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스페이싱 — 말하기 습관 알아차리기
내가 코칭교육받는 곳에서는 ICF(International Coaching Federation)에서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인 Observed Coaching이라는 것으로 코칭 교육을 한다.
1대1코칭 진행한 내용을 녹음하고, 그것을 축어록(대화 내용을 글로 정리)으로 만든 후 멘토 코치님께 공유하면, 멘토 코치님이 녹음과 축어록을 확인한 뒤 함께 ‘코치 더 코치’(코칭 내용에 대한 피드백) 세션을 진행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신기하게도 내가 코칭 대화에서 말하는 패턴이 드러난다.
나 같은 경우는 문장을 시작하기 전에 "일단…"이라고 말하고 시작하거나, 고객의 말 뒤에 "그렇군요"라고 하며 그들의 말을 들었음을 나타내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심지어는 "이런 뜻으로 말씀하신 게 맞을지 모르겠네요"와 같이 불필요하게 완곡하게 말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이런 코치의 언어적 습관은 어떻게 보면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파생되는 효과를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볼 수만은 없다.
내가 언어 습관을 더 의식하게 된 배경으로, 코칭을 알기 전부터 참여했던 Toastmasters 활동을 잠시 언급해 보겠다. Toastmasters의 특성상 무대 위에서 연설과 대화의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이러한 습관 관리는 더욱 필요했다.
아나운서나 뉴스 앵커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그들이 하는 말에 'Ah', 'Um', 'You know'와 같은 불필요한 filler word(문장과 문장 사이를 채우는 말)가 많이 섞여 있다면 듣는 사람에게 어떤 인상을 줄까?
조금 덜 전문적으로 보이거나, 뭔가 대충 말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
Toastmasters와는 달리, 코칭에서는 이러한 언어적 습관이 의외의 영역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내가 자주 저지르던 실수를 몇 가지 예로 들어보자.
일단…
이 표현은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다만, 하지 않아도 대화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말이며, 때로는 앞서 고객이 하던 말을 끊거나 마무리해 버리는 듯한 뉘앙스를 줄 수 있다.
생각해 보자. 고객이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코치가 대화를 이어가며 앞에 "일단…"이라는 단어를 먼저 말하면, 고객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는 알겠는데 우선 이것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렇게 고객이 느끼게 되면 대화는 원래 가야 할 방향과는 조금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되기도 한다.
그렇군요
이 말은 주로 고객의 말을 인정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고객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했다면 그것을 잘 포착해 인정해 주는 것도 코치의 능력이다. 공감을 담아 자세히 인정해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좋은 코칭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빈도에 문제가 있었다.
코칭 대화에서 코치와 고객 말의 황금비율은 2:8이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항상 지키기 쉽지는 않지만, 가능하면 코치의 말이 3:7 정도보다 많아지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그렇군요"를 거의 추임새처럼 자주 사용하면서 코치의 비율을 점점 높여왔다.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가 하는 행동은 무엇일까? 예를들어보자. 일반대화와 비슷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방송에서는 리액션이 좋은 방청객을 선호한다. 진행자가 무언가 이야기하면 끊임없이 '오~', '와~', '대박!' 등으로 반응하길 바란다. 방송을 보는사람으로 하여금 진행자의 의도가 더 잘 표현되게 하기 위한 것도 있고, 리액션을 보고 진행자가 더욱 에너지를 높여 진행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코칭 대화에서 고객이 바라는 코치의 모습도 그런 것일까? 목적은 비슷할 수도 있지만, 조금 다르다.
코칭대화에서의 코치의 리액션의 목적 중 하나는 상대에게 '내가 너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데 있다. 여기까진 방청객과 비슷할 수 있지만 과하면 방청객의 무조건적인 리액션처럼 느껴져 오히려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나의 "그렇군요"는 그런 의미에서 방해 요소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빈도 문제는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코칭 대화의 균형을 흐트러뜨기도 했다. 고객의 말과 말 사이에 쉼을 주고 싶을 때조차 코치가 말로 채워버리는 경우가 된거다. 이런 경우에는 시간적 스페이싱(말과 말이 겹치지 않음)을 확보하지 못한 셈이다. 고객의 말과 코치의 말이 겹치지 않아야 고객은 자신의 말이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느낄 수 있는데, 오히려 코치의 추임새가 스페이싱을 방해했다.
… 모르겠네요.
이 표현은 어쩌면 나만의 언어적 습관일지도 모른다. 고객의 말 중 중요한 키워드나 성찰적 요소가 있으면 코치는 그것을 말로 되돌려준다. 그렇게 하면 고객이 발견한 것을 더 분명히 떠올리고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런데 이때 주의할 점은 코치의 에고나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집착이다. 이 마음은 주로 코치가 아는 내용이나 익숙한 이야기일 때 발생하는데, 코치가 잘 알기 때문에 고객의 말하는 방향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는 모습이 나올 수 있다. 분명 선한 의도로 하는 행동이겠지만, 이것 역시 고객의 삶이 아닌 코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부담을 줄이려거나 집착하지 않기 위해 맨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모르겠네요. 맞나요?"처럼 애매하게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형식의 말은 앞 문장을 길게 만들고 불필요한 수식어를 넣어 코치의 말만 길어지게 할 뿐 좋은 습관이 아니다. 코치의 말이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고객의 성찰 기회가 줄어들고, 대화의 질이 떨어진다. 오히려 간단하고 간결하게 필요한 말을 침묵, 숨소리, 목소리의 높낮이 같은 비언어적 요소들과 적절히 조합하여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진정성 있게 느껴진다.
코칭 대화는 코치와 고객이 함께하는 춤과 같다. 끌려가지도, 끌지도 말아야 한다.
Observed Coaching을 진행해 주신 멘토 코치님의 말씀처럼, 스토리가 풍부한 고객에게 끌려가서 주어진 시간에 적절한 코칭 대화를 못하는 모습은 피해야 한다. 동시에 코치의 의도치 않은 언어적 습관으로 고객을 부추기거나 유도하거나 끌고 가는 행동 역시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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