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연 <목호> 배경지 제주 -외돌개, 범섬

제주 땅의 몽골 목자, 목호들의 최후를 좇다

by 서찬휘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로 시작하는 노래 한 소절에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필시 제주도가 그리운 사람일 터다. 누군가에겐 신혼여행지로, 누군가에겐 올레길과 한라산으로, 또 누군가에겐 맛있는 먹거리로 기억되는 남쪽의 작지만 큰 섬나라. 그리고 이젠 <효리네 민박>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의 일상 공간으로 조명되고 있는 곳이 바로 제주다.


범섬.JPG 범섬


하지만 제주는 그저 즐거운 여행지로만 기억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섬이다. 최근 대통령의 추모식 참석으로 다시금 대중의 인식선에 오른 4.3사건(1948)이 대표적인 사례다. 4.3은 국가 폭력으로 당시 제주도 전체 인구 가운데 1/10에 달하는 3만 여 명이 국가권력에게 살해당한 대량 학살 사건이다. 그러나 어디 4.3뿐일까. 4.3에 앞서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일제 최후의 일본 본토 방어기지로서 제주도민을 포함한 조선인들들이 대거 강제로 끌려와 고된 노역을 당했다. 그리고 그보다 수 백 년 전인 고려 말에는 목호의 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건 속에서 처절하게 피로 물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4.3에 비해서 덜 알려진 구석이 없지 않지만 제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이야기 중 하나인 목호의 난, 이번엔 그 주역을 소재로 한 만화 <목호>와 함께 조금은 다른 제주 여행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고려, 원, 그리고 탐라의 목호


목호란 고려 후반 제주 땅에 자리하고 있던 이들로 한자로 기를 목(牧)에 오랑캐 호(胡)를 써 ‘말을 키우는 오랑캐’를 뜻한다. 의종 대인 1153년 고려에서 현령관이 파견되며 독립국 탐라에서 고려의 한 군현인 제주가 되었던 이 섬은 고려 조정이 원나라의 침공에 굴복한 뒤 최후의 대 몽골 무장저항세력이 됐던 삼별초의 마지막 항쟁지가 됐다.


원나라는 고려 원종 대인 1273년에 고려와 연합해 삼별초를 진압하고 탐라총관부를 설치해 직접 통치에 나선다. 제주는 평생을 말 위에서 살며 초원을 달린다는 몽골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동물인 말을 키울 곳이자 일본 정벌을 위한 배를 만들 곳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원나라는 1276년 말을 키우는 목장인 목마장을 세우고 말을 들여와 본격적으로 말을 키워 공출해갔다. 이 시기에 들어온 몽골인들은 본래 이 섬에 살던 이들 속에 섞여 들어가 혼인하고 아이를 낳았다. 시작은 여인들을 겁탈하는 형태였지만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그대로 같이 살고 혼인시키고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가 자라고 세대가 갈리기를 100년이 가까워지자 섬 안에서는 본래의 탐라인과 몽골인의 피가 섞인 이들을 구분하는 일이 거의 무의미해졌다.


이들을 따로 분리해놓을 수 없게 된 이 시점에 원나라는 기울고 있었고, 고려에는 마침 공민왕이 즉위하여 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자주 정책을 편다. 하지만 제주를 다시 고려 땅으로 복속시키려는 계획만은 계속해서 실패했는데, 원이 중국 대륙에서 몰려나가 사실상 망하기 직전까지 이 섬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려 입장에서도 이제 막 중국대륙의 새 주인이 된 명의 새 황제 흥무제(주원장)가 “탐라의 좋은 말을 2천 필 내놓으라”는 요구를 해 오면서 더 이상 밀릴 수도, 그렇다고 그냥 있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리하여 고려는 백전노장 최영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목호 토벌에 나서게 된다.



