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그 이상을 넘어 존재의 이치를 알 수 있는 학문
나의 존재는 세상에서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까. 물리학적으로 ‘작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비교대상이 있어야 한다. ‘존재감’이라는 것은 수학적으로 계산하기 어렵지만 나의 물리적인 높이 178cm는 크기로서 정의 내릴 수 있다. 크면 크고 작으면 작은 키이다.
내가 만약 방송인 서장훈 씨 눈앞에서 본다면 23cm의 차이가 큰 차이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우주에서 우리를 본다면 23cm는 얼마나 작은 차이일까?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나의 ‘상대적인 작음’을 알기 때문에 실패해도 티끌이라는 마음으로 더 부담 없이 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자신감으로 치환하거나 작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갖게 되는 대자연에 대한 겸손함도 겸비할 수 있다.
물리학을 생각하면 지루하고 복잡하다. 우리 생활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지식인 것만 같다. 하지만 물리학은 우리의 삶과 멀지 않은 곳에 늘 존재하고 있었다. 예컨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없었다면 컴퓨터나 휴대전화도 우리 삶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생활과 아주 밀접한 빛, 열과 온도 등에 대한 과학자의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도출해낸 결론을 응용하여 인류에게 수많은 발명품으로 우리의 삶에 편리함을 안겨주었다.
지구에서 수많은 개념들을 보낸 안드로메다 행성은 지구에서도 육안으로 보이는 정도로 가까운 은하인데, 안드로메다와 지구와의 거리는 250만 광년이라고 알려져 있다. 빛의 속도가 초속 30만 km 인데도 250만 년이 걸린다. 만약 안드로메다에서 지구를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현재 지구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250만 년 전 지구에 출현한 손재주 있는 사람, 호모 하빌리스가 관측될 것이다.
심지어 우주는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다.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지만 꾸준히. 여자 친구가 남자 친구에게 “얼마큼 사랑해”라고 묻는다면 (위기가 찾아왔다), 보편적인 센스를 갖고 있다면 (혹은 싸우고 싶지 않다면) “우주만큼 사랑해”라고 답할 수 있다. 그에 여자 친구가 “매번 우주만큼이냐”라고 했을 때 남자 친구는 뭐라 대답해야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까? 이때 물리학의 힘을 빌려 과학적이고도 애정을 담아 위기를 보면 할 수 있는 답변을 한다면 “우주는 매일매일 팽창하고 있어. 나의 사랑은 매일매일 커져”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가뜩이나 커다랗고 커다랗기에 더욱 작은 인간의 존재는 매일 상대적으로 더 작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지하고 끊임없이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순수한 욕망과 호기심은 존경스럽다. (인류가 지구에서 오래 살아남은 비결이기도 하다.)
인간의 순수한 욕망과 호기심을 가진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다. 잘 알려진 의심 왕 데카르트가 과학분야에서도 업적을 남긴 것은 끊임없이 의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기를 발견하기 위해 약 만 번의 실험이 있었다는 것은 과학이 얼마나 집요한 의심을 품고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학문인지 알 수 있다. 행동하지 않으면 틀릴 수 없는 것, 행동하고 틀려야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과학을 배우는 이유이다.
오늘까지 짧은 경험이지만 네 개의 취향을 정리하고 소개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읽어주실지 고민이 많습니다. 많이 써보는 방법밖에는 없겠지요. 저는 우주의 티끌 같은 존재이고 티끌이기에 두려움 없이 더 많이 시도하고 실패하고 고쳐서 완성시켜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