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았다. 가이드는 먼저 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국 심사를 할 때 ‘곤이치와’인지 ‘곰방와’인지가 헷갈려 ‘헬로’를 하고는 나올 때는
"아리가또 고자이마쓰"를 했다. 이런 일관성 없는 관광객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살짝 들었다.
후쿠오카 공항은 아담했다. 7년 전인가 한번 왔었는데 기억은 잘 안 난다. 밖으로 나가 패키지여행의
정수인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패키지여행은 이미 마련되어 있는 교통수단으로
그냥 물 흘러가듯이 다니면 되는 아주 편안한 여행이다. 자유여행처럼 교통수단을 바꿔 타거나 낑낑 대며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을 탔다가 버스를 잘못 타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다.
그냥 버스 짐칸 앞쪽에 캐리어를 가져다 두면 기사님에 실어주고, 호텔에 도착하면 캐리어를 꺼내준다. 그러면 호텔방으로 올라가면 된다. 짐이 짐처럼 느껴질 틈이 없는 것이다. 자유여행에서는
하늘이 무척이나 파랗고 공기가 서울보다는 맑고 쾌청했다. 점심을 바로 먹으러 간다고 가이드가 말을 꺼냈다. 가이드의 인사를 들어봤는데 재미가 있는 분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젠틀한 분도 아니었다. 둘 중 하나는 되어야 하는데 이 분의 정체는 그럼 뭘까?
패키지여행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사실 호텔 조식도, 관광명소도 아니다. ‘가이드’가 패키지여행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째 이번은 ‘망삘’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점심 장소는 공항에서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일본식 정찬 스타일로 각자 한 상씩 나오는데, 이 음식이 앞으로 우리의 발목을 아니 뒷목을 잡게 한다. 처음 먹으면 맛이 없을 리 없다. 일본 음식 중에서 밥은 쌀이 좋아 담백하면서도 자르르 기름이 지면서도 쌀 고유의 맛이 그대로 느껴져 맛있고, 반찬들은 일본 특유의 달달함과 짠맛이 어우러져 크게 호불호가 나뉠 수 없는 편이다. 다만 누구라도 많이 먹을 수 없도록 강제 소식이 가능한 음식의 양이 문제.
이렇게 눈부셨는데
선글라스는 가져오지 않았다
기내식은 기내식이고 밥은 또 밥인지라 생선과 밥과 채소 절임 등을 야무지게 먹어보았다. 회사에서 스트레스 지수가 높을 시절의 점심의 양은 늘 절반밖에 못 먹는데 여행지에서의 식사량은 늘어난다. 그렇다면 회사 사람과 사무실 인근이 아닌 색다른 여행지에서 먹는 식사량은 어떻게 될까, 나도 모르는 내 식사량이 궁금했다. 평균적으로 3분의 2 정도를 먹었다. 확실하게 친구와 여행을 하거나 혼자 여행을 할 때처럼 많이 먹진 못했다.
휴양지도 아닌데 하늘은 이상하게 파랗고 태양은 존재감을 마구 세우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또 한 번 나는 좌절했다. 여행 필수 아이템인 선글라스를 가지고 오지 않았던 것. 도대체 나는 그 전날 선글라스 통을 보면서도 캐리어에 넣지도 않고 가방에 넣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정신이 제대로 있진 않았다.
점심을 먹고 이동을 해야 한다. 원래는 구마모토를 가기로 되어 있다가 그곳의 랜드마크 구마모토 성이 2015년 지진으로 무너져 성을 볼 수 없어 제외시켰다. 그 대신 요즘 떠오른다는 기타큐슈의 모지코항으로 관광지를 돌렸다. TVN 여행 프로그램 짠내 투어에서 소개된 곳으로 화면에서 봤을 때는 아기자기하고 좋을 것만 같았다. 같았다가 왜 나오는가 하면 정작 그곳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낭만적인 여행지이자, 핫플레이스라고 해도 ‘회사 동료’와 가면 그곳이 어디든 회사의 아우라가 펼쳐지는 신비한 마법이 시작되니까. (세계 3대 석양이 유명하다는 코타키나발루, 낭만적인 그곳을 회사 워크숍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충분히 ‘청평’ 펜션이 될 수 있다는 경험을 일치감치 해봤다.)
우선 기타큐슈의 고쿠라성을 갔는데 일본의 성지고는 너무 작아서 좀 어이가 없었고, 게다가 지금 보수 중이라 올라갈 수도 없었다. 이런 데는 왜 데려오는 건가 싶었지만 입장료가 없어서 데려오는 거지.라고 여행사 입장에 이해했다.
사실 여행사 입장을 이해하게 된 데는 친구이자 친한 H언니가 여행사 전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충이 분명히 있으니까 그럴 수 있다 싶은 것들이 생긴다.. 그래서 논리에 맞지 않는 곳을 넣어서 데려가도 이해를 하게 되었다. 즉 그런 게 싫으면 정말 비싼 상품을 고르면 된다.(이 말은 이 여행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일종의 후렴구, 또는 세뇌 주문이라고 여기자.)
모지코항을 가면 재밌겠지. 일말의 기대를 하기 시작했는데 버스 창 밖으로 없던 낭만을 끌어당길 수 있도록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고 문득 서울이 아니고 인천도 아니고 여기 일본이지 라는 자각이 들었다. 섬나라 일본. 버스가 내려준 곳은 정말 항구였다.
버스 내에서 자꾸 시모노세키를 설명하면서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세키’ 시리즈를 이야기했는데 그런 유머는 아무리 생각해도 타깃이 불분명했다. 이때부터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가이드의 센스 지수를 가늠하게 되었고, 버스 내에서 나와 C는 앞쪽의 좌석을 버리고 뒤로 향한다.
콘트라스트 센 풍경사진처럼 펼쳐진 항구는 그렇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바닷바람이 우리들의 싸대기를 때리기 시작했다. 후쿠오카의 날씨는 우리가 떠나기 이틀 전만 해도 맨투맨 티만 입어도 될 만큼 따뜻했다고 한다.
날씨 변덕이야 그럴 수 있다 치는데 아무리 항구라고 해도 칼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해서 도대체 풍경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모지코 레트로’라고 바나나를 처음 수입한 곳이고 예전에 지어졌던 예쁜 서양식 건물들이 남아있으며, 아인슈타인이 묵었던 호텔도 있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산책을 하는 것을 18명이 움직이며 다니니 혼자 다니던 ‘교토 여행’이 떠오르고 건물을 좀 더 자세히 보며 다니던 탐구정신 뛰어난 나는 사라지고 그곳에는 국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읽고, 사장님과 동료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어 빨리 건축물 투어를 마치고 실내로 가이드가 안내해주길 바랐다.
오랜만에 보는 아날로그 감성이 넘쳐나고 있는 항구 풍경은 그래도 예뻤다. 바다와 하늘, 다리와 레트로 풍의 건물들. 그럼에도 그 사이로 그들(동료라고 따듯하게 불러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이 있기에 내가 누구임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여백이 없는 시간이 흘렀다.
쇼핑건물로 18명이 들어갔다. 따뜻하니 사람들은 이내 얼굴이 피었다. 화장실도 가고 구경도 하라고 가이드가 말을 꺼내자마자 단독행동이 하고 싶어 졌다. C와 다니다가 5시 30분까지 오라는 말에 C를 두고는 건물 밖으로 나와 혼자 사진을 찍고 커피에 꿀을 타주는 커피집에 들어가 뜨거운 커피를 원샷하고 정말 잠시 잠깐의 여유를 만끽했다. 비밀스러웠던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정신을 다시 추스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