만화 <목호>, 고려 왕조의 자주 의지, 그 이면의 역사를 읽다


k762534747_2.jpg <목호의 난 - 1374 제주> 표지


우리만화연대가 기획해 휴머니스트가 2014년 2월부터 펴낸 무크지 <보고(BOGO)> 1호부터 실렸던 중편 <목호>는 <정가네 소사>(2012, 휴머니스트, 전3권)로 3대에 걸친 자기 가족사를 만화로 정리한 정용연 작가의 작품이다. <정가네 소사>는 거대한 인물의 굵직한 역사가 아니라 가족 이야기 속에 흐르는 민초들의 미시사를 보여주어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목호>에서는 한층 더 원숙한 솜씨로 역사의 일면을 들춰내고 있다.


‘목호의 난’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역사에서 목호는 문자 그대로 물리쳐야 할 오랑캐다. 작품 도입부에서도 지나가는 바지만, 이효리 씨가 살면서 한층 유명해진 애월읍을 지나는 애월해안로의 다락쉼터에는 “애월읍경은 항몽멸호의 땅”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양옆엔 삼별초의 김통정 장군과 최영 장군을 형상화한 석물이 서 있다. 삼별초의 대 몽골 최후 항쟁지 항파두리와 목호와의 싸움에서 최영이 승기를 잡은 새별오름이 애월읍 안에 있기 때문이겠다. 한데 ‘몽골에 굴복하지 않은 의지’에 이어 ‘몽골 오랑캐의 잔당을 끝내 모조리 없앤 전적’을 연이어 기념하는 이 비석에서 ‘우리 민족의 결연한 자주 의지’만을 읽을 수 있을까? 만화 <목호>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만화 <목호>의 주인공은 오랑캐를 토벌하기 위해 출정한 최영이 아니라 원이 망하고 제주 안에 고립된 목호, 그 가운데에서도 목호 무리의 우두머리 격은 아닌 ‘석나리보개(또는 석방리보개)’와 그 아내인 고려 여성 ‘버들아기’다. 만화 <목호>는 실존하였으되 역사적 사건의 최고 주역까지는 아니었던 두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음으로써 ‘악독한 오랑캐 잔당을 부수는 애국 군인’과 ‘애국군인에게 토벌당하는 악독한 오랑캐 잔당’이라는 선악 및 국가 이익 구도를 쓰지 않고 오롯이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무게 중심을 맞춘다.


제주는 일찍이 백제와 신라에 조공을 바쳤으나 독립된 나라 ‘탐라국’으로서의 독립성을 유지해 왔던 역사에 비추어 보자면 고려의 한 지역으로 편입된 시기가 짧았다. 이런 곳을 몽골인들이 쳐들어가 말 키우는 목장을 만들고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을 유린한 것도 엄연히 ‘침략’이지만, 문제는 그렇게 100년이 지나 이미 너무나 많은 혼혈인이 들어섰던 시점에 “이미 저들은 모두 한통속, 아닌 자를 구분하기 힘들다”라는 논리를 들며 삼별초 진압 때의 두 배가 넘는 2만 여 명을 동원해 토벌하러 왔다는 이들을 그 땅에 태어나 살고 있던 사람들 입장에선 어떻게 바라봐야 했을까. 애초에 고려 사람이라는 인식도 크게 자리 잡지 않았고 고려 관리들의 공출에 시달리던 탐라 사람들 입장에서는 스스로가 “고려나 원이나”란 심정 위에 선 경계인 아니었을까.


작가는 이와 같은 의문점에 관해 영리하게도 도입부와 마무리에 이 건을 어떻게 바라볼 수도 있는지에 관한 힌트를 남겨두었다. 제주4.3사건의 토벌전으로 시작해 목호 토벌 이야기로 진행된 이 작품은 토벌전의 끝을 장식한 범섬에서의 집단 투신자살과 이후 잔존세력의 반란을 빌미로 삼아 몽골인은 물론 혼혈아까지 전부 죽여 없애는 장면을 보여준 후 범섬이 보이는 강정 앞바다의 ‘2014년 현재’를 언급하며 마무리된다.


