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1992년 대원의 만화잡지 《소년챔프》의 공모전에 당선하여 만화가로 데뷔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검정 고무신>은 고인의 대표작으로, 이우영 이우진 형제가 만화 제작을 맡고 이영일 작가가 이야기를 맡아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연재했던 만화입니다. 연재 당시 '할아버지 할머니 어렸을 적'인 1960년대 서울 변두리 이야기를 담아 오랜 사랑을 받았지만, 작품과 작가가 걸어온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작품의 인기를 등에 업고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사업 등이 이어졌지만 형제 작가 둘은 2007년부터 2010년에 걸쳐 업체에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과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비롯한 일체 작품 활동 및 사업에 대한 권리를 '양도'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양도는 저작물 이용 허락과는 달리 인격권에 해당하는 부분 이외의 영역 일체를 문자 그대로 넘기는 것을 뜻합니다. 이른바 '매절'입니다.
때문에 애니메이션이 시즌4까지 나오는 동안 만화가로서 받은 비용이 (주장에 따르면) 435만 원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지만, 업체 측은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이미 수정을 통해 원작과는 다르고 계약 조건 또한 현재의 표준 계약서가 통용되지 않던 시기의 관행에 따른 것이므로 본인들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밝혀 왔습니다.
업체는 작가의 부모들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애니메이션판 <검정 고무신>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고 형제들도 다른 곳에다 만화를 그렸다면서 소송을 당했습니다. 이우영 작가가 소송전에 지쳐갔던 까닭은 이런 지리멸렬한 소송전에 더해 '그땐 그것이 관행이었고 법적 문제는 없다' '만화가가 그린 캐릭터와 우리가 만든 캐릭터는 다르다, 우리 작품에는 원 스토리 작가가 참여했고 만화가들은 참여하지 않았다'라는 식으로 나오는 업체 때문이겠는데, 심지어 업체는 소송을 걸어놓은 상태에서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내어놓기도 했습니다. 지금 OTT에 걸려 있는 극장판이 그것입니다.
다시 말해 작품의 2차 저작물 작성 과정에서 원작 만화가로서의 권리를 일절 인정 받지 못하고 오히려 배제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캐릭터터 만든 작가로도 인정하지 않는 처사인데, 문제는- 정말, 문제는 '계약은 계약'이라는 겁니다. 업체의 발언에 모든 게 담겨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다시 말해, 도의적인 부분이 어떻든 권리 관계에서 문제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양도 계약이란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최근 트위터에서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권리 관련해서 한바탕 논란이 있었죠? 일부에서는 다들 양도하잖는 것이라고 갑 편을 들고 있습니다만, 양도 잘못하면 행사할 수 있는 권리 자체가 사라집니다.
양도를 하려면 그래서 통상적 이용 허락에 비해 값을 매우 세게 부르고 넘기는 건데, 지금은 표준 계약서라도 있지 예전엔 값도 많이 안 주고 그냥 사인을 하라고 하고 믿고 사인을 하다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검정 고무신>의 만화가 형제분들이 겪은 일이 바로 이런 낭패라 할 수 있습니다. 권리가 넘어갔으니 말마따나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에 와서 이런 식의 계약이 이뤄지면 안 됩니다. 일방적인 권리 침해라는 판단에 따라 이런 계약 하지 말라는 판단을 받을 겁니다.
그러면 그런 계약 안 하면 되었잖느냐고 할 수……있을까요? 그땐 다 그랬다는 건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이야기입니다. 네 다들 그랬죠. 그만큼 어처구니 없는 시대였을 뿐입니다. 적어도 업체는, 만화가들의 부모님이 농장에서 애니메이션 틀었다고 소송을 걸진 말았어야 합니다. 적어도 업체는, 만화가들에게 '우리 캐릭터는 많이 고쳐서 너희 것과는 다르다'라는 식의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적어도 업체는, 만화가들에게 '법적인 문제는 없다'라고 말하진 말았어야 합니다. 그 때는 어땠든 지금은 그런 계약이 '나쁜 계약' '불공정 계약'이라고 불립니다. 바뀌어가는 시대 속에서 최소한의 예우는 했어야죠.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소송전에 지친 나머지 창작 포기 선언마저 내어놓았던 이우영 작가가 세상을 ('아마도' 스스로) 떠났습니다. 그래도 '법적인' 문제는, 뭐 없지요. 기영이랑 기철이의 '모습'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묻어두고 다른 캐릭터라 말하는 회사에서 계속해서 또 다른 <검정 고무신>이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어디 그게 도의에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계약의 일일지는 몰라도 말이지요.
한 만화의 작가가 죽었어요.
본인이 그 캐릭터를 만든 사람임을 부정당한 채.
네. 법적인 문제는 딱히 없으시겠지요!
<검정 고무신> 사업체님!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일전에 저에게 한 플랫폼에서 작가들이 겪는 문제를 이야기했더니만 사업은 그만두겠지만 너는 가만 안 두겠다면서 소송을 걸어온 업체가 있더라고요. 좀 더 앞으로 가자면, 제 인생 첫 고소는 만화가협회 게시판에 올라온 어느 이상한 대회에서 인테리어를 맡은 업체가 돈을 못 받았다고 올린 글을 인용으로 게시했더니 허위사실 유포라고 난리친 어느 노인에게 당한 건데 경찰서 수화기 저편에서 자기가 만화계 높으신 분을 많~이 안다고 기름진 목소리로 뇌까리더이다. 제 인생 최대의 굴욕은 저 노인에게 소 취하를 위해 '사과'를 한 겁니다. 나 왜 그랬을까. 어렸으니까 그랬지. 근데 그 이후에도 소송 협박하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있었죠. 이름 대면 일부는 아 그 새끼? 그리고 일부는 아니 그 사람이? 할 만한 사람부터 일부는 아 그 개새끼? 그리고 일부는 아니 그 사람이 또?라 할 만한…… 알 만한 자는 알 만한 쓰레기들과 폐기물들과 핵폐기물들이……
뻑하면 입버릇처럼 뭐 여차하면 법으로 하면 돼!라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소송 협박이나 소송전 걸리면 그게 어디 쉬운줄 아십니까? 조사 받는 것부터 시작해 일상이 켜켜히 갈아먹히는 거예요. 심지어 소송 건 쪽 경찰서까지 산 넘고 물 건너 가야 해! 민사로 넘어가면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거기에 매달려야 하는 거고요. 법으로 하자는 말이 입에 박힌 사람이 있다면 이미 자기 인생 중 상당수를 법정에서 공격으로 수비로든 써 봤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아시나요? 업체나 무슨 ~장 쯤 되는 단위가 개인 단위에게 소송을 건다는 건 다른 게 아니에요.
말려 죽이겠다는 선언입니다.
너 정도는 오랜 시간을 들여 조질 수 있다는 선언입니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확인을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자만 시작하는 싸움입니다.
그래서 변호사들은 말해요. 이길 수 있다 확신하는 것에만 소송을 걸라고.
PTSD 찐하게 오는군요.
아 이 바닥 뭐 같아서 정말!
만화가 여러분! 일러스트레이터 여러분! 저작권 양도 계약! 매절 말입니다! 돈을 수십 배 수백 배 정도 부르는 거 아니면 하지 마세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