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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미현 Mar 29. 2019

[열여덟 여행] 00.준비부터 힘들다

시작부터 쉬운 건 반칙이니까

* 들어가기에 앞서 내미는 오리발

이 글에 왜 맛집 정보나 교통편이 없는가 화내지 말기를 바란다.  이 글은 H투어를 이용하여 다녀온 규슈 여행 3박 4일 패키지여행이다. 따라서,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감동과 만족의 깊이는 다를 수 있으니 이점 유의해주시기 바란다.   


* 두 번째 오리발

이 글은 입꼬리가 올라가고 배꼽을 찾을 만큼 또는 눈물이 자동적으로 흐를 만큼 재미있지 않고 여타 여행기에서 얻을 정보는 당연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미리 알려두고 또다시 알려두지만 회사 동료들과 떠난 워크숍이니까. 동료들과 간 일을 시시콜콜 적어놓기에는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일이니, 이 글은 철저히 내가 중심이고 내가 느낀 사소하고도 쓸데없는 감정의 퍼레이드가 될 것이다. 원래 여행에서 엄청나게 웃고 떠들었던 내 일들이 남들에겐 “그랬어? 아 그랬구나~” 정도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일이라 읽는 이들이 큰 감동을 할 거라고 예상하지 않는다.


* 세 번째 오리발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남기느냐 혹시라도 패키지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분들이라면 약간의 팁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일말의 오지랖, 또 하나는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내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 절대 능수능란하지 않은 처세술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점. 딱 그 두 가지에서 이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혼자 다녀온 교토 여행과 사뭇 다를 수밖에 없을 이 짧은 여행기를 시작해 본다. 한 달 간격을 두고 나는 다시 일본 땅을 밟았다. 남들이 보면 일본을 좋아하는 줄 알겠다. 또는 일본에 보따리 장사라도 하러 다니는 줄 보이겠다. 정작 나는 그런 보따리 장사를 해라고 해도 못할 정도로 쇼핑과 물건을 사는 데는 그리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나중에 돈키호테 습격 mental 가출 사건이 나온다.)


그건 내 사정이고 왜 연달아 일본이었나 싶겠지만 직장에서 해외 워크숍을 가자고 계획이 세워진 것은 내가 교토를 가기로 한 그 후였다. 한 해 동안 고생을 많이 했으니 포상 차원에서 떠나는 해외 워크숍인데 이번 해는 어디가 좋을까 알아보자고 했다. 


맨 처음 물망에 오른 곳은 ‘괌’이었다. H투어 홈페이지에 견적 문의를 올렸더니 엔터키를 누른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나의 전화기에 불이 들어왔다. 자신을 20년 여행전문가라고 소개한 모 이사님은 연말에 괌은 엄청나게 가족들이 몰린다고 ‘나짱’이란 곳을 권했다.  요즘 핫한 지역이며 ‘괌’보다는 ‘나짱’이 나을 거 같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는 자리로 돌아와 나짱을 검색했다.     


‘나짱 태풍’      


연관검색어로 이게 뜨더니 줄줄이 10월 말에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핫한 지역이 분명했다. 태풍으로... 쑥대밭에 진흙밭이 되어 있는 처참한 사진이 줄줄이 떴다. 아니 태풍 피해지에 지금 우리 보고 들어가라는 것인가! 요즘 뜨는 지역이며 가격이며 모든 것이 완벽한 것처럼 상담을 하는 20년 여행전문가 모 이사님은 나를 ‘글로벌 호갱님’으로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루트를 통해 나짱에 대해 물어봤다. 나짱은 12월이 되어도 복구가 될까 말까 하단다. 물론 12월 말이 되면 리조트도 뽀얗게 말끔해지고 부서졌던 도로도 매끈매끈하게 광택을 찾을 테고, 두 동강이 났던 다리도 언제 태풍 ‘도라지’를 만났나 싶게 딱 붙어있어야 정상인데 그곳이 대한민국이라면 가능할법한 이야기다. 


빨리빨리로 고속성장을 거듭해오는 이 나라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곳은 뜨거운 태양 아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한없이 느림의 미학으로 사는 이들이 나라가 아닌가. 내가 호갱님이 될 수는 없으니 후보지 ‘나짱’은 제외시켰고, 홍콩과 일본을 두고 경합을 벌였다. 반드시 12월 27일에 출발해서 반드시 30일에 돌아와야 하는 스케줄 때문에 일본으로 결론을 내렸다. 


오고 가고 시간은 적당한데 일본도 또 땅덩이는 넓어서 구역이 나뉘어져 있다. 북해도는 겨울에는 춥고, 일본 본토는 거의 가봤으며 사람들이 그나마 안 가본 곳을 고르다 보니 규슈 지역, '후쿠오카 인아웃'의 상품을 골랐다. 연말이라 그런지 가고자 하는 항공권이 정해지지 않아 애를 태웠고, 항공권이 해결되니 이제는 숙소가 정해지지 않아 또 며칠 동안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한 번에 18명이 움직이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것임을 처음부터 알았어야 했다. 그것도 비수기가 아닌 성수기에 바트 한 일정으로 준비하는 것은 애당초 시작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좋은 호텔은 이미 방이 다 찼고, 

있어봤자 한 두 개가 다이니 우리는 차선의 차선책을 고르며 겨우 협의를 마쳤다. 떠나기도 전에 이미 다녀온 것처럼 검색의 검색을 하느라 낭만도 설렘도 사그라들고 있었다. 


출발일까지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서 못가는 가 싶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하늘이 우리를 도운건지 버린건지 모르게 가까스로 비행기 좌석이 열렸고, 거의 극성수기나 다름없는 12월 말에 우리는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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