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로 떠나보는 여행
수도권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서쪽으로 서울을 벗어나면 곧바로 마주치는 곳이 바로 부천이다.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다양한 변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끌어 안은 채 묵묵히 서울과 인천 사이를 지키고 서 있는 작은 도시.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은 바로 이 부천의 한 마을, 원미동의 풍경을 담아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소설, 그리고 만화 <원미동 사람들>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은 1986년 3월 「멀고 아름다운 동네」 편을 시작으로 1987년 8월 <한계령>에 이르기까지, 작품 구상 단계였던 1985년 발표한 원고를 고쳐 실은 「방울새」를 포함해 열한 편에 달하는 연작 단편을 묶은 작품집이다.
표제작 격인 「멀고 아름다운 동네」는 원미동의 이름을 우리말로 풀어 성경의 가나안에 비유한 제목으로, 막 부천시 원미동에 ‘우리집’을 마련해 서울서 이사 온 일가족의 다양하고 복잡다단한 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품은 이 가족이 도착한 1980년대 속의 한 마을, 원미동 23통에서 살고 있던 서민들의 모습을 골목골목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유려한 필체와 시종일관 주민들의 삶을 노골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집요하게 담아내면서도 한편으로 따스함을 잃지 않는 시선은 <원미동 사람들>을 1970~80년대가 문화예술에 필요로 했던 리얼리즘의 한 일면을 충족시키며 독자들의 공감대를 샀다.
이 작품은 한 마을의 군상극으로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부천이란 도시가 대변하는 극단적인 이촌향도의 한 일면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부천 원미동 23통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 시기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지니고 있던 면면을 압축하고 있는 셈이다.
일제 강점기가 시작한 지 오래지 않던 1914년 현재의 이름을 단 부천은 복사골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복숭아가 유명했던 고장이다. 한창 부천의 소사 복숭아가 유명하던 시기는 일본이 중국을 집어 삼키려 들던 광기의 시대로, 부천은 복숭아를 키워 경인선으로 실어보내던 식량 수탈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던 곳이 1968년 경인고속도로가 개통하고 1974년 수도권 전철 1호선이 개통되며 서울과 인천 사이의 사람과 물류가 지나가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박정희 정권이 후반으로 접어들던 이 시기는 산업화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모든 지역의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오로지 서울로 끊임없이 모여들어 일자리를 찾던 이촌향도기이며, 서울은 그만큼 정신없이 확장 일로를 걷고 있었다. 강북 개발을 억제하고 강남 이전을 유도하기도 했던 서울시지만 인구는 끊임없이 포화상태에 직면했다.
이에 당시 정부는 부천을 서울 외곽의 위성도시로 설정해 서울의 인구 포화를 막고 분산할 공간으로 삼는다. 부천이란 곳이 급속하게 서울에서 머지 않은 곳에 자리한 베드타운으로 바뀌고 그 드넓었다던 복숭아 밭이 택지 또는 공장으로 바뀐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바뀐 공간에 온갖 곳에서 모여든 옷갖 사연 속 주인공들이 터를 잡는다.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시기가 안고 있던 온갖 사회적 면면들을 부천 그리고 그 속의 소시민들의 작은 거주지 속에 고스란히 함축해 보여줌으로써 역으로 그 잔인하고 불안하던 시기의 우리나라를 그 어떤 르포르타쥬나 다큐멘터리보다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소설의 배경이 됐음직한 시기의 부천 인구 증가율은 서울의 너다섯배에 가까운 15.8%로 도시팽창 비공인 세계기록을 세웠으니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모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원미동 사람들>은 인기 절정을 달렸던 TV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 앞서 그 서민 마을과 골목으로 대표되던 우리네 서민들의 한 시기를 압축적으로 다뤄낸 작품이었던 셈이다. <원미동 사람들>은 이후 2003년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리면서 한참 뒤에 태어난 세대들에게도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1987년 이후 4판 111쇄라는 진기록을 세운 소설 <원미동 사람들>은 그간 드라마와 연극, 뮤지컬, 그림책으로도 등장한 바 있는데 2012년엔 변기현이 그린 만화판이 두 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다. 변기현은 <로또블루스> <고양이Z> 등으로 상업 만화와는 또 다른 질감을 지닌 필체의 힘을 보여준 만화가로 프랑스어권 만화 독자층에게 먹힐 수 있는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아 온 바 있다. 변기현이 작업한 만화 <원미동 사람들>의 특징은 소설의 이야기를 충실히 하지만 적절한 선에서 옮기면서 만화로써 해낼 수 있는 시각 요소를 정갈하게 담아냈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채택한 배색은 살짝 물이 빠진 듯한 파스텔톤으로 지난 시대의 정취를 표현하고 있으며, 인물의 개성을 살리면서 미형과 리얼리티의 중간지점쯤을 잘 잡아낸 캐릭터 조형과 만화기에 가능한 연출이 모나지 않게 어우러지고 있다. 게다가 그 시대를 반영하는 여러 소품과 풍경의 꼼꼼한 재현도 상당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래서 원작자인 양귀자도 만화판을 두고 “그림으로 문장의 뒷면까지 기록에 더했다. 원작자도 새로운 독자로 포섭”했다고 말한다. 소설을 읽은 이라면 만화를 꼭 함께 읽어보길 권하는 바다. 소설 속에서 상상 속으로 그려내던 그 공간의 비주얼이 정말 그럴싸하게 묘사되어 있다.
