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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Apr 14. 2018

가끔은 앓고 싶다.

- 아플 때의 무기력한 기분이 좋다.

가끔은 앓고 싶다.          


나는 감기에 자주 걸린다. 어릴 때부터 주욱 그랬다. 타고난 허약체질이어서 쌀쌀해진 날에 조금만 무리를 한다거나, 비를 맞는다거나 하면 금세 목이 칼칼해지고 편도가 붓는다. 너무 익숙한 일이라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소염제를 먹고 적당히 휴식시간을 늘려서 활동이 가능한 수준으로 컨디션을 맞추는 일에도 능숙하다. 병원에 가는 걸 그리 겁내거나, 간단한 내과 치료비를 아까워하지도 않는다. 처방을 받으면 심심해서 약의 이름이나 효과같은 것들을 찾아 읽어보는 편이다. 잦은 감기와 호기심으로 진통제의 종류나 효과, 중복되는 약들의 이름같은 것들을 많이 외우고 있다.

감기가 이리도 익숙할만큼. 부끄럽지만 나는, 감기에 자주 걸리는 남자다.   

  

크게 마르거나 뚱뚱하지도 않고 키도 작은 편은 아니라서 트레이닝 복을 입으면 꽤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래서 나를 곧잘 건강한 사람처럼 오해한다. 사실 구기종목도 되게 못하는데 군대에 처음 입대하고 나서는 선임들이 내가 축구를 잘하는 줄 알고 자꾸 축구경기에 끼우기도 했다. 나는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인데, 한 번은 경기가 끝나고 나서 선임이 나에게 그랬다. ‘괘씸한 놈. 나를 속여?’

나는 그저 못했을 뿐이었다,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엄청 못하니까 배신감이 들었을 것이다.     


*


아무튼 나는 대단한 건강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평균적인 체력에 감기가 자주 걸리는 체질이다. 가을 겨울에는 두 달에 한 번씩은 감기 증상을 일주일쯤 달고 산다. 일 년에 꼭 한 번은 감기 때문에 정말 끙끙 앓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도 오한에 몸을 떨며, 식은땀을 낸다.

그러면 살아서 뭐하나, 이럴 바엔 그대로 죽어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싶다가도, 조용한 방 포근한 이불에서 끙끙, 아주 끙끙 앓다보면 병이 주는 무기력한 기분이 마치 뱃속의 아기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줄 때가 있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속편한 아늑함도 느껴진다.     

그래서 지치는 나날이 지속되는 어느 때에는 독한 감기에 걸려서 하루 이틀 이불 속에서 끙끙 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핑핑 도는 무거운 머리를 베개에 박고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 반나절쯤 땀을 내고, 허리가 뻐근할 정도로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넌 참 어른스러워.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의 이런 나약함을 설명해야하나 고민한다. 내 생각에 나는 평생 절반은 어린애일 것 같다. 가끔 끙끙 앓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까. 어쩌면 꽤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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