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유원지로 전락시켰던 별궁, 창경궁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못 다 한 이야기 (16)

by 서찬휘

제 2018년 3월 출간작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 중 분량 초과 문제로 다 싣지 못한 내용들을 마저 소개합니다.





창경원


어린이대공원 개설 관련한 기사에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게 ‘창경원’이다. 어린이대공원은 창경원 두 배로 조성했다가 땅을 팔았다 다시 그대로 사오는 착오 끝에 창경원 네 배 넓이로 조성됐다-라는 게 기사들의 기본 논조다. 같은 이야기를 기사들이 반복하는 걸 봐선 당시 서울시의 배포 자료에 쓰인 기준점이 창경원이었으리라 추측된다.


이곳의 본래 이름은 창경궁으로, 세종이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었던 수강궁을 성종 대에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 성종의 어머니인 소혜왕후, 예종의 계비인 안순왕후를 모시고자 확장한 별궁이다. 오랜 시간 정궁 역할을 한 창덕궁과 종묘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별궁이었지만 임금들도 곧잘 이곳에서 일을 한 만큼 적잖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겠는데, 일제강점기 직전인 1909년부터 일본은 이 궁의 안쪽을 개조해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삼은 데 이어 1911년엔 ‘창경원’으로 낮춰 부르고 유원지화했다.


창경궁이란 이름을 되찾고 내부가 원형에 가깝게 복원된 건 광복 이후에도 한참 후인 1983년이다. 궁으로 복원되면서 이곳에 있던 동물과 식물들은 1984년 개장할 예정이던 서울대공원 쪽으로 옮겨갔다.


10-39_창경궁명정전.jpg 창경궁 명정전 모습 (사진 출처 : Wikimedia Commons ⓒ 노문덕)
10-40_창경원야외무대시민위안공연(19730419_via서울사진아카이브).JPG 1973년 창경원 야외무대에서 열린 시민 위안 국악 공연 장면. (사진 출처 : 서울사진아카이브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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