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점 143 | 불광천 캘리포니아의 향기 ‘립타이드’
글&사진 @seodaemun.9 가게 @riptide_seoul
불광천은 나에게 남다른 곳이다. 서대문구로 이사 오기 전엔 불광천을 보고 이사를 결심했으며, 살면서는 헨젤과 그레텔이 빵 부스러기를 흘리듯 나의 힘듦과 고민을 떨구어 놓던 품이었다. 그 덕분에 불광천을 따라 난 길마다 자리한 가게들을 보면 어쩐지 애틋한 마음이 솟는다.
불광천 가로의 새로운 가게 ‘립타이드’가 자리한 곳은 오래전 ‘우주’가 있던 자리였다. 우주는 외계어로 된 간판과 나무 합판으로 가려진 외관이 신비로웠던 곳으로, 불광천에 사는 동안 늘 궁금했던 가게였다. 하지만 동네에 마땅한 술친구가 없어 번번이 들어가지 못했던 가게였다. 그러던 어느 날, ‘좋은 사람’과 약속이 생겨 마침내 그곳을 찾게 되었고, 나는 옷걸이에 옷을 걸 듯 그날의 기억을 가게 한 쪽에 걸쳐 두고 나올 수 있었다. 개인적인 낭만이 조용히 스며든 저녁이었다. 그 뒤로 우주의 취재를 준비했지만, 하루하루 건너뛰는 사이, 우주는 나도 모르는 사이 문을 닫고 말았다.
몇 번의 이사를 거쳐 불광천의 낭만은 우리 집으로부터 버스로 40분을 가야 하는 가깝고도 먼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작년 11월, 불광천에 새로 생긴 ‘캘리포니아 펍’이라는 소개와 함께 립타이드 지윤 사장님으로부터 초대 DM을 받았다. 립타이드는 서대문구점 3년 ‘짬바’로 견적(?)을 내었을 때, 확실히 느낌 좋은 가게였기에 곧장 가고 싶었으나, 먼 거리와 산재한 일상의 일들에 밀려 방문을 미루게 되었다. 방문은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후에야 이루어졌다. 그때 그 ‘좋은 사람’과 함께.
‘좋은 가게’는 내가 무얼 하지 않아도 금세 입소문을 탄다. 역시 립타이드는 그런 곳이었다. 방문한 날이 평일 저녁이었음에도 약간의 대기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사장님의 추천을 받아 맥앤치즈와 플라펠 플레이트, IPA생맥과 피넛버터 밀크 스타우트를 주문했다. 주문을 기다리는 사이, 가게를 둘러보았다. 와글와글 손님들의 대화, 혼맥 하며 책을 읽는 손님, 미국 서부 느낌 물씬 나는 플레이 리스트와 서울을 미국으로 둔갑시키는 두 사장님의 영어 대화, 솜씨 좋은 캘리포니아 출신 셰프 ‘맥스’의 요리와 아무 데서나 보기 힘든 IPA 생맥주와 기네스 생맥주까지. 곧이어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맛에 취해, 맥주에 취해 우리도 가게의 분위기 속으로 젖어 들 수 있었다. 음식을 거의 다 비울 즈음 가게 문을 바라보니 새로운 손님이 들어선다. 그 손님도 아마 이 분위기를 두고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초대해 주신 사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초대는 사사로운 이유로 서대문구점 운영을 우선순위에서 미루던 시기에 전해주신 것이다. 방문하겠다고 말한 뒤 5개월이라는 공백의 시간 동안 지나친 가게가 많았고 자연스레 쏟는 마음 또한 줄여가던 찰나였다. 하지만 초대 덕분에 잊고 있던 서대문구점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인사할 명분 없는 사이에서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는 일 말이다. 개인적으로 다음 가게를, 다음 모임을 열게 될 에너지를 충전한 시간이었다.
음식값을 치르고 싶었지만, 사장님께서 사양하셨다. 신세 갚을 길이 보이지 않으면 신세를 지지 않으려는 성미인지라 값을 치르고 싶었지만, 왠지 이번에는 신세 지고 싶어 넙죽 받았다. 립타이드는 여전히 우리 집에서 40분 떨어진, 그래서 동네 술집이라고 부르기 뭐한 거리에 있지만 오늘의 대접은 다시 찾는 발걸음으로 갚겠노라, 은의를 품은 채 기꺼이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 얼굴 잊어먹기 전에 또 방문하기를 다짐해 본다.
주소ㅣ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342-23
위치ㅣ증산역 1번출구에서 조금만 더 가면 됨
시간ㅣ17:00 - 24:00 (매주 화요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