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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대문구점 May 30. 2023

혁명적인 사과 이야기

폴 세잔 - 사과와 복숭아가 있는 정물


사과 하나로 세상을 바꾼 '애플' 이전, 20세기 미술계 뿐만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뒤바꾼 폴 세잔의 <사과와 복숭아가 있는 정물> 은 가히 혁명적인 사과라고 할 수 있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가 혁명적인 사과 1기려나.


겉보기에 참으로 투박한 작품인데, 정물화치고는 묘사도 부정확하고 구도도 제멋대로 뒤틀려있고 유리병도 왜곡이 심하다. 그러나 이 그림은 미술사의 주요인물로 반드시 언급되는 폴 세잔의 작품으로, '세상을 바꾼 사과'로 평가 받는다. 대체 왜? 회화의 문법상, 지적할만한 부분이 다수 발견되는 세잔의 사과는 어째서 높은 평가받고 있을까?


모네 - 인상, 해돋이, 1872
폴 세잔 - 생트 빅투아르 산, 1885


20세기 전반기 회화의 양대 산맥인 앙리 마티스와 피카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세잔의 사과는 하나의 시점이 아닌 여러 개의 시점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다시 말해  왼쪽에 보이는 접시와 사과는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가운데 오렌지를 담은 그릇과 물병은 옆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그려졌다.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을 번갈아 감아보면 사물이 달라 보이 듯, 세잔은 이 작품을 그릴 때 사물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눈에 들어오는 서로 다른 모든 장면을 한 화면에 담은 것. 르네상스 시대부터 엄격하게 지켜오던 원근법을 전복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모네 식 인상주의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였는데, 모네에게 자연이란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 의해 매 순간 달리 보이는 것으로, 그는 찰나의 빛이 사물에 반사되는 순간에 띄는 빛을 포착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러나 세잔은 빛을 포착한다는 이유만으로 즉흥적인 붓질을 하다 보면, 형태가 파괴된다고 생각해 사물 본연의 색과 형태에 집중했다.


또한 형태의 본질이 도형임을 포착한 세잔은 모든 사물을 원기둥, 구, 원뿔 등으로 도형화했다. 즉, 모든 사물의 형태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기본 도형을 발견한 것. 이는 훗날 바실리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칸딘스키의 작품


그가 떠난 다음 해, 세잔의 회고전이 열렸다. 그때 한 젊은 화가는 <사과와 복숭아가 있는 정물>을 보고 충격에 빠지게 된다. 젊은 화가의 이름은 파블로 피카소. 여러 시점을 담아낸 세잔의 정물은 피카소에게 입체주의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었고, 마티스 또한 세잔의 다양한 색채에 영감을 받아 야수파를 완성시킨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세상을 바꿨음에도, 그가 생전에 존경받던 시기는 고작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기나긴 무명 시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이 걸려 완성한 사과가 세상을 바꾼 것. 사실 세상을 바꾼 것은 사과 그림이 아니라 사과가 썩을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던 세잔의 꾸준함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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