 옳다. 




김은주 기자

긍정적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사람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솔직한 사람


매거진의 이전글 희망이 꿈으로만 끝나지 않으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