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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대문구점 May 12. 2024

그저 동네 일상에 관한 사담들

서대문구점 인터뷰, 그랬구나 With 홍연길

Editor | @geumtoil__ Interviewee | @hongyeongil_seoul 


누구에게나 자주 걷게 되는, 자주 방문하게 되는 가게가 있다. 우리는 그곳을 ‘단골’이라 부르며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며 안녕을 묻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가게가 SNS를 운영하는 덕분에 사장님께 안부를 묻는 일이 꽤 자연스러워졌는데, 단골집에 다녀온 일상을 SNS에 올리면서 들키고 싶은 응원의 마음을 SNS를 통해 슬쩍 던지기도 한다. 수줍은 응원에 돌아오는 ‘좋아요’는 다른 결의 애정일테다.


홍제천과 안산 도시공원 사이, 작은 가게들과 갤러리가 모여 있는 홍연길을 거닐며 기록하는 산책러가 있다. ‘홍연길’님은 일기장처럼 동네에서 나눈 잡설과 느낌, 생각들을 기록한다. 너도나도 매체가 되려는 인스타그램 세상 속에서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본질을 지키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돌발스러운 사태를 생각하면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는 홍연길님은 인터뷰 당일 하고싶은 말을 놓칠까봐 마인드 맵으로 빼곡히 전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오셨다. 대화에 임하는 그의 성의에 감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기장처럼 끄적끄적


일기처럼 동네 일상을 기록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홍연길은 어떤 채널인가요? 먼저 이런 좋은 매체(?)에 좋은 지면(?)에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인터뷰를 하는 일에 대해 고민 좀 했었는데 홍연길 주민들과 사장님들께 제 이야기가 잘 전달될 것 같아 용기를 냈습니다. 최대한 진심으로 임하겠습니다.


홍연길은 아기를 안고 배우자와 함께 매일 동네를 산책하고 걸으면서 했던 뻘생각들을 기록하는 계정이에요. 사실 제 일기장 같은 공간이기도 해요. 제가 제일 사랑하는 시간, 가족과 함께 산책하며 시시콜콜 나눈 잡설들을 기록하는 일기장이죠.


계속해서 기록하다보니 점점 저의 관심사도 확장되더라고요. 요즘에는 친환경 생활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래도 본질은 홍연길 이 동네에 대한 애정이에요. 이 공간에서 받은 영감들이 곧 저의 글감입니다. 



사실 홍연길님은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서인지, 이 채널이 ‘일기장’이라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채널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사실 재밌자고 시작했어요. 덕질을 하듯이 가볍게 시작했던 채널이었죠. 제가 사실 MBTI, J다 보니 계획이 수립되기 전까지 행동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채널은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시작했어요. 이상하게 그러고 싶더라구요. 글쓰기 모임에서 금토일(서대문구점 에디터)님을 만나 이야기 나누며 P적인 태도에 영향받았던 것도 같아요.


처음에는 소위 유행하는 지역 큐레이션 같은 걸 해볼까 생각했어요. 동네 가게들을 자주 다니는데 그 기록들이 아깝잖아요. 그래서 올려보기 시작했는데, 취미로 시작한 것이 갑자기 부담이 되더라구요. 제가 기자도 아닌데 말이죠.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뭐하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성격상 자기 의심을 많이 하는 편인데, 제가 아무리 혼을 담아서 리뷰를 한들 사장님들의 생각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도 되었구요. 그러다보니 리뷰하는 글들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편하게 일기처럼 쓰고 있습니다. 상점에 대한 내용은 줄이고 그 곳에서 겪는 제 생활이나 잡념들의 비중을 늘이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더 확고해졌어요. 곧 자라날 저희 집 아기에게 홍연길은 정서적인 고향이 될 거거든요. 지금 저희 가족의 생활과 아기의 모습을 기록해 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일기장처럼 기록하시는 홍연길의 방향은 아기가 태어난 다음 더 확고해졌다고 하셨어요. 아기가 자라서 이 채널을 봤을 때, 혹은 자연스럽게 동네를 체험할 때 어떤 인상을 품기를 바라시나요? 꼭 아기가 태어나서 바뀐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채널에 대한 저의 생각이 변하던 시점에서 아기의 탄생이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어요. 아기가 너무 어리다보니, 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할테니 기록해주고 싶었어요.예컨대 ‘우리 가족은 이렇게 살았었다.’라던지요. 꼭 특별한 인상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가져본 적이 없어요.



