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야기 2

부제: 응급실에 장애인 혼자서 온다면...

by 서부 글쓰기모임

수술실에 들어갔다.


다리 수술 전. 대기실에서 의료진이 환자에게 이름. 혈액형, 담당 의사 이름. 자신의 데이터를 알고 있는지를 물어본다. 언어장애 때문에 활동지원사도 대기실에 같이 들어가 나 대신 대답해 주었다. 약간 마음이 불편했다. 그 의료진이 우리들이 무슨 관계냐고 물었고, 장애인 활동지원사라고 대답했다. 장애계를 전혀 모르는 보통의 비장애인들은 아직 '장애인 활동지원사'라는 직업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의료진은 장애인 활동지원사라는 직업에 관해 물어보고 "병원에서는 다 똑같은 보호자예요.''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할 때도 이 말은 맞다. 병원 밖에서는 내가 선택하면 활동지원사가 나의 일상을 지원해준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보호자에게 돌봄을 받아야 한다. 지금 몸이 아파 죽겠는데 어떤 걸 선택하고 일일이 의견을 낼 수가 없어 보호자(활동지원사)를 믿어야 한다.


주말에 근무하는 활동지원사는 청각 장애인이다. 비장애인과는 구화(음성언어가 아닌 입 모양으로 의사소통하는 것)로 대화를 할 수가 있다. 사고 후. 영화관에 찾아가 지원사에게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달라고 하고서는 은평성모병원 응급실에 갔다. 택시는 응급실 아닌, 정문에 세웠다. 평소와 달리. 활동지원사도 이러한 상황이 당황스러운 나머지 몇 분 동안 응급실을 찾으려고 헤맸다. 보통이면 휴대전화 앱 지도로 길을 찾곤 하는데 추운 병원을 안팎으로 다니며 정신을 못 차리는 상황이었다. 겨우겨우 나와 글자판(AAC)으로 소통 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묻고 또 물어 응급실을 찾아냈다.


이제 시작이다.


사고 경위는 오로지 혼자서만 알기 때문에 의료진에게 자초지종도 내가 말해야만 했다. 자세히는 말하지 못하고 대략적으로 "휠체어 나뭇가지 끼어 넘어졌다." 이렇게 지원사에 통해 전달했다. 보통 비장애인은 그를 볼 때 청각장애인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의료진은 계속 지원사에게 물었는데, 마스크 때문에 구어 소통이 어려워 이중으로 통역사 역할도 하느라 빨대로 하나하나씩 찍어야 해야만 했다. 더는 죽을 것 같아 평일 비장애인 지원사에게 와달라고 부탁했다. 고맙게도 아무런 불편 없이 와주었다. 진료 접수부터 X–ray도 찍고 웬만한 검사 과정 보조를 해주고 비장애 지원사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일들은 우리 둘이 해야만 했는데 늘 글자판으로 소통할 수 있어 큰 걱정을 안 했다.


수술 판정을 받은 후 응급실에서 임시로 다리를 깁스하고 누워 있는데 정말 수 없이 많은 검사를 받았다. 활동지원사가 기본적으로 환자를 케어하는 것은 어려움이 없었지만 검사를 받을 때마다 보호자가 해야할 일이 많았다. 예를 들면 의료진이 "oo에서 검사 확인서를 받아, 갖고 오세요.''란 말했을 때 바로 실행해야 하지만, 그는 나에게 와선 다시 설명을 듣고 수행했다.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보태서 하나부터 백까지를 다시 내 설명을 듣고 수행했다. 침이 묻는 빨대로 얘길 하니까 입에 침독도 올라왔었다. 무언가 조치가 필요해 메모지에 <삼식 씨한테 직접 말해주세요.> 적었고 그다음부터 의료진들도 내게 말했다.


그의 장애를 모르는 것도 아닌데 솔직하게 숨이 막혔다. 서로 극단적으로 한계를 느껴서 내가 ''진짜! 형 활보 못 한다.''말했었다. 나도 그때는 장애 감수성이 사라졌다. 몇 번을 싸웠고, 또다시 이해했다. 정말 도저히 수술 날에는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몰라, 그 지원사랑 대화를 했다. ''내가 수술 후에 의식이 있다면 설명을 하겠는데 부분 마취하고 잠 오는 마취도 해서 정신 못 차리고 기절한다. 그날은 여성 지원사에게 근무 부탁하겠다.'' 이렇게 말했는데 다행히 그도 이해해 주었다.


이 활동 지원사에게는 코로나19(팬데믹) 시대에 하나의 불만이 있는데 이젠 필수적인 '마스크'다. 이것 때문에 그의 모든 일상생활은 2차 장애가 왔다. 동네 편의점에 가든 어떤 상황이나 사람을 만나든 잘 못 알아들어 장애를 원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종종 내게 사회에 대해 짜증도 내었다. 팬데믹 전에도 활동할 때도 기본적인 우리만의 생활 패턴을 만들었다. 활동을 하다가 이 패턴에서 상황 맞게 무엇을 보충할 때도 있었고 무엇을 뺄 때도 있었다. 한마디로 외출할 때면 항상 시뮬레이션을 한다. 그에게는 병원 입원 자체는 정말 시뮬레이션도 없는 생방송이었을 거다. 단, 의료진이 투명마스크를 사용했더라면 나를 간호를 하는 데 있어 조금 편하진 않았을까?


퇴원 후에 그의 한마디 ''병원 경험이 없어서 미안해요.'' 만약 그 활동지원사의 주위 사람 중에 사고가 나서 의식 없이 응급실에 둘이서만 갔었다고 하면 그는 어떤 대처를 했을까? 이번에 들었던 생각이다. 적어도 전국에 있는 대학 병원급에 장애인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사회복지사가 단 1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사회에서는 장애인 시설은 축소하고 탈시설 규모는 확대되고 있다. 수많은 환자가 있는 응급실에 우리처럼 장애인들끼리 왔을 때 또는 장애인이 혼자서 온다면 의료진들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사고(事故)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날 수가 있다.




김삼식 기자

역으로 생각하고 이미지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

호기심과 물음이 많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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