<원미동 사람들>의 풍경을 좇다
<원미동 사람들>의 배경지는 원미동 23통이다. 처음 나왔던 소설책 표지에는 이 일대의 지도가 손으로 그려져 있었다. 현재 원미어울마당이라는 이름이 되어 있는, 예전엔 원미구청, 그리고 그에 앞서서는 부천시청이기도 했다던 오랜 건물부터 시작해 원미로 149번길로 꺾어 들어가면 자리한 작은 골목길이다. 이곳에서 양귀자 작가가 6~7년 가량을 살았고, 자신이 살던 2층 맨션집을 바탕으로 골목길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 냈다. 맨션은 헐려 아파트가 들어섰고 주변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부천시는 원미어울마당부터 이 공간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원미동 사람들의 거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원미어울마당 앞자락에서 부천로 136번길을 따라 걷다가 보이는 이정표를 따라 꺾으면 한 블록 사이로 원미로 149번길이 나온다.
물론 원미어울마당 오른편쪽으로 들어가 바로 찔러들어가도 되긴 하지만, 그래선 중요한 걸 하나 놓치게 된다. 바로 원미어울마당 앞마당에 자리한 조형물들이다. <원미동 사람들>을 소재로 한 여행은 이 원미어울마당 앞마당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이곳에는 작품의 첫 풍경이라 할 법한 일가족의 이사 풍경과 마을 풍경을 부조해 놓은 조형물과 더불어 작중 주요 인물 셋의 전신상, 그리고 소설의 내용을 일부 발췌해놓은 장식물들이 있다. 특히 전신상은 작품을 읽은 이라면 아 누구다 알아볼 법하다. 민망한 일이지만 난 일 관계로 부천을 그렇게 뻔질나게 들락거리고 만화가들이 입주해 만화 작업을 하는 만화 창작 스튜디오가 있는 탓에 원미구청(아무래도 이 말이 여전히 입에 익어 있다) 앞도 많이 오갔는데 막상 이 전신상 셋의 정체에 관해서는 궁금해 한 적이 없었다. 작품을 소개하려고 기획을 하다가 그게 그거였냐면서 뒷목을 한 차례 잡았다. 전신상으로 선 세 명은 원미동 시인 몽달 씨와 주변에서 재개발 좀 되어 이득 좀 보게 제발 팔라고 성화인 땅에 기어이 농사를 하며 버티는 강노인, 그리고 이 마을 23통 5반의 반장으로 형제슈퍼를 운영하는 김반장이다. 조금 더 눈여겨 볼 걸 그랬다 하는 반성을 해 본다.
부천로 136번길을 따라 <원미동 사람들>을 간판으로 내건 생선구이집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이정표가 나온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이정표를 따라 한 블록만 더 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드디어 소설 속, 그리고 만화가 반영해 냈던 그 골목이 등장한다. 조금만 더 가면 대화파크아파트(경기도 부천시 원미로155번길 37)가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작중 가장 중요한 공간인 무궁화 연립이 등장한다. 2층짜리 연립 주택이었던 이곳은 지금은 아파트가 돼 있어 형태는 없지만 그 앞에 “소설 <원미동 사람들> 언저리”라는 제목으로 안내판이 하나 서 있다. 소설 표지에도 등장했던 손그림 지도와 더불어 이 공간의 실제 맥락을 간단하게 안내하고 있다.
