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9월 8일과 9일 이틀에 걸쳐 동아일보는 당시 조금씩 유행하고 있던 서양식 약혼-혼인과 이에 따른 반지 이야기를 실었다. 1928년 하면 일제에 강점당한지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시기다. 식민지의 한계에 번민하면서도 주입된 근대의 향취에 일면 아찔해 하던 수많은 모던보이, 모던 걸들이 혼마치(지금의 명동)를 엿보고 어슬렁대기도 하던 그 시기, 세대가 어쨌든 그 속에서도 갈리면서 풍습을 착실하게 바꿔나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재밌는 건 이 시기 조선에서도 천연 원석을 담은 반지를 약혼자에게 건넸다는 것과, 이러한 새 풍속도를 소개하며 태어난 월별로 천연원석을 연결해 놓은 '탄생석'의 의미를 설명하는 기사가 언론에 등장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무언가 의미 있는 선물을 필요로 하는 건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겠지만, 서양식 표기로 적은 천연 원석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언론 기사란 점에서 눈길이 간다.
1928년 9월 8일 동아일보 3면 기사 <약혼지환과 결혼지환>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약혼의 증거로 약혼반지, 이후 혼례를 올릴 때엔 혼인반지를 교환하는 풍습이 서양에서 온 것이며 아직 조선에는 이 차이를 아는 사람은 알아도 모르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약혼반지의 경우는 어서 혼례 올릴 날을 기다리게끔 하는 마음의 상징으로서 찬란한 보석을 쓴다...정도겠다.
여기에서 원석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약혼반지에 쓰는 보석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대개 '붉은 루비' 또는 '월장석', '성광석'을 쓰는 것 같다-고 적고 있는 게 흥미롭다. 붉은 루비는 7월 탄생석으로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는 그 루비(ruby)가 맞다. 월장석(月長石)은 소띠 수호석으로 스트레스 완화를 뜻하는 문스톤(moonstone)이다, 마지막으로 성광석(星光石)은 별무늬(星彩)를 띠는 청옥(靑玉)이라 하여 사파이어(saphire) 중에서도 여섯 가닥의 성채를 지닌 스타 사파이어(star saphire)다. 사파이어는 9월 탄생석으로 진실과 복덕을 뜻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원석들은 대체로 옥과 자수정, 마노와 자마노 등이고 조금 더 고급 소재로는 호박, 라피스라줄리(청금석) 등이 적게나마 등장한 바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문스톤과 사파이어를 비롯해 여타의 원석들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통해 민간에 소개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튿날 이어서 실린 <보석의 표상>이라는 기사는 아예 탄생석을 소개하고 있다. 기왕 약혼반지를 줄 거면 상대방에게 맞춰서 주는 게 어떻겠느냐는 식이다. 서양 습관이지만 유래가 1세기부터 관계된 기록이 있다고 언급하는가 하면 그 달의 보석을 사람과 연결짓는 건 18세기 파란에서 맨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파란은 波蘭으로 폴란드를 뜻하는데, 탄생석을 정착시킨 것이 폴란드 쪽으로 이주해 온 유대인들이라는 점을 적당히 앞뒤 잘라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탄생석은 구분에 따라서 조금 달리 언급되는 경향이 있는데 기사 속에 등장하는 탄생석도 근래 통용되는 것과는 조금 달리 언급되는 것들이 몇 있고 일본 쪽 외국어 표기를 중역하면서 나타나는 기묘한 표기도 있다. 이를테면 3월 탄생석이 '불스스톤'이라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아쿠아마린(aquamarine)'이며 뜻은 총명과 침착, 그리고 행복, 엄마의 양수, 포근함 등을 상징한다. 8월 탄생석은 흔히 친구와의 화합, 부부의 행복을 뜻하는 페리도트(peridot)를 주로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붉은 줄무늬 마노를 뜻하는 사드 오닉스(sard onyx)로 소개하고 있다. 둘 다 8월 탄생석이 맞지만 근래 8월 탄생석으로 주로 소개되는 건 페리도트다. 사드넷키스라 적은 건 아마도 오닉스를 오니키스(オニキス)라 적는 일본식 표기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12월 탄생석 터콰이즈(Turquoise, 터키석)을 '토이기'로 적은 건 土耳其로 터키를 한자로 적고 그대로 읽은 표현이다.
어쨌거나 90년 전의 기록 속에서 막 이 땅에 소개되기 시작한 천연 원석의 이야기들을 만나는 건 꽤 독특하다. 이 시기의 원석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새삼 정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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