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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선 Oct 16. 2021

시의 정의

어마어마한 제목에 걸맞는 구슬프리만큼 아름다운 

◎ 작성일 : 2013. 04. 03 (24살 때)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시의 정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들 중에서도 으뜸이다. (비문이란 걸 알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외국어로 된 시인지라 역자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번역되었다.

 

.

 

시의 정의

  - 「나의 누이 나의 삶」 / 박형규 옮김 / 열린책들 (절판됨)

 

그것은 급격히 채워진 휘파람 소리,

그것은 짓눌린 얼음조각 튀는 소리,

그것은 잎사귀를 얼리는 밤,

그것은 두 마리 꾀꼬리의 결투.

 

그것은 달콤한 쭈그러진 완두,

그것은 콩꼬투리 속의 우주의 눈물,

그것은 보면대(譜面臺)와 플루트에서 피가로가

우박처럼 화단 위에 떨어지는 것.

 

밤이 깊은 목욕탕의 물 밑에서

꼭 찾아내어

떠는 축축한 손바닥으로

새장까지 별을 날라야 하는 모든 것.

 

물 속의 널판지보다 판판한 것 ㅡ 무더위

창공은 오리나무처럼 무너지고

이 별들에는 파안대소가 어울린다.

하지만 우주는 인적이 없는 곳.

 

.

 

시의 정의

 - 「빠스쩨르나끄-생애와 시, 의사 지바고」 / 최 선, 홍대화 지음 (이 번역은 최 선) / 건국대학교 출판부

 

갑자기 불어닥치는 새파란 바람소리,

조였던 얼음이 깨지는 굉음,

잎사귀를 얼게 하는 추운 밤,

두 꾀꼬리의 결투.

 

들판에 거칠어진 달콤한 완두콩,

완두콩 껍질 속 우주의 눈물.

화단으로 굴러떨어지는 우박처럼

악보대에서 플루트에서 굴러떨어지는 휘가로.

 

깊은 물밑 속을 헤엄치며

밤이 그렇게 열심히 찾는 모든 것,

이윽고 떨리는 젖은 두 손에 별 하나 찾아들고

새장 속에 담는 것.

 

무더위는 물위에 뜬 널빤지보다 더 평평하게 누웠고.

하늘에 흩뿌려진 오리나무 잎새들,

이 별들 소리내어 막 웃고 싶은 듯,

순간 다가오는 막막한 우주.

 

.

 

시란

  - 「삶은 나의 누이」 / 임혜영 옮김 / 지만지 고전선집

 

이것은 급히 최고음에 달해 터진 자연의 휘파람 소리,

이것은 짓눌려 찌그러진 얼음 조각들이 "딱" 갈라지는 소리,

이것은 나뭇잎을 얼게 하는 밤,

이것은 번식기의 두 마리 수컷 꾀꼬리 간의 치열한 싸움.

 

이것은 넝쿨이 무성하게 뻗은 스위트피(sweet pea),

이것은 완두콩 꼬투리 속의 만유의 눈물,

이것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보면대와 플루트에서

작은 이랑에 우박처럼 세차게 부딪치는 소리.

 

깊이 물이 괸 저수지 바닥들에서

밤이 찾아내는 그리도 중요한 모든 것과

별을, 떨리는 젖은 손바닥에 담아

양어지(養魚池)로 나르는 일.

 

물속 나무판자보다 더 평평하게 깔린 것은 무더위라네.

창공은 오리나무 덤불에 덮여 가려졌네.

이 별들은 큰 소리로 웃는 게 어울릴 터.

그러나 세계 전체는 인적 없는 무언의 장소라네.

 

.

 

 위 순서는 내가 읽은 순서와도 동일한데, 아무래도 가장 처음 접하였기 때문인지 첫번째 번역이 나는 가장 맘에 든다. 원래 파스테르나크의 시는 러시아에서도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으니 번역된 것 역시도 난해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하. 마지막 행을 봐도 첫번째가 가장 좋다.

 

 '콩 꼬투리 속 우주의 눈물'이라는 행에서는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뻔했다. (ㅠㅠ) 그리고 저 행에 경탄할 수 있게 해준, 흙 위에다 콩을 기르고 꽃도 심는 내 고향에 감사한다. 난 단 한 번도 콩 꼬투리 속의 물기를 우주의 눈물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저 물기가 뭔지는 아니까 말이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싹이 잘 나 제법 튼튼히 서 있는 걸 보고도 그게 자라 뭐가 되는지 까막눈처럼 모르는 친구들을 보고 놀라 내가 얼마나 큰 행운을 안고 태어난 것인지 가슴 깊이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같은 맥락으로, 저 「빠스쩨르나크-생애와 시, 의사 지바고」를 통해 새로 알게 된 '예세닌'이라는 시인에도 흥미가 생겼다. 농촌을 사랑한 이 시인은 혁명을 두 팔 벌려 기쁘게 맞아들였다가, 저 혁명에게 속았다고 울먹거리면서 자신이 자연을 노래하는 마지막 시인이 될까봐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끝내 그가 사랑한 농촌과는 정반대인 도시의 길거리에서 방탕한 생활을 보내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단다. 가엾고 순진하고 딱한 사람이다.

 

 어렸을 적에는 농촌이라는 것이 고리타분하고 모든 것에 뒤쳐진 구닥다리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 역시 농촌에서 자란 사람이기에. 그러나 살아볼수록 농촌에서 나고 자란 것은 참 커다란 축복이었구나 느끼게 된다.

 

 어둑어둑한 밤에 학교 도서관을 나와 버스를 타고 집 앞 정류장에 내리면, 몇 줄로 나란히 나 있는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과 빨갛고 노란 불빛들의 활기찬 풍경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황량함과 마주하게 된다. 둘러보면 내가 피난처로 삼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길가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말라깽이 나무들로 도망치기는 내가 너무 미안하다. 그들은 이미 너무나 고단하기 때문에.

 

 그러나 농촌에 가면 나는 연못 속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작은 물고기가 된 마냥 신이 나고 들뜬다. 산, 나무, 꽃, 풀, 들판, 나비, 흙, 햇살, 모자, 장갑 모든 게 다 있다. 없는 게 없다. 도시에는 없지만 농촌에는 있다. 나는 농촌을 사랑하게 되었다. '고향'이라는 말에 농촌만큼 잘 어울리는 게 또 있을까! 내 고향이 농촌이라 행복하다. 진흙이 잔뜩 묻었다가 햇살에 버쩍 말라 경운기 틀틀 거리는 통에 길 위에 툭툭 부서져 떨어지고 마는 그 시골길을 사랑한다. 

 

 그래서 노래하고 싶다. 시가 좋다. 콩 꼬투리 속 우주의 눈물이, 눈물 나리만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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