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상상력이 넘치는 인생.
아무리 바쁘더라도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은 예쁨들이 있다. 퍽퍽한 일상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작은 예쁨을 마주칠 때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아마도 나의 상상력이 낳은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상상력이 낳은 그 미소는 내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혈관을 타고 말단까지 따뜻함을 전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상상의 통로를 지나 일상의 틈새에서 희미하게 꿈틀대는 사랑과 믿음, 그리고 어느 순간 진심을 담아 말하기 어려운 응원 같은 가능성. 이내 비집고 올라온 가능성의 실오라기를 붙잡아 구석에 잠들어있던 또 다른 가능성과 연결시켜본다. 얼음 한알 크기의 청포도 사탕을 입에 문 것처럼 연결된 가능성을 입에 넣어 혀로 왼쪽, 오른쪽으로 굴려본다. 살아가야 할 이유를 한 꺼풀 더 찾은 것만 같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어제 오후 세시쯤 산책할 겸 동네를 걷다가 우연히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을 발견했다. 어린이집 교사의 인솔 아래 어딘가로 향하는 모양이다. 속속들이 발견되는 작은 예쁨들, 서로를 놓칠세라 옆의 짝꿍의 손을 꼭 잡고 걷는 아이들과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재잘재잘 입에 모터가 달린 아이, 호기심을 샘솟게 하는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대열에서 이탈할까 말까 꿈틀거리는 악동. 그런 아이를 연신 살피는 선생님의 기민함까지. 상상의 통로는 시간을 초월한다. 미래의 내 아이는 어떨까 상상한다. 아직 이름도 모르는 아이, 성별조차 결정되지 않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의 모습의 실재를 상상해본다. 이게 뭐라고 혼자 감동한다.
이따금 친구들을 만나 그간 축적된 감동들을 풀다 보면 친구들은 상상력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며 퉁명스럽게 브레이크를 걸곤 한다. 끄덕끄덕. 나 역시 동의하는 부분이다. 나의 상상력은 감동을 잉태시키기도 하지만 가끔은 상상에 빠져 현실의 것들을 놓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버스를 잘못 탄다던지, 목적지의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던지...) 어떠한 일을 결정할 때는 지나친 상상력에 빠져 걱정만 늘어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음악인으로서 발매를 계속해서 미룬다던지...) 유독 넘치는 상상력이 단점처럼 느껴졌던 때도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 넘치는 것은 나의 장점이요, 또 단점은 뒤집으면 장점이 된다. 스탕달의 '적과 흑'의 줄리엥이 눈앞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 자질이 그를 탁월한 존재로 만들어준 자질이 같은 핏줄인 것처럼. 별 것도 아닌 상황에서 가능성을 끄집어내는 나의 상상력도 언젠가 나를 탁월한 존재로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하며 내가 발견한 '가능성'들을 하나씩 풀어헤쳐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