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교향악단 제 737회 정기 연주회 감상
2018년 12월 30일 씀
#. 스트라빈스키 - 시편 교향곡
현악기들이 줄 위를 활로 삭 삭 삭 삭 하면서, 아주 고운 먼지가 온화하고도 분명한 진동에 사뿐 사뿐 움직이는 느낌의 소리를 내 주고
마치 칼을 든 장수처럼 절도있고 힘있게 줄 위를 오갈 때에는 그 냉정한 장엄함에 활이 오갈 때마다 숨결을 훅 훅 들이마시다가도
콘트라베이스를 활이 아닌 손가락으로 동동동 터치할 때엔 마치 그 커다란 악기를 끌어안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주의 영광과 광휘어린 권능에의 복종을 고백하는 1악장이 끝나고, 고난을 겪는 인간을 플룻과 오보에로 표현한 부분은 정말 그 피리의 소리만으로도 폭풍우의 바람 속을 외따로이 헤쳐나가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이 그려질만큼 비련하였다.
그리고 합창단의 할렐루야... 부서져버릴 것만 같아 어쩔 줄 모르며 아기 동물을 손에 안는 듯이, 아주 소중한 그 무엇을 보고 환희와 감격에 차서 조심스럽고도 약하고도 솔직하게 고백하는 찬양.
아 팀파니가 그렇게 보드라운 소리를 내는지 몰랐다. 끝이 동그란 그 채로 아주 낮은 높이에서 조심스레, 그러면 그토록 온화한 소리가 타악기에서도 나는구나.
지휘자의 우아하고 리드미컬한 손동작, 그리고 나는 듯이 활기차고 경쾌한 발 구름이 멋지고도 사랑스러웠다.
사람들의 기침과 재채기 소리는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나 역시 감기 환자긴 해도, 확 거슬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더더욱 스스로 조심하게 되었다.
#. 베토벤 - 9번 교향곡 합창
1악장은 바이올린의 활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창을 높이 들고 진군하는 것처럼 보였다. 확신과 자신감에 가득찬 곡조가 인간이 내딛는 의기양양한 여정의 시작을 알렸다. 목표는 저 눈 앞의 자연을 이해하리라 파악하리라 정복해내리라.
2악장은 험준한 산맥의 깎아지른 듯한 능선, 그 위로 꽂히는 번개의 모양을 활들이 대각선으로 민첩하고 재빠르게 그려나갔다. 감히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이, 냉혹하고도 두려운 모습으로.
3악장은 바이올린의 활이 소생하는 초록 줄기가 되어 지상에서 솟아난다. 겁에 질려있다가 신의 자애로운 은총을 실감하게 되는 인간. 흐르는 냇물 옆에 누운 인간은 돋아나는 만물의 생명력에서 신을 보고 환희를 느낀다.
4악장은 만물이 인간을 기쁘게 맞으며 더욱 생생하게 바이올린의 활로 살아나고, 마음에 신을 품게 된 인간이 그만큼 묵직한 소리로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활이 되어 신의 앞에서 자세를 낮춘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함께 신의 권능을 찬양한다.
선각자가 이러한 성스러운 체험을 인간의 언어로 외친다. 형제여, (신을 모르기 전보다) 더 기쁜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선각자들이 선창을 하고나면 인간들은 따라 부르며 노래를 익힌다. 그리고 인간들은 선각자 없이도 노래를 외워 부르면서 별 하늘 너머에 주님이 있다고 자기들끼리 노래를 퍼뜨린다. 처음에는 팀파니의 나직한 두둥거림으로 낯설어하는 또다른 인간들. 하지만 노래가 반복되고 점차 퍼져나갈수록 인간들은 노래에 담긴 신의 은총을 피리의 곧은 소리처럼 뚜렷하게 느끼게 된다. 또 한번 선각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확신에 찬 인간들은 더욱 빠르고 경쾌하게 신의 찬양을 전파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형제가 된 인간들이 다함께 환희에 차 노래하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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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기하게도, 그 황홀한 소리들의 향연은 나로 하여금 글을 쓰고 싶게 만들었다. 그리고 머릿 속에서는 그림과 영상들이 아주 아주 긴 융단처럼 멈추지 않고 부드럽게 펼쳐졌다. 아무리 크게 손뼉을 쳐도- 입꼬리를 들어올리는 기운 찬 감동을 가라앉힐 수 없었던, 아름다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