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띠 수호석이자 터키석과 더불어 12월 탄생석으로 분류되는 천연 원석이 라피스라줄리다. 이 라피스라줄리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는 건 바로 조선 8대 왕인 예종 대다.
예종 즉위 이듬해인 1469년 7월 상정소는 관리와 일반 백성의 옷차림을 규제하라고 아뢰었다. 이 규제안 가운데 백성들 옷차림에 하지 말게끔 하라는 품목들이 나열된다. 여기에 홍색 속옷이나 담비 모피, 갓 고리 등이 나오는 가운데 원석으로는 산호, 마노, 호박, 자개와 함께 청금석, 즉 라피스라줄리가 거론된다. 한 마디로 사치하지 말란 이야기겠는데, 실제로 당시에도 천연 원석은 자수정이나 옥 정도 외엔 국내에서 나는 품목이 아니어서 꽤 고가였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에서 원석 이야기를 보면 태반이 사치 못하게 금하란 이야기다. 연산군 정도 때를 빼면 말이다. (...)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연산군은 즉위하고 8년째인 1502년 11월 23일에 직접 갓 장식으로 쓸 천연 원석들을 들여오라고 명하는데 그 때 첫머리로 꼽힌 게 라피스라줄리다. 이 때 같이 들이라 한 게 투명한 호박, 그리고 산호다. 예종이 하지 말라고 한 걸 연산군은 냉큼 다 한 셈이다.
참고로 예종은 즉위 15개월 만에 족질, 즉 발에 난 종기로 정말 느닷없이 죽었다. 이 때 자식인 제안대군이 너무 어렸던 탓에 간신 한명회의 사위였던 성종(잘산군)에게 다음 왕위가 돌아갔다. 성종이 어질고 잘 참는 군주상에 스스로를 너무 가둔 탓에 자기 아들에게 "아빠처럼 하면 안 되겠다!"라는 강한 동기부여를 시켰는데 그 아들놈이 다름아닌 연산군이었다. 연산군이 저리 돌다시피 한 요인 중 가장 큰 건 결국 성종의 처신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겠지만 예종이 저리 일찍 죽지 않았다면 왕으로서의 성종도 연산도 연산 엄마로서의 폐비 윤 씨도 없었을 터다. 학식도 결기도 의지도 있었던 젊은 임금 예종의 죽음이 참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