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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선 Nov 17. 2020

unbearable pity

<이병주 수필선집>을 읽다가

2019년 9월 8일 씀



<이병주 수필선집>에서. 죽음을 앞두고도 태연자약하게 차림새를 가다듬는 자로의 모습이 새삼 낯설다. 왜냐하면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의 나카지 아츠시는 이 장면 속의 자로를, "보라! 군자는 관을 바로 하고 죽는 것이다!!!"하는 쩌렁쩌렁한 외 뒤 갈갈이 몸을 찢기는 것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그 책에 나오는 자로는 우둔할 정도로 정직하고 멍청할 정도로 올곧다. 그리고 난 그 점이 꽤나 마음에 들었었다. 작은 따옴표 속 공자를 향한 볼멘 소리들은 특 바로 내가 하고팠던 말들이었다.
그 책의 또다른 단편에 나오는 이능은, 자신을 사로잡은 흉노 장군 선우의 목을 쉽사리 베지 못 했는데 그것은 흉노의 땅에서 고로 죽임을 당할 것이 ᅧ워서가 아니라 흉노가 그 사실을 부끄러이 여겨 쉬쉬하고 감추고 나면 한무제가 자신의 절개를 뒤늦게라도 알아차릴 수 없으리라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소무는 동물의 털도 마다않고 ᆸ어삼키며 자신에 대한 생각이라곤 눈꼽만치도 하지 않을 한무제를 그리워하고 그가 죽자 피를 토하며 울었다.
끝내 소금에 절여졌을지언정 군자로 죽은 자로와 제 행적이 한무제에게 가닿을 지를 염려하는 이능과 혼자서 가슴을 치며 아무도 모르는 충절을 바치는 소무를 보면, 과연 삶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라는 것은 옳고 그름은 고사하고 의지나 선택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은ㅡ 그냥 타고난 본성 그대로 이끌리고 떠밀리는 것인가 싶어 마음이 쓸쓸해진다.
마음이 쓸쓸해진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Three passions, simple but overwhelmingly strong, have governed my life: the longing for love, the search for knowledge, and unbearable pity for the suffering of mankind." - Bertrand Russell
저기 unbearable pity 에 더 가깝다고 하는 게 옳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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