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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선 Nov 26. 2020

단테 <신곡-지옥편>

지옥

2019년 10월 6일 씀


 사실은 바로 이 <신곡> 때문에, 이번 리더스에 참여할까 말까 망설였다. 대학 시절, 지옥이라는 기독교 세계 속에 처박혀있는 것이 어째서 죄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인가가 너무도 의뭉스러웠던 기억 탓이었다. 그러나 연이어 읽은 괴테의 작품들에다 18세기 후반 독일의 슈투름 운트 드랑을 더하자니, 하물며 르네상스의 물보라가 막 일기 시작할 무렵 14세기, 이탈리아의 단테가 쓴 이야기에서 고대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면 도리어 그것이 괴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하게도 되었다.

 또 이런 생각도 했다. 단테의 지옥은, 죄인들을 죄의 유형에 따라 다른 장소에서 다르게 벌한다. 그러나 순례자와 영혼의 여정은, 그 갖가지 유형에 해당하는 죄인들이 지닌 총천연색의 사연들을 하나 하나 잠자코 물어들을 수 있을만큼 느긋하지가 않다. 신들마저도 툭하면 부정을 저지르는 고대의 다채로운 군상들이야말로, 지옥을 압축적으로 설명해보이는 데 안성맞춤이다. 정작 나는 책을 세 등분으로 나눠잡고 부지런히 본문과 미주를 오가야했지만, 이를테면 조선 태종이 단테의 지옥에 떨어졌다고 할 때 왕자의 난을 떠올리며 ‘카이나’에 가 있겠거니 생각하는 그런 것 말이지. (다르게 생각하면, ‘림보’가 더 적절할 지도?)

 (발췌) 순례자
 나는 아이네이아스도, 바울도 아닙니다. 아무도, 심지어 나조차도 내가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면, 혹시 경솔한 짓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현명하신 이여, 내 말의 숨은 의미를 이해해 주소서.
 영혼
내가 네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너의 영혼은 겁을 먹었구나. 인간은 언제나 그 겁 때문에 머뭇거리고, 제 그림자를 보고 놀라는 짐승처럼 명예로운 일에서 멀어지게 된다. 네가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처음 너의 고통을 느꼈을 때 내가 들었던 말들을 들려주마.

 이미 서 있고도, 스스로 머물 자격을 의심하는 것만큼 초라한 마음도 없다. 때문에 그를 예민하게 알아채고 자상하게 다독여주는 선생님의 마음이 진정 따뜻했다. 그리고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사회 심리학자 에이미 커디Amy Cuddy는 테드 동영상 ‘Your body language may shape who you are’ 후반부에, 자신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어릴 적부터 똑똑했던 그녀는, 19살 때 심각한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IQ 저하를 겪고 자신감을 잃는다.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ㅡ동기들보다 4년이 더 걸려ㅡ 학교를 졸업했지만, 급기야는 첫 강연을 앞두고 너무 겁이 난 나머지 지도 교수에게 포기하겠다고 말하고 만다. 그 때 천사같은ㅡ그녀의 표현에 따르면ㅡ 지도 교수는 진심 어린 용기를 전해준다. 아니, 넌 해낼거야. 아무리 두려워도 해낼거야. 그렇게 계속 해낼거야. ‘내가 이런 것까지 하고 있구나’ 할 때까지 계속 해내게 될거야. 에이미 커디는 지금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어느 날, 그녀는 학기 내내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던 어느 학생에게 이러다 낙제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연구실로 찾아와 바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I’m not supposed to be here.” 바로 과거 그녀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자신에게 놀랐다가, 곧바로 그 학생에게 이렇게 외친다. “Yes, you are! You’re supposed to be here!” 그리고 학생은 태도를 바꾸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면서 The best comment ever을 했다는. 언젠가 그 학생은 에이미 커디를, 천사같은 교수님으로 떠올리게 될테지. 에이미가 과거의 지도 교수님을 여기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이야기다.

