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웃고 지나갈 수만은 없는 그곳, 국회의사당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못 다 한 이야기 (6)

by 서찬휘

제 2018년 3월 출간작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중 분량 초과 문제로 다 싣지 못한 내용들을 마저 소개합니다.





국회의사당


양말산 자리를 깎아내고 들어선 국회의사당은 양화대교나 서울지하철 2호선 당산역-합정역 사이를 오가면서 자주 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워낙 큰 규모라 제법 먼 거리에서도 보일 정도인데 다소 생뚱맞은 돔 구조 덕에 지하에 뭔가 거대 로봇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농이 돌기도 했었다. 정작 숨은 공간은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여의도 한복판 아래에 있긴 했지만 말이다. 원래 이 국회의사당이 들어설 공간으로는 종묘 앞과 남산이 고려됐으나 왕족이었음을 내심 강조하고팠던 이승만의 반대로 종묘 안은 폐기되고 남산이 선택되었다. 그리고 남산 안도 앞서 남산 편에서 나왔듯 박정희의 군사정변으로 폐기되고 지금 자리가 선택됐다. 그 사이 1974년까지의 국회의사당 노릇은 일제 강점기 공연장으로 쓰인 경성 부민관 자리에 들어섰던 서울시의회 건물이 맡았다.


정치가 정치‘꾼’들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고압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국회의사당 건물은 곧잘 비웃음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우리나라 만화는 바로 이곳에서 태어난 법으로 말미암아 큰 홍역을 연발로 치러내야 했다. 독재 시기 만화 탄압의 근거법이었던 미성년자보호법이 그러했고, 그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은 청소년보호법이 그러했으며, 이후 가상 캐릭터의 연령을 단속권자가 자의적으로 판단해 표현에 따라 아동포르노로 규정할 수 있는 아청법(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이 그러했다. 모든 탄압은 나름대로 합법의 탈을 쓰려 하고 그 탈을 만들어주는 곳이 이 국회의사당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탄압 기조를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도 이 공간에 있다. 만화가 법정 문화 예술의 지위에 올라 예술인으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2013)도, 그리고 아직은 겉가죽이지만 내용을 채워가고 있는 만화진흥법(2011)도 결국은 법률이다. 이 나라가 법치주의를 표방하는 이상 시민의 삶도 문화의 방향도 법률에 따라 제어되고, 그 법을 만드는 곳이 입법부인 국회임을 생각하면 국회의사당을 더 이상 비웃고 지나갈 수만은 없게 된다.


어떤 궂은 날씨에도 국회 정문 앞에는 자기주장을 펼치며 입법 과정에 목소리를 더하려 드는 이들로 서 있고, 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은 언제나 입법 과정의 지리멸렬하기까지 한 공청회로 일정이 가득하다. 이 과정을 다 거쳐도 통과되지 못하는 법도 수두룩하다. 개인적으로는 국회 공청회에 계속해서 참여했던 아청법 개정안이 여전히 그대로 살아 있다는 점이 속상하지만, 그 과정에서 법의 역할에 관해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국회의사당은 이렇게 윤중제와 함께 여의도 개발의 핵이었던 공간적 의미로서도 눈여겨 볼 만하지만 만화와 법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이제 문화로서 멍청한 규제주의자들에게 당하고만 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좀 더 관심 있게 봐야 할 공간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 국회의사당을 한 코스로 추천하는 바다.


02-23_국회의사당_19730713(via공공누리).JPG 1973년 국회의사당 모습 (사진 출처 : 서울사진아카이브 ⓒ 서울시)
02-24_국회아청법토론회(20130812).JPG 2013년 8월 12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아청법 개정 토론회. 나는 당시 토론자로 나선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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