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는 죽어서 무덤을 남기네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르코르뷔지에, 그가 일생 동안 솟아올린 건물들은 총 일흔다섯 개. 그 중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물이 열 입곱개나 있으니, 앞으로 인류 역사에서 그의 이름이 영원히 기억될 확률이 높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르코르뷔지에는 노년에도 늘 건축에 대한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거장으로서 마지막 작품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리고 기나긴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생애 마지막 디자인은 자신의 무덤이었다.
프랑스 남부 해안 도시 로크브륀느-카프-마르탱(Roquebrune-Cap-Martin) 양지바른 언덕 위에 '이게 무덤인가'싶을 정도로 단출한 무덤이 그의 무덤이다. 그가 살아생전 애용했던 시멘트로 용도를 다한 자신의 몸뚱이가 뉘인 집에 지붕을 덮었다. 죽음이란 또다른 삶의 완성이라는 꼬장꼬장한 한 노인의 외침이 들린다.
지중해의 따사로운 햇볕을 사랑했던 르코르뷔지에는 지중해 태양의 입사각을 고려하여 묘판의 각도를 계산했다. 그의 바람대로 1년 365일, 지중해의 그 어떤 무덤 중 면적대비 가장 높은 햇볕을 품는다.
그는 휴가때마다 굳이굳이 파리에 있는 펜트하우스를 두고, 지금의 무덤이 있던 동네에 4평 남짓 크기로 직접 설계한 오두막에서 지냈다. 지중해의 볕이 얼마나 따사롭길래. 그는 그곳에서 하루 네 시간만 잠을 청하며 매일 아침 그림을 그렸고, 오후에는 건축을, 밤에는 글을 썼다. 빈틈없는 그의 삶은 지중해 햇빛의 보호 아래, 안온한 보살핌을 받았다.
태양을 향해 헤엄치다 죽는 것은 멋진 일
- 르코르뷔지에
1965년 8월 27일 오전 8시, 로크브륀느-카프-마르탱 해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파도에 휩쓸려 해안가로 떠밀려온 한 노인을 발견한다. 그 노인은 바로 77세의 르코르뷔지에. 발견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당시 노구를 이끌고 한 시간 넘도록 무리한 수영을 한 상태였고, 수영을 자제하라던 의사의 권고조차 듣지 않았다고 한다.
대지 위에 수 없이 높고 단단한 건물을 쌓아올렸던 르코르뷔지에는 뜨거운 여름, 유난히 푸른빛을 자랑하는 지중해의 따사로운 햇볕을 아래에서 생을 마감했다. 인생 필멸의 허무함이랄까. 아마도 푸르고 맑아서 흰 수건을 적시면 푸른 물이 들 것 같은 지중해의 바다가 그의 눈에 비친 생애 마지막 장면이었을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