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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사님 따라 들어가 본 백반집

서대문구점 145 | 충정로 기사님들 단골집 '경기식당'

by 서대문구점

글&사진 @seodaemun.9 가게. 경기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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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충정로역으로 가기 위해 서대문 02번 마을버스에 오르면 ‘인창중·고등학교’ 정류장 앞에서 버스가 잠시 멈춘다. 이유 없이 정차한 듯 보이지만, 곧 다른 기사님이 올라타 교대한다. 버스가 다시 출발하려는 찰나, 나는 막 내린 기사님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잠시 후, 기사님은 익숙한 듯 정류장 앞 ‘경기식당’으로 후다닥 사라진다.


‘흥미로운 식당을 발견했군’


그로부터 몇 주 뒤, 충정로역에서 내려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점심시간이 넘도록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지 못하였는데, 그러다 서대문 02번 버스를 발견했고 뒤이어 경기 식당이 떠올라 가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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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은 주인아주머니가 틀어둔 TV 속 이름 모를 연속극 소리뿐, 조용했다. 손님 테이블에 앉아 TV를 보시던 아주머니가 나를 자연스럽게 맞이하셨다. 연세는 많이 되어 보이지 않았는데, 무릎이 불편하신지 테이블을 짚고 천천히 움직이신다. 주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 파마가 잘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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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시켜야 할지 고민하는 나에게 ‘김치 구이’를 추천해 주셨다. 고기도 들었으니 맛있을 거라고 했다. 가장 유명한 메뉴냐고 여쭤봤지만, 별말씀이 없으시다 직장인들이 많이 시키는 메뉴라고 했다. 주문을 마치고 메뉴와 반찬이 준비되자 무릎이 불편하니 챙겨가라고 하셨다. 무심하지만 다정하게 뒤편 정수기에서 물도 챙겨 마시라고 했다. 친절마저도 판매하는 세상에서 흔치 않은 자연스러움이다.


이른바 ‘로컬 씬’에서는 지역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장들이 자신의 성공 사례를 발표한다. 어느 대학 교수와 매년 국내 트렌드 키워드를 선정하는 전문가도 함께하며, 지역 활성화를 위한 붐을 일으키고자 노력한다. 완결성과 개성을 갖춘 브랜딩, 공간 디자인,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환대)’ 등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들이 강조되며, 더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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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5194.jpg 테이블에 놓인 화구에서 직접 끓여 먹어야하는 '김치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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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요소들은 성공한 브랜드가 공통적으로 지닌 특성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흐름이 새로운 경쟁 구도를 부추기는 일종의 ‘불안 마케팅’처럼 느껴진다. 누구나 정답 없는 세상 속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버티고, 얻으면서도 잃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정답이 존재하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곤 하는데, 사실 그런 마법사는 세상에 없다.


식당에서 밥먹다 별생각을 다한다 싶다.


식사는 가격에 걸맞게 적당히 맛있었고,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친절이나 청결 같은 요소를 모두 상품의 일부로 환원시키는 세상의 기준으로 보자면 부족한 점이 많은 식당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세상일수록, '경기식당'은 오히려 인간미가 느껴지는 소중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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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ㅣ서울 서대문구 충정로9길 22

위치ㅣ인창중고교 버스 정류장 앞

시간ㅣ09:00 -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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