새 왕조 조선은 버들아기가 죽은 뒤 ‘비록 오랑캐의 아내이나 정절을 지켰다’라는 이유로 성리학적 가치에 따라 열녀로 평가하고 비를 세웠다. 이 건을 보면 훗날 조선에서 비슷하게 반복된 병자호란 뒤에 살아 돌아온 여성들을 “화냥녀”라며 욕하며 버린 양반들이 떠올라 입맛이 몹시 쓰지만, 결국은 거기까지 포함해 국가 차원의 어떤 정의와 방향성 뒤편에서 누군가는 편리하게 이용당하고 누군가는 이름 없는 희생자로서 어느 들판 구석에 쓰러지고 치워질 수 있음을 생각게 한다. 마침 4.3이 얼마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이 작품이 보여주는 옛 역사는 오래지 않은 아픔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2019-10-16 09.39.59.jpg "애월읍경은 항몽멸호의 땅" 표석
2019-10-16 10.51.10.jpg 새별오름
2019-10-16 11.01.17.jpg 새별오름
20191016_122817_HDR.jpg 열녀정씨비
2019-10-16 14.27.18.jpg 외돌개와 범섬
PB209620.JPG 건설 중이던 해군기지와 강정천


만화와 함께 하는 여행 코스


만화 <목호>는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비교적 찾아다닐 곳이 명확하다. 올레길도 두 곳이나 지나므로 자동차든 걷기 여행으로든 몇 곳을 끼워 찾아보기에 좋다. 만화 속 석나리보개가 그토록 좋아했던 제주 향토음식 빙떡을 챙겨들고 다녀봄직 하겠다.


* 다락쉼터 – “애월읍경은 항몽멸호의 땅” 비석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462-1) : 제주 올레길 16코스 초엽. 16코스는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를 지나므로 삼별초 이야기를 만나고픈 이들에게 추천.

* 새별오름(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산 59-3) : 목호와의 전투에서 토벌군이 승기를 잡은 곳. 이곳에서 밀리면서 목호들은 지금의 강정마을인 오음벌판으로 밀려난다.

* 강정마을(서귀포시 강정동 4956) : 옛 이름은 오음벌판. 새별오름에서 밀린 목호들은 이곳에서도 지면서 범섬으로 들어가 농성전을 벌이려다 자결한다. 강정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의 정취는 멋있지만 현재 해군기지 건설로 갈등을 빚고 있다.

* 외돌개 (서귀포시 서홍동 791) : 제주 올레길 7코스 중 한 곳으로 강정마을과 더불어 목호들이 최후를 맞이한 범섬이 잘 보이는 곳이다. 우뚝 솟은 20여m 짜리 돌기둥이 신비한 느낌을 주는 곳으로, 최영 장군이 이 돌을 치장시키자 목호들이 겁을 먹고 자살했다는 전설이 전해 장군석으로도 불린다. 외돌개는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도 일제강점기 말엽 일본이 연합군 상륙에 대비해 제주도 전역에 만들었던 진지 땅굴 중 일부와 이름도 기막히게 블랙 코메디 같은 ‘회천(回天)’ 자폭 어뢰정을 숨기기 위해 만든 인공동굴 12개가 있는 곳이기도 해 또 다른 역사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 범섬(서귀포시 법환동 산1-1~2). 목호의 최후를 지켜본 섬. 현재는 무인도로 사람이 접근할 순 없으나 외돌개와 강정마을에서 볼 수 있다. 섬에는 용천수가 나오고 약간의 작물이 자란다. 사방으로 둘러친 절벽과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모양새로 올레길 탐방객들에게 사랑받는 섬이다. 목호들은 이곳에서 버티다 이후에 빠져나와 나머지와 합류하려 하였으나 선박을 동원한 최영의 포위 작전으로 계획이 어그러지자 자살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