ㅡ 나는 에피소드에 집중해서 썼지만, 당연히 영상의 주된 내용은 그녀의 연구다. 비언어적 표현이나 바디랭귀지가 굳이나 의식적으로 취해진 것일지라도, 호르몬은 똑같이 분비되어 우리의 마인드에 영향을 준다는 것.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로테도 그랬잖아, 겁이 많지만 남에게 용기를 주려고 겉으로 대담한 체 했더니 정말로 용기가 생겼다고.
ㅡ 에이미 커디가 Angel 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천사’라고 썼지만, 실은 은인恩人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나에게 저 “You’re supposed to be here.”은,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해 무척이나 특별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래서 나같은 존재는 발끝도 미치지 못할 고매한 영혼이 가야만 마땅한 것이 아닌가 풀이 죽은 저 순례자의 말도, 에구 겁을 먹은 게로구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선생님의 말씀도 모두가 마음 깊이 와닿았다.

 (발췌) 베아트리체
 두려움은 남에게 해를 입힐 힘을 지닌 것들에게서만 나오는 법입니다. 다른 것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요.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 <큐어>를 떠오르게 하는 구절. 그러고보니 이 영화의 이모저모가 모두 기독교와는 대척점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발췌) 영혼
 그들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고, 업적도 있으나 아주 중요한 일을 이루지 못했지. 바로 세례란다. 네가 믿는 신앙으로 가는 관문이지. ... 다른 잘못은 없어. 그 죄 하나 때문에 우리는 버림받았다. 언제까지라도 희망 없는 희망 속에서 살고 있는 거야.

 아무런 ‘죄’도 ... 그 ‘죄’ 하나 때문에 ...

 처음에 읽고는, 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님에도 이토록 철저히 분절하는가 싶었지만... 아, 한국어로 된 어떤 해설은 저 죄를 ‘불운’이라고 간단명료하게 썼더군.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는데, 림보에 대한 부분 두 문장만 떼어와보면...
 ㅡ the unbaptized and the virtuous pagans, who, although not sinful enough to warrant damnation, did not accept Christ.
ㅡ The guiltless damned are punished by living in a deficient form of Heaven.

 이 정도의 서술이라면 받아들이기 수월하다. 특히 deficient form of Heaven 이라고 하면 분절은커녕, 그들의 업적과 성취를 인정하면서 부족하나마 천국을 닮은 세계로 모셔다 둔 단테의 너그러움마저도 느껴진다.

 글이라는 게 참, 이렇다니까.

 (발췌) 영혼
 네가 방금 입 밖에 냈던 의문은 여기서 금방 대답을 들을 것이다. 또 내게 말하지 않고 감추고 있는 소망 역시 채워질 것이다.
 순례자
 선한 길잡이여! 전 제 마음을 감추려 하지 않습니다. 단지 말을 적게 하려는 것인데, 선생님은 언제나 그 점을 살펴 주시는군요!

 (발췌) 순례자
 흐릿한 나의 시선을 고쳐주는 햇살이여! 나의 의심을 풀어 주며 날 기쁘게 하시니, 의심함이 아는 것 못지않게 즐거운 일이 되는군요.

 선생님은 어찌나 상냥하고 친절하신지, 연민을 느끼는 날 타이르고... 살뜰히 보살피고... 수시로 안심시켜주고... ‘선한 길잡이’라니, 꼭 맞춘 듯이 어울리는 말이로다.  

 나도 언제나 감사하다. 모르는 걸 새로 가르쳐주는, 몰랐던 걸 이제 알도록 도와주는, 모르는 줄도 몰랐던 걸 몰랐다고 깨닫게 해주는... 모든 것들에.  

 /

 가장 깊은 지하에서 루키페르에게 물어뜯기는 세 사람은, 모두 내가 아는 사람이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이름을 이왕 읽어버려, HBO 드라마 <ROME>을 또 봤다. 보고 또 봐도 재미있는 이야기에, 고증도 잘된 좋은 드라마.  

 그리고 유다에 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 소설 <직소>다. 이것도 오랜만에 다시 한번 읽었는데... 역시나 아 뭐랄까, 눈물 범벅이 된 채로 킬킬 웃어대는 얼 빠진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마구 흔들어대고픈 충동이 드는 글이랄까...
 (혹시 궁금하신 분은, http://www.dazaiosamu.com > 다자이 소설 모음 > 직소 에서 읽어보실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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