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 명동점이 의자와 WiFi를 없앤 이유
스타벅스의 창립자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카페를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닌, 제3의 장소(third Place)를 제공하는 곳"이라고 정의 내렸다. 이러한 스타벅스의 철학은 공원이나 광장 같은 퍼블릭 공간이 부족한 우리나라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철학이었다.
우리나라의 카페는 하워드 슐츠의 철학을 이어받아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스터디룸, 약속 장소를 제공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심지어 제3의 공간으로 규정된 카페의 범위는 점점 확장되고 있는데, 코인 빨래방마저도 '런드리(loundry) 카페', PC방도 'PC카페'로 불리며, 스타벅스가 독점하려던 퍼블릭 공간 '카페'의 기능을 이어받고 있다.
스타벅스의 정의 덕분에(?) 카페의 발전에서 아쉽게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바로 '커피'. 그래서 국내에서 카페의 역사만큼 커피의 질은 아직 부족하다고 느낀다. 주변에서도 '나는 커피 맛은 잘 몰라'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다반사.
하지만 늦게나마 국내에서도 커피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관세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커피 수입액이 9억만 달러(한화 약 1조 1360억 원)에 달하며, 이는 직전 연도보다 14% 증가한 수치. 단순히 소비량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한 품종의 맛과 향의 커피를 즐기려는 움직임도 한 몫할 것이다. 요즘 카페에 가면 원두의 선택권을 주지 않는가.
그로인해 맛이라면 문외한인 나조차도 '산미'의 유무 정도는 구분할 수 있게 되었지.
커피에 대한 니즈(Needs)가 높아지면서 온전히 커피에 집중하려는 카페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는데, 그중 '블루보틀 명동'점의 행보가 눈에 띈다. 블루보틀 명동점은 손님들이 오롯이 커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공간에 의자와 와이파이를 없앴다. 파격적이다. “와이파이는 주의를 분산시킨다”, “휴대폰은 어른용 고무젖꼭지”라는 블루보틀 창립자 제임스 프리먼(James Freeman)의 이야기처럼, 좋은 커피와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되었다. 카페를 만남과 사무 공간이 아닌, 커피 본연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도록 유도한 공간 기획이다.
블루보틀 명동점이 '카페의 이유'였던 의자와 WiFi를 없앤 것은 블루보틀 인테리어 콘셉트의 의도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블루보틀은 매장의 디자인 콘셉트를 '미니멀리즘(Minimalism)'스타일로 세팅하는데, 미니멀리즘의 기본 개념이 '기능 외의 것을 덜어내는 것'이기 때문. 블루보틀 명동점은 카페의 기능을 '커피'로 보았고, 그 결과 불필요한 의자와 WiFi를 덜어낸 것이다.
사실 이 매장은 테이크 아웃의 새로운 네이밍 ‘온 더고 on the go’라는 표현을 내세워 매장 내에서 음료를 마실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한 구석에 앉아 공간의 디자인과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사람을 오롯이 '커피를 마시는 존재'로 작동시키는 공간이랄까.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미니멀리즘의 철학은 존중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불필요한 무언가가 불편할지라도 불편함이 주는 작은 감동이 있다고 믿는 편이라. 다시 볼 수록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