무궁화 연립이 없어졌듯 주변도 많이 바뀌었다. 강노인의 밭이었던 곳은 공원이 돼 있다. (경기 부천시 원미동 57) 김반장의 형제슈퍼를 비롯해 각종 공간도 흔적은 없지만, 아파트 건너편에 시장 방향으로 서 있는 연립주택들은 이 골목 진입구쪽에 서 있던 신축 빌라들과는 다른 옛 건물들이라서 아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주기에 충분하다. 주인집과 함께 쓰는 재래식 화장실은 1980년대까지를 신식 아파트가 아닌 공간에서 셋방으로 살아봤던 이라면 지금도 냄새와 함께 고스란히 되살아날 추억이다. 그땐 그랬지, 하는 기분으로 넘어가기엔 지금은 좀 나아졌어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덧붙는다. 강 노인의 밭 자리에 조성된 공원에 선 화장실을 보며 그 때 저런 게 있었으면 <지하 생활자>의 그 총각은 좀 덜 고생했을 텐데-라는 심정이 든다. 만화 창작 스튜디오에서 활동했던 만화가 임덕영 씨의 그림이 화장실 안쪽을 장식하고 있다.
공원을 지나 시장을 거쳐 원미산 방향으로 가 본다. 원미산은 <한 마리의 나그네 쥐>에서 1980년 5월의 광주를 목도한 남자가 사라져 간 산이다. 원미산 입구로 가는 길 중에서 토끼굴이라 불리는 작은 지하보도를 선택해 본다. 조종로 85번길 한가운데에서 원미로 124번길로 들어가는 입구 반대편에 자리하여 양쪽을 잇는 이 지하보도는 한때 우범지대로 손꼽히는 곳이었다고 한다. 2012년 무렵에 부천 만화창작스튜디오 작가들과 <원미동 사람들>의 내용을 반영한 벽화를 제작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타일로 재단장하여 부천시와 원미구 일대의 이야기와 <원미동 사람들>의 소개를 담고 있다. 깔끔하게 단장되고 조명도 잘 해 놓아 우범지대의 느낌은 사라진 상태다.
내친김에 원미산으로 사라져 간 사내의 이야기를 좇아 원미산을 올라 본다. 원미공원 문학 동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널따란 공원의 책 구절들을 읽으며 산을 오른다. 원미산은 부천을 그토록 오가면서도 단 한 번을 올라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가 보았다. 게다가 작중 배경인 원미동 풍경과 부천 일대를 높은 곳에서 바라볼 방법이 산 밖에 없기도 했다.
원미산은 해발 167m 정도로 높이로만 치자면 동네 뒷산에 가까운 낮은 산이다. 하지만 한동안 운동을 안 해 비루해진 몸과 하필 대서를 맞이한 한여름 더위가 만나니 기분만은 북한산 등반쯤 하는 기분이었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원미정이라 이름 붙은 정자에 오르면 일찍이 복숭아밭을 조성할 만큼 딱히 높은 지대가 없는 부천시 전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반대편으로는 서울 쪽 풍경도 볼 수 있는데 날씨가 좋으면 63빌딩 정도까지도 보인다. <원미동 사람들> 여행의 마무리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원미동 사람들>과 부천, 그리고 만화
부천에는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양귀자를 비롯해 시인 정지용, 변영로 등의 부천시 인물들을 소재로 예술가들과 실제 공간을 연결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부천인문로드’라 이름붙은 이 기획은 부천에 터를 잡고 있는 만화 기획 및 교육사업체 카툰캠퍼스가 기획한 것이다. 지나보내면 사라질 뿐인 세월 속 공간과 인물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소개한다는 점에서 여행의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기획이라 할 법하다. 카툰캠퍼스는 <원미동 사람들>의 각 편을 카투니스트 이대호(고구마) 작가가 카툰으로 함축한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원미동 사람들>의 변주는 변기현의 만화는 물론 카툰캠퍼스에 이르기까지 지역과 만화를 연결함으로써 시간이 지나서도 새로 조명될 수 있었던 사례라 할 수 있겠는데, 어쩌면 부천시가 만화 도시로서 시민들과 꾸준히 역할을 해 온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기왕 부천에 온 김에 만화를 즐기고 가고 싶다면 부천 상동의 한국만화박물관(한국만화영상진흥원, 경기 부천시 길주로 1)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원미어울누리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있는 춘의역에서 수도권 전철 7호선을 타고 삼산체육관 역에서 내리면 5번 출구에서 만날 수 있는데, 각종 만화 조형물들과 더불어 전시, 상영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곳의 도서관에서 <원미동 사람들>의 만화판을 만날 수 있으니 여행과 함께 들러 한 번 읽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