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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대문구점 Feb 14. 2023

성북구에서 리버풀로 날아온 한옥

틈새 집(Bridge Home, 2010)

틈새 집(Bridge Home, 2010)

유성처럼 박혀버린 한옥


영국 리버풀 시내의 작은 아파트 사이로 성북동의 한옥이 날아와 박혔습니다. 영화 해리포터의 나라답게 사람들은 마법부의 소행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이 작품은 2010년 리버풀 비엔날레에 초대받은 서도호 작가의 설치 작품 틈새 집(Bridge Home, 2010)입니다. 영국 리버풀 듀크 거리 84~86번지 두 집 사이의 공간에 한국의 전통 가옥을 끼워 넣은 설치 예술이죠. 


서도호 작가는 작품 세계를 통틀어 ‘집’이라는 오브제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 서도호>에서 선보였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은 그가 ‘집’이라는 오브제의 또 다른 연구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거주하던 공간 구석구석의 정확한 수치를 측정한 뒤, 정교하게 직조해 ‘이동 가능’하도록 설계하였습니다. 즉, ‘집’이라는 매개체가 시공간의 경계를 이동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는 집이 갖는 부동(不動)의 개념에 ‘유목적인 공간’의 개념을 덧붙인 작업이었습니다.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서도호 작가가 ‘집’이라는 오브제에 몰두하는 이유는 그가 미국 ‘이민자’였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 그는 성북구 한옥 마을에서 성장했으며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 후, 미국 로드아일랜드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습니다. 또한 전처인 미국 시민권자 아내를 따라 서도호 작가도 1991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되면서 동서양의 혼재된 문화 환경을 경험하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동양과 서양, 주거 공간이 큰 폭으로 변화하던 환경이 작가가 도시의 특성, 즉 집에 대해 주목하게 된 계기인 것으로 보입니다.

‘집’을 연구하는 예술가 서도호


틈새 집(Bridge Home, 2010) 은 한국의 전통 가옥을 다른 장소로 이동, 안착시켜 두 장소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즉, 과거의 전통 한옥이 리버풀의 구체적 지역과 현재라는 시점에 놓임으로써 서울과 리버풀의 물리적 연계성을 암시하고, 이러한 연계성은 작가가 어릴 때 살던 성북동 전통한옥의 기억을 소환합니다. 작가 스스로 이주, 이민자로서 겪었던 체험들의 다면성, 그리고 물리적 구조로서의 집과 체험한 장소로서의 집이라는 이면성을 탐구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죠. 

좌측 건물 벽면에는 “이 도시에는 km2 당 3951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웃을 좋아합니까?”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또한 대도시의 낯선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을 표상하며, 낯선 건물 사이에 익숙한 건물을 끼워둠으로써 개인의 소속감과 익명성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또한 '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상호 연결된 세계에서 사는 것이 개인과 공동체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면서 낯선 대도시에 새로운 정착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문화 차이와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집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다루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모든 것이 내 집이면서 그 어느 곳도 내 집이 아니다"라며 “한국을 떠난 뒤 집은 내게 하나의 관심사로 존재하기 시작했고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때문에 그는 내면에서 *충돌하는 두 문화의 경험을 융합하여 비롯된 새로운 문화, 시각적 영역을 구상합니다. 이러한 배경 탓에 이 작품은 두 문화 영역을 연결하려는 지속적으로 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작가는 문화 충돌이라는 표현에 작가는 ‘소프트 랜딩 Soft Landing’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서도호 작가


아직 우리에게 낯선 단어 ‘문화 충돌' 


집은 개개인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시간과 장소를 넘나드는 오브제라고 생각됩니다. 작가는 집에 대해 사색하며 자신이 생활했던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의 집들을 재구성하죠. 서도호 작가 개인에게 문화의 충돌은 세계의 충돌이었을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점차 문화의 충돌이 목격되고 있습니다. 지정학적 특수성에 의해 ‘섬'처럼 되어버린 우리나라는 그동안 ‘이민자’라는 단어를 낯설어 할 만큼 극명하게 갈리는 타문화를 경험할 기회가 적었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주변국들과의 역사적 관계에서 축적된 기억이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취하게 하는 요소로도 작용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5월 기준 15세 이상 국내 상주 외국인은 133만 2,000명으로 베트남, 중국, 이슬람 등 이민자의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로, 단일민족이었던 특수성에서 벗어나, 이제는 타민족과의 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민자들이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여러 이유로 집을 떠나온 이민자들의 문화와 특성을 이해해 주려는 태도가 갖추어져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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