저는 아직 부모가 아니다보니, 아기의 한 시절을 기록해주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직 이해하지 못합니다. 혹시 한 시절을 기록해주고 싶다는 마음은 개인적인 기억과 연관이 있을까요? 앨범에서 어릴적 사진을 봐도 사실 동네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아요. 다만 사진 속 부모님과 저의 표정을 보면서 ‘내가 이랬구나’라는 걸 기억할 수 있겠더라고요. 물론 홍연길을 보면서 가져갈 감정은 아이의 몫이지만요.


저는 전주가 고향이에요. 그동안 서울에 살면서 서울 토박이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제게 확실한 고향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위안이 되더라고요. 바꿔 생각해보니, 아이에게는 이 동네가 고향이겠더라고요.


홍연길님의 인스타그램 프로필, 근엄하면서도 인자한 미소의 얼굴


가게마다 이야기가 있는 골목, 홍연길


프로필 사진의 근엄한 얼굴이 흥미롭습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무엇보다 홍연길 채널은 힘 있는 매체보다 제 생각을 저만의 방식대로 적는 일기장이에요. 일종의 퍼스널리티를 강조하고 싶어 바꿔봤어요.


기록의 무대인 홍연길로 포커스를 옮겨보죠. 친환경 생활 문화가 자리잡은 홍연길을 걷다보면, 그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이 거리에 영향을 많이 받아 친환경 생활에 관심이 많아졌는데요. 원래 환경보호는 착한 사람들만 하는 거라 생각했을 정도였어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유난스럽고 번거롭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이 생각이 180도 바뀌게 된 날이 있었는데, 홍연길의 유어보틀위크를 참여하면서 부터였죠. 다회용기로 음식을 포장하고, 텀블러를 사용하다보니 재활용 제품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조금씩 사용하면서 습관이 되다보니 전혀 불편하지 않게 됬고요. 오히려 본질적인 것에 더 집중하게 되고, 함부로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비단 물건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나 시간 같은 것들에도요.


얼마 전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광경을 보았는데요. 어떤 벽안碧眼의 외국인 아저씨가 빈 계란판을 집에서 가지고 나와서 뚜벅뚜벅 걸어가는거에요. 그러고는 홍연길에 있는 계란집(해성상회)에 무심하게 툭 가져다 주시더라구요. 그 모습이 굉장히 쿨해보였어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수십번 해보셨는지 습관처럼 생활에 베인 행동이랄까. 친환경생활은 그런 것 같아요. 거창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 요즘은 육아하면서 어떻게 친환경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홍연길 채널에 재미 있는 이야기들을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hongyeongil_seoul


저는 사실 홍연길을 기록하신다고 하셨을 때 조금 놀랐어요. 짧은 거리의 골목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거든요. 특별히 홍연길이라는 골목을 기록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살고 있는 곳이 서대문구청 인근이다 보니 홍연길에 자주 와요. 홍제천을 따라 산책도 자주 하는 편이죠. 동네에 좋은 곳이 많다 보니까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좋은 곳에 많이 갈 수 있더라고요. 워낙 저희부부가 걷는 것도 좋아하구요.


지내다 보니 홍연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삶에 주체적이고, 자신만의 고유함을 가지려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느낍니다.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스트릿’별로 문화가 생기고 있는데, 홍연길이 그런 느낌이더라고요. 더군다나 골목 사이사이 갤러리가 있는 곳은 강남이나 북촌, 서촌에 가야 있을 정도에요. 갤러리 뿐만 아니라 보틀라운지나 플라스틱 팜, 베지스, 다정한 마음, 선리네 등 모두 소상공인임과 동시에 하나의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자기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개념으로 공간을 운영하는 곳이죠. 넓은 의미에서 보면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멀리서 보기엔 가게 사장님끼리 연대감도 있으신 것 같은데 그 덕분에 특유의 친밀한 분위기도 뿜어져 나와요. 그래서 상권보다는 동네라는 느낌이 많이 들죠. 덕분에 끊임없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상권처럼 보이는 큐레이션을 중단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좁은 골목인 만큼, 소수의 사장님들과 긴밀하게 소통하시는 것 같아요. 홍연길이라는 채널을 운영하신다는 사실이 사장님들과 소통을 이어나가는데 도움이 되시나요? 사장님들과 소통하는 것은 계정과 상관 없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저의 일상에서 그만큼 자주 방문하다보니 자연스레 단골이 됐죠. 계정이 없더라도 지금의 관계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 같아요. 저는 그저 한명의 이웃일 뿐이에요.


