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 근처의 한 도로, 뜻밖의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던 차량이 횡단보도를 건너던 로봇과 충돌한 것. 엥 로봇? 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사실이다. 로봇은 즉시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전신에 심한 타박상과 골절상이 발견되어 위독한 상태. 곧장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결국 사망하고 만다.
사고 피해자의 이름은 ‘로봇 K-456’. 1964년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일본인 엔지니어 아베 슈야가 함께 낳은 원격조종 로봇이다. 이름의 뜻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8번, 쾨헬번호 456에서 그 이름을 따 '로봇 K-456'이라고. 그나저나 이때부터 메이드 인 코리아는 'K'를 붙이는 게 국룰이었나 보다.
우리의 'K-456'은 뼈대만 앙상한 고철 팔다리, 성인 남성 키에 육박하는 몸뚱이를 가졌으며 사람처럼 길을 걸어가고 곡식을 먹으며 배설도 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마치 사람인 양 흉내 내는 K-456의 영혼 없는 눈동자를 보고 있자면 동질감과 이질감 사이의 불쾌함이 찾아온다. 불편한 골짜기에 아슬아슬 걸려있는 형태.
사실 이 사건은 백남준이 기획한 ‘퍼포먼스’였는데, 백남준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21세기 최초의 로봇 교통사고”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인류가 기술을 통제해야지 기술이 인류를 통제하게 해선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산업사회에서 인류보다 더 나은 효율을 보이는 AI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다.
하지만 사고 당시, 이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미래에는 인공지능 알파고가 인간과 바둑을 두어 이기거나, AI가 그린 작품이 미술대회에서 1등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서로 대화를 하던 도중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거나, 로봇이 인간의 몇 배 이상의 무게를 번쩍번쩍 들어 올릴 때마다 몇몇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거부반응을 일으키곤 한다. 더 오래전 마차를 타고 다니던 인류가 오늘날에 익숙한 자동차가 등장했을 당시, 흉물스러운 기계라며 도로에서 쫓아내려고 했던 것처럼.
로봇도 자동차처럼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을까?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의 대체제일까? 백남준의 로봇 K-456 교통사고 속에 그 힌트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