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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Apr 09. 2018

[콜미바이유어네임]

- 게이도, 바이섹슈얼도 아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도 남색을 했다는 설이 있는데 그 대상은 친구 헤파이스티온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와 가장 절친한 친구였으며 연인이었다.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다리우스 3세가 이끄는 페르시아와의 일전을 벌여 끝내 승리한다. 알렉산더는 잡힌 다리우스 3세와 그 가족들을 확인하기 위해 친구 헤파이스티온과 함께 방문한다. 다리우스의 어머니는 대왕의 얼굴을 몰랐다. 알렉산더와 헤파이스티온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그만 체격이 더 큰 헤파이스티온 앞에 무릎을 꿇어버렸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별반 기분나빠하지도 않고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마음에 두지 마시오, 이 사람도 알렉산더니까.”     


알렉산더와 헤파이스티온이 얼마나 각별한 사이였는지를 알려주는 일화는 또 있다. 헤파이스티온이 갑자기 병으로 쓰러져 7일 만에 죽었을 때, 알렉산더는 식음을 전폐하고 틀어박혀 엉엉 울었다고 전해진다. 의사는 투약을 잘못했다는 죄로 처형되었다. 이후 헤파이스티온을 위해 거대한 화장 제단을 쌓아 그를 신으로 모시도록 지시했다고 하니 그에 대한 알렉산더의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마음에 두지 마시오. 이 사람도 알렉산더니까. 하는 말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들렸다면 비약일까.     

 

*     

에라스테스는 소년의 연인이라는 뜻이다. (18~40세의 남성)

에로메노스는 사랑받는 자를 말한다. (12~17세의 남성)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랑을 남녀 간의 사랑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아테네에서 에라스테스와 에로메노스는 애인이자,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 영원히 애인으로 남는 것은 아니고 에로메노스가 18살이 되면 에라스테스가 되는 구조였다.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

철학자들은 모두 아름다운 소년들과 관계하고 있었고, 이는 자연스럽고 명예로운 관계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고 한다. 에라스테스는 에로메노스에게 경험과 지식을 전하고, 철학적인 멘토의 역할을 하며 그의 성장을 돕고, 지원했다. 성적대상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동반자의 관계에 가까웠다. 


알렉산더의 ‘이 사람도 알렉산더니까.’ 하는 말과 고대 그리스의 에로메노스, 에라스테스 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닮은 점이 많다.     


*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보이는 감정은 어쩌면 사랑이고, 한편 동경으로 보이기도 한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미완성인 엘리오는 자신감 넘치고, 근육질에, 지적인 올리버를 보며 완성된 남성으로서의 동경을 느낀다. 그래서 그를 닮으려 하고, 한없이 부족해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난 나머지 그를 미워하려고까지 한다. 일종의 방어기제다.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

엘리오는 동경하는 올리버를 조금씩 흡수하면서 처음의 소심하던 모습을 벗어나, 올리버나 마르치아를 주도하기도 하고, 벗어버렸던 목걸이를 다시 목에 당당히 걸기도 한다.
 올리버를 알게 될수록, 그 또한 완전한 남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혼란해하고 두려워하는 일면을 가지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엘리오는 어느 정도의 실망을 겪게도 된다.     


올리버라는 에로메노스와 엘리오라는 에라스테스는 단순히 성적 대상이 아니기에 아름답다. 그들은 철학적, 예술적인 취향을 공유하고, 터놓고 대화한다. 같이 수영을 하고, 자전거를 탄다. 토론하고, 섹스하는 그들은 게이나 바이섹슈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사랑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고자 한다. 올리버는 엘리오에게서 배우고 닮고자 하는 것이 있고, 엘리오 또한 올리버에게 닮고자하는 면이 있다. 서로는 서로의 약점을 운명적으로 깨닫고 빈틈으로 침투한다.      


타인을 내 이름으로 부름으로 인해 생기는 효과는 두 가지다. 나는 타인이 되고, 타인은 내가 된다. 내가 타인을 사랑함으로 인해 나는 나를 사랑하게 된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곧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

영화는 결국 게이도, 바이섹슈얼도 아닌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아무것도 규정되지 않은 사랑의 실체를 보여주고자 한다. 사랑에는 룰이 없다는 것. 사랑이라는 복잡한 조건과 형태를 만족할 필요 없이. 그저 느끼는 그대로의 감정 그 자체를 사랑하면 된다는 것이다.


내 가슴에 느껴지는 감정을 분리하거나, 규정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사랑, 이것은 우정, 이것은 존경, 이것은 호감. 언어의 틀에 갇힌 감정은 사람을 혼란하게만 할 뿐이다. 좋은 것은 좋은 것 그대로의 것. 정답도 오답도 없는 내 마음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누지도 말고, 감정을 그대로 씹고, 음미하고 삼키는 것. 때로는 배탈이 나고 토해내더라도 삼키고 소화해내는 용기가 결국 나를 나이게 한다는 것을. 모닥불 앞의 엘리오는 배우고 있다.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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