꼼꼼한 준비가 엿보이는 홍연길님의 노트 © seodaemun.9



골목을 구석구석 다니다 보면 다른 사람들은 발견하기 어려운 모습을 발견하실 것 같은데요. 혹시 홍연길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베지스에 방문했다가 카운터 앞에 있는 나무 간판을 봤었는데, 너무 예쁘더라고요. 어떻게 연락이 닿아서 베지스의 간판을 만들어준 목공소에 가봤어요. 베지스 바로 옆에 있는 써드핸드라는 목공소였어요. 예술적인 아우라가 느껴지는 공간이었어요.


알고 봤더니 홍연길 곳곳에 예술가 작업실이 많이 숨겨져 있더라고요. 가끔 그림도 구매하려고 하는데, 갤러리가 늘어선 골목에서 좋은 그림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그래서 좋은 작품을 발견하면 소장하고 싶기도 해서 구매하려 합니다. 그 때의 그 감정을 잡아두고싶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이 것도 다른 형태의 일기인 셈이죠. 1년에 한 번 한 점씩 집으로 모셔옵니다. 그 해에 제가 느낀 감정들을 응축한 것만 같은 작품들을 찾습니다. 매년 홍연길에서 열리는 연희 아트페어에서요.


그림이라는 것이 선뜻 구매하기 어려운 금액이지만 그 동안의 관람료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구매한 그림은 갤러리 민트에서 만난 이한나 작가의 그림이었어요. 이 동네의 예술문화를 아끼는 마음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그저 동네 일상에 관한 사담들


채널을 운영하시면서 보람 있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팔로워가 많지는 않지만, 소리 없이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 덕분에 글이 읽히는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솔직히 내심 팔로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던 적도 있었어요. 스스로 유명해지고 싶은 건가, 라는 의심도 들었던 때도 있습니다. 사실 누가 본다고 생각하면 쑥스럽기도 하지만 즐겁기도 해요. 요즘 드는 생각은 지금이 딱 좋습니다. 진짜에요.


저도 채널을 운영하면서 마주하는 순간이라 궁금한 질문인데요. 혹시 정체(?)가 발각되시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모르고 계시는 분도 많더라고요. 홍연길을 팔로우해 주신 분이 게시물이나 스토리의 맥락을 보며 종종 저를 알아보시는 경우도 있는데요. 실제로 저를 보고 예상과 다른 인상을 받으시는 것 같아요. 갭 차이를 느끼시는 걸까요. 저는 그 점이 흥미롭기도 해요. 그건 그렇고, 일주일 치 말을 다 한 것 같아요.



‘업무에 참고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시는데요. 마치 유행어 같다고나 할까요. 글을 쓸 때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요. 개그요. 농담입니다ㅎㅎ. 되도록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 신경 써요.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싶어요. 평소 하던 뻘생각을 적어두려고도 해요.



마지막으로 먼곳에서부터 홍연길에 방문해주시거나 살고 계시는 분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방문하시는 분들께는, 이 곳의 단편적인 모습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하시면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을 거라고 얘기 드리고 싶구요. 주민과 사장님들께는 이 기회를 통해서 제 취지를 설명하고 감사함을 전달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동네를 동네로써 기억하려는 기록물을 종종 읽어주세요!



진짜 마지막으로 ‘홍연길’로 삼행시 부탁드립니다.

홍록기

연정훈, 연규진

길용우, 길은정, 길복순..


홍대입구에서 

연희파크 푸르지오까지 

길 안막히면 차로 5분


홍연길은 멋진 곳이에요

연대하는 주민들의 거리로

길이 보전하세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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