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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선 Nov 02. 2020

장치로서의 등장인물

<Elephant>, <Das Boots>, <The Pianist>



<특전U보트das boot>의 Johann. 아름다운 미소.

영화 <Elephant>의 Benny 정도는 되어야 장치로서의 등장 인물이라고 할 만 하다고 여겼었다. 무차별적인 총기 난사 사건을, 희생자들의 시점에서 병렬적으로 진행시켜주는데 그것이 그 무차별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필연적으로 무차별을 해치게 된다.

그래서 사용하는 것이 Benny다. 덩치 좋고 보기만 해도 매력적인 검은 피부의 농구 선수로 등장하는 Benny는 뒷모습만으로도 '어 이 사람, 범인하고 대치해서 뭔가 한 가닥 하겠는데?' 싶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Benny는 뒷모습만 보인채로 몇 걸음 걷다가 곧장 총 맞고 죽어버린다. 무차별을 드러내기 위한 불가피한 차별을, 무차별과 거의 동등하게끔 만들어버려서 완화시키는 것이다. 참 인상적이었다.

이 Johann은 단순히 장치로서의 등장인물이라고 보기엔 서사에 너무 많이 관여했다. 게다가 냉철한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자제력을 잃는 것은 이제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져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새삼 Johann을 장치로서 떠올리는 이유는, 순전히 이 배우의 매력이 그 진부한 설정을 놀라운 반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씬에서 Johann이 짓는 미소가 어찌나 편안하고 믿음직스럽고 따사롭고 안심이 되던지.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인간이 그렇게 무너질 수가 있다니 충격적이었다.

저 미소 하나로 나는 마치 Johann을, 내가 아는 사람처럼 느끼게 된 것이다. 모범생보다는 날라리한테 더 신경을 쏟게 되는 선생님처럼, Johann에 대해서는 마음을 아예 놓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Johann이 폭주하는 모습에 잠수함 속 극한 상황을 더욱 생생하고 끔찍하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함장의 걱정스러운 얼굴도, 절망한 승선원의 한숨 소리도, 그 어떤 누구도 아닌 Johann에 의해서.

참으로 놀라운 미소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미소를 봤던 또 하나의 영화는 <피아니스트>. 종전 후 다시 방송국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스필만이 깔끔한 차림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다 옆을 보고는 짓는 그 미소였다. 깔끔한 수미상관에 얹혀진, 스필만과 우여곡절을 함께 한 관람자에게 차분히 역경의 종결을 고하는 아름다운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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