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감상
2019년 12월 11일 씀
#. 드뷔시 - 목신의 오후 전주곡
트라이앵글 팅ㅡ 주제를 정말 잘 살렸어, 꿈꾸는 듯이 깨어난 듯이. 어찌나 섬세한지 어깨가 굳고 잔뜩 숨죽인 채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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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코프스키 -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
유튜브로 무수히 들었던 클라라 주미 강. 바이올린이 그렇게 뻣뻣한 소리에서부터 유연한 소리까지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경이롭다. 제 아무리 짧은 음이어도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현을 재빨리 오가는 손놀림에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이유, 그 유려하고도 과감한 연주에 막 몸이 이끌리는 느낌! 나를 앞으로 훅 잡아끌거나 또는 부드럽게 뒤로 밀어내는데ㅡ 결이 곱고 광택이 나면서 폭이 넓은 리본으로 휘감아 움직이게 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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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임새가 좋으면서도 바이올리니스트의 기교가 마음껏 돋보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곡이었다. 차이코프스키 음악 중에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언젠가 직접 듣게 된다면 또 얼마나 황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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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소르그스키 - 전람회의 그림(라벨 관현악 편곡 버전)
대단히 극적이고, 기이하리만치 신비로운 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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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르그스키의 특색은 그가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데서 나온다. '전람회의 그림'은 그가 친구의 유작을 보고 받은 영감으로 작곡한 소품들을 모아 만들어진(그리고 모리스 라벨이 편곡한) 것인데ㅡ 맑게 울리는 타악기들과 물결치는 하프가 이리저리 기분을 일렁이게 하고 거의 극단적일 정도로 거칠고 빠른 현악기들의 트릴이 <톰과 제리> 속 추격전을 연상시킬 정도다. 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면서 보통은 자연이나 인간을 떠올리는데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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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맨 마지막, 프롬나드의 변형은 조명 아래서 반짝이는 금관악기들의 빛깔과 꼭 어울리게 그리고 이 12월 따뜻한 겨울에 꼭 어울리게 울려퍼져서 입이 저절로 함박웃음을 웃었다. 오케스트라는 정말이지 그 어떤 악기 하나 인간의 손놀림과 숨결에 의한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럽고 완전한 소리를 냈고, 지휘자는 셈여림에 대단히 민감하여 음악이 상냥했다가 사나웠다가, 마치 성미가 몹시 까다로운데도 참을 수 없이 매력적이라 멀리하기 어려운 친구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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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주가 여릴수록 사람들의 기침 재채기 소리가 정말 치명적으로 거슬렸는데ㅡ 세찬 박수 세례에 되돌아나온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선사해준 두번째 앵콜쯤에는 아름다운 음악에 대해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픈 맘이, 빨개진 손바닥보다 더 중요한 사람들만이 남아서 정말이지 쥐죽은 듯 고요한 가운데 더욱 풍성해진 음악을 즐길 수가 있었다. 그건 러시아 민요풍의 음악이었는데, 내 귀를 통해 머릿 속으로 들어와선 푸쉬킨이 말했던 그 '러시아적 소박성'에 관한 인상들을 모락모락 피워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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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그러니까 올초에 티켓을 예매하던 나는 2019년이 '다채롭게 칠해'지리라 기대했던 모양이다. 솔직히 다채롭기야 매해가 다채로웠다. 12월 31일의 마무리 도장이 찍힌 도화지 위 갖가지 색깔들이 조화로이 어우러지느냐, 물감을 푹 엎어버린 듯이 뭉탱이로 던져진 색깔에 다 얼룩지고 말았느냐가 달랐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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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기쁜 것은 그 때 바랐던대로 여전히 클래식 듣는 걸 좋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게는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ㅡ여전히 러시아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새해가 내 인생의 어떤 특별한 변곡점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그런 기대는 별달리 없다. 순간의 연속을 사회적으로 분절해 둔 것일 뿐인데 뭐. 다만 2020년 12월에도 여전히, 변함없이 지금처럼 예술을 사랑하는 박영선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2020년 11월 11일. 여전히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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