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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부 시민기자단 Mar 28. 2023

병원이야기 2

부제: 응급실에 장애인 혼자서 온다면...

수술실에 들어갔다. 


다리 수술 전. 대기실에서 의료진이 환자에게 이름. 혈액형, 담당 의사 이름. 자신의 데이터를 알고 있는지를 물어본다. 언어장애 때문에 활동지원사도 대기실에 같이 들어가 나 대신 대답해 주었다. 약간 마음이 불편했다. 그 의료진이 우리들이 무슨 관계냐고 물었고, 장애인 활동지원사라고 대답했다. 장애계를 전혀 모르는 보통의 비장애인들은 아직 '장애인 활동지원사'라는 직업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의료진은 장애인 활동지원사라는 직업에 관해 물어보고 "병원에서는 다 똑같은 보호자예요.''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할 때도 이 말은 맞다. 병원 밖에서는 내가 선택하면 활동지원사가 나의 일상을 지원해준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보호자에게 돌봄을 받아야 한다. 지금 몸이 아파 죽겠는데 어떤 걸 선택하고 일일이 의견을 낼 수가 없어 보호자(활동지원사)를 믿어야 한다.      


주말에 근무하는 활동지원사는 청각 장애인이다. 비장애인과는 구화(음성언어가 아닌 입 모양으로 의사소통하는 것)로 대화를 할 수가 있다. 사고 후. 영화관에 찾아가 지원사에게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달라고 하고서는 은평성모병원 응급실에 갔다. 택시는 응급실 아닌, 정문에 세웠다. 평소와 달리. 활동지원사도 이러한 상황이 당황스러운 나머지 몇 분 동안 응급실을 찾으려고 헤맸다. 보통이면 휴대전화 앱 지도로 길을 찾곤 하는데 추운 병원을 안팎으로 다니며 정신을 못 차리는 상황이었다. 겨우겨우 나와 글자판(AAC)으로 소통 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묻고 또 물어 응급실을 찾아냈다.      


이제 시작이다. 


사고 경위는 오로지 혼자서만 알기 때문에 의료진에게 자초지종도 내가 말해야만 했다. 자세히는 말하지 못하고 대략적으로 "휠체어 나뭇가지 끼어 넘어졌다." 이렇게 지원사에 통해 전달했다. 보통 비장애인은 그를 볼 때 청각장애인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의료진은 계속 지원사에게 물었는데, 마스크 때문에 구어 소통이 어려워 이중으로 통역사 역할도 하느라 빨대로 하나하나씩 찍어야 해야만 했다. 더는 죽을 것 같아 평일 비장애인 지원사에게 와달라고 부탁했다. 고맙게도 아무런 불편 없이 와주었다. 진료 접수부터 X–ray도 찍고 웬만한 검사 과정 보조를 해주고 비장애 지원사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일들은 우리 둘이 해야만 했는데 늘 글자판으로 소통할 수 있어 큰 걱정을 안 했다. 


수술 판정을 받은 후 응급실에서 임시로 다리를 깁스하고 누워 있는데 정말 수 없이 많은 검사를 받았다. 활동지원사가 기본적으로 환자를 케어하는 것은 어려움이 없었지만 검사를 받을 때마다 보호자가 해야할 일이 많았다. 예를 들면 의료진이 "oo에서 검사 확인서를 받아, 갖고 오세요.''란 말했을 때 바로 실행해야 하지만, 그는 나에게 와선 다시 설명을 듣고 수행했다.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보태서 하나부터 백까지를 다시 내 설명을 듣고 수행했다. 침이 묻는 빨대로 얘길 하니까 입에 침독도 올라왔었다. 무언가 조치가 필요해 메모지에 <삼식 씨한테 직접 말해주세요.> 적었고 그다음부터 의료진들도 내게 말했다.      


그의 장애를 모르는 것도 아닌데 솔직하게 숨이 막혔다. 서로 극단적으로 한계를 느껴서 내가 ''진짜! 형 활보 못 한다.''말했었다. 나도 그때는 장애 감수성이 사라졌다. 몇 번을 싸웠고, 또다시 이해했다.  정말 도저히 수술 날에는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몰라, 그 지원사랑 대화를 했다. ''내가 수술 후에 의식이 있다면 설명을 하겠는데 부분 마취하고 잠 오는 마취도 해서 정신 못 차리고 기절한다. 그날은 여성 지원사에게 근무 부탁하겠다.'' 이렇게 말했는데 다행히 그도 이해해 주었다.      


이 활동 지원사에게는 코로나19(팬데믹) 시대에 하나의 불만이 있는데 이젠 필수적인 '마스크'다. 이것 때문에 그의 모든 일상생활은 2차 장애가 왔다. 동네 편의점에 가든 어떤 상황이나 사람을 만나든 잘 못 알아들어 장애를 원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종종 내게 사회에 대해 짜증도 내었다. 팬데믹 전에도 활동할 때도 기본적인 우리만의 생활 패턴을 만들었다. 활동을 하다가 이 패턴에서 상황 맞게 무엇을 보충할 때도 있었고 무엇을 뺄 때도 있었다.  한마디로 외출할 때면 항상 시뮬레이션을 한다. 그에게는 병원 입원 자체는 정말 시뮬레이션도 없는 생방송이었을 거다. 단, 의료진이 투명마스크를 사용했더라면 나를 간호를 하는 데 있어 조금 편하진 않았을까? 


퇴원 후에 그의 한마디 ''병원 경험이 없어서 미안해요.'' 만약 그 활동지원사의 주위 사람 중에 사고가 나서 의식 없이 응급실에 둘이서만 갔었다고 하면 그는 어떤 대처를 했을까? 이번에 들었던 생각이다. 적어도 전국에 있는 대학 병원급에 장애인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사회복지사가 단 1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사회에서는 장애인 시설은 축소하고 탈시설 규모는 확대되고 있다. 수많은 환자가 있는 응급실에 우리처럼 장애인들끼리 왔을 때 또는 장애인이 혼자서 온다면 의료진들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사고(事故)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날 수가 있다.            




김삼식 기자

역으로 생각하고 이미지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

호기심과 물음이 많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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