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숨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영선 Nov 11. 2020

꽃다발과 발소리  

심선민 타악기 독주회 감상

 

팬에서 이제는 담당자로서 마주대하는 펄스 퍼커션, P님의 초대였다. 타악기 독주회 자체가 무척 신선하기도 하였지만, 그간 두 분이 교수님을 언급할 때마다 비치던 존경과 애정이 어떻게 비롯하였는가를 엿볼 수도 있겠구나 싶어 설렜다. 초대 받았던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독주회가 아니므로 꽃다발은 과하다 하여 기프티콘으로 감탄과 감사를 갈음하곤 했다. 일면식도 없이, 말씀으로만 듣던 분의 독주회에 사가는 꽃다발 역시 과한 것일지 몰랐다. 그러나 안 사갔다면 두고 두고 아쉬웠을 것이다. 박수로만 벅찬 감동을 전하기엔 한참을 못 미쳐서.  


 이 공연은 나에게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타악기가 홀로 오롯이 주인공이 되는 음악회는 처음이었고, 현대 음악 연주를 공연장에서 듣는 것도 처음이었다. 각 부의 시작에, 핀 조명 아래서 피아니스트 분이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와 곡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해주었는데 감상에 참 좋은 도움이 되었다.


 1부 첫번째 곡은 제목이 '도망쳐'였다. 젊은 한국 작곡가의 곡이란 데에도 놀라웠는데, 코로나로부터의 도피를 뜻하는 것이라니 무척 색달랐다. 내가 아는 가장 젊은 작곡가는 쇼스타코비치였다. 최근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을 읽으면서도, 아는 이름들이 줄줄이 나와 새삼 끔쩍 끔쩍 놀라곤 했는데ㅡ 내가 너무도 일상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동요가, 이 비일상적인 공연장 무대 위 악보에 적힌 음표들이 되었다니.


 펄스 퍼커션을 통해 마림바는 이제 낯설지 않지만, 직접 그것도 공연장에서 소리는 듣는 경험은 몹시 낯선 것이었다. 말렛이 가하는 충격으로 건반이 진동하면서 소리의 파동을 만들어 내게까지 닿아온 것임을 알면서도, 그저 내 가슴 속의 고동이 높낮이를 갖고 몸 안을 울려 도리어 소리를 내뿜는 것처럼 느껴졌다.


 건반을 좌우로 오가는 움직임에 따라, 쉬폰 소재의 반소매와 부츠컷 스타일의 바지가 하늘하늘 흔들리고, 일어서서 움직이며 연주하는 악기의 특성상 말렛에 싣는 무게를 예민하게 조절하는 온 몸짓을 관찰할 수 있었다. 현대 음악다운, 때로는 당혹스런 진행에도 마치 무용을 보는 듯한 역동적인 움직임이 더해져, 다분히 현대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느껴졌다.


 플룻과 함께 연주된 부에노스 아이레스 모음곡은, 특히 3악장이, 악기를 두드려서 소리내는 게 아니라 수면 위를 부드럽게 헤치며 만드는 동그란 파문으로 소리를 내는 것 같이 섬세한 느낌을 주었다. 양손에 쥐어진 네 개의 말렛이 건반을 쓸 때면, 네 개의 손가락이 유연하게 건반을 쓰다듬는 것 같았다.


 '절규'는 충격 그 자체였다. 양손의 열 개 손톱으로 소리를 내고, 팔꿈치로 눌러가며 진동을 조절하는 모습도 생경했지만 등장에서부터 내 시선을 빼앗아간 것은 목에 걸린 빨간 휘슬이었다. 휘슬에서 나는 높고 단단한 소리, 양팔을 크게 휘두르며 힘있게 두드려 나는 강렬한 소리들, 그 카리스마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음정의 높낮이가 아닌 표면의 소재와 힘의 강약에 의해 연주되는 음악이라니! 열정 넘치는 무대가 끝난 뒤 객석에서는 세찬 박수를 보냈는데, 교수님이 박수의 방향을 객석에 기립해있던 작곡가 분께 정중하게 돌리는 모습도 보기 좋고 멋졌다.


 2부의 첫 곡은, 비브라폰으로 연주되었다. 연주 전에 피아니스트 분이 작곡가의 짤막한 노트를 번역해주셨는데, 그 중 '초현실'이란 단어가 가장 이 곡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미디로 들리는 소리들도 결코 단순하거나 질서 정연하지는 않은 느낌이었는데, 그 위에 비브라폰의 떨림마저 공연장에 극적으로 울려퍼지니 공간 자체가 떨리는 것처럼 어질어질하기도 했다.


불규칙하게 흩뿌려진 점이나 무심하게 죽죽 그어진 듯한 선들이, 나름의 질서로 거푸 반복되다보니 결국은 어떤 형상을 만들어내기는 한 것 같은, 그러나 그 형상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는 어려운 그림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회화라면 오도카니 서서 빤히 바라봤겠지만, 듣는 순간 흘러가버리는 음악이니 그 안에서 같이 부유할 수 밖에 없었다. 한발짝 떨어져서 들을 수 있는 식견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


 다음으로, 색소폰과 콘트라베이스와,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아노와 함께 한 곡들은 마림바 콩쿨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라고 했다. 마림바를 위한 곡이니 당연하겠지만서도, 맑고 또렷한 마림바 소리가 멜로디를 이끄는 것이 듣기 좋았으나 한편으론 연주의 어려움이 눈에 보이는 곡들이었다. 댄서의 재빠르고 절도있는 동작에 감탄한 적은 여러 번이나, 음악회에서 내가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리라곤 생각해본 적 없었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게 되면 음표 위에다 손가락 번호를 적고 그대로 연주하게 되는데, 만약 인간의 손이 머리빗처럼 가로로 길고 수직으로 손가락들이 아주 많이 달려있었다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둥그스름한 평면 형태의 손바닥, 그 윗변에 네 개의 손가락이 수직으로, 또 왼쪽 변 아래에 수직으로 하나의 손가락이 달린 다섯 손가락 인간의 손으로 연주를 하자니ㅡ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치고자 번호를 매겨가며 연주를 하고 있다. 손가락이 독립적으로 힘있게 움직일 수 있도록 연습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 지점의 인간이 예술을 예술로 여기도록 하는 그 무엇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곡에서 교수님의 손이 떨려 연주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 섬세한 셈여림을 위한 긴장, 손목에 알맞게 주어진 힘, 그리고 온 몸을 움직여 조절하는 각도와 높이에서 비롯한 소리 하나 하나가 직관적으로 눈에 보인다는 것은 무척 매력적인 일이었다. 객석에서는 가장 큰 격려와 응원의 박수가 나왔다. 나 역시, 마스크 속에 더없이 환하고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기운 찬 박수를 보냈다.   


 이번 연주에서 들었던 다양한 소리 중 가장 내 마음을 끌었던 것은, 먼 건반에 곧바로 도달하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발생하지만 악보에는 없었을 교수님의 발소리였다. 이런 시각에서 나는 예술을 사랑한다. 펄스 퍼커션의 마림바로 타악기에 대해 오로지 둔중하고 묵직하단 편견을 지우게 된 것처럼, 타악기의 다양한 주법과 현대 음악에 대한 새로운 환기가 안에서 일었다. 2시간 내내 음악에 푹 빠져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펄스 퍼커션과 교수님의 멋짐에 대해 함께 호들갑을 떨게 될 것 같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19 연말 음악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