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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Apr 22. 2018

경솔한 전공 선택의 선물

- 인생은 선택의 연속

굳이 말하기 민망할 정도지만, 인생은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다. 평생 지속되는 육아의 무게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섹스를 하는 부부가 있을까. 우리는 때로 인생을 뒤바꿀 만큼 중요한 결정을 되레 너무나 쉽게 내리곤 한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예상을 깨고 탄생하는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전공을 선택한다는 것은, 사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하지만 그 무거운 파급 효과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전공을 선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했는데, 전공을 선택한 이유를 말하려면 조금 부끄럽다. 그냥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전공을 선택했다. 그 날의 즉흥적인, 간단한 절차로 나는 그렇게 국어전공자가 된 것이었다.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사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군복무를 하면서 나는 세상에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전공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두 가지 재미있는 점을 알게 되었다. 첫째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자신의 전공에 대해 모른다는 것. 두 번째는 전공 선택의 이유가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영어학과에 다니던 한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영어학과를 선택한 것이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했다. 세상에는 영어를 전공하지 않고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영어에 대해 물어올 때, 즉각적으로 대답하지 못하면 거의 경멸의 눈빛을 감내해야 한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공감을 하며 웃었다. 아마도 그는 평생 영어학과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수많은 영어단어와, 문장 앞에서 난감해해야 할 것이다.     

전 국민이 할 줄 아는 국어를 전공한다는 건 어떤 기분이겠느냐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부끄러울 일은 차고 넘친다. 가령 도전 골든벨 같은 프로그램을 볼 때 ‘조선 중기 박인로의 이 작품은.’ 과 같은 문제가 아나운서의 입에서 발음되면 나는 괜히 옆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어이 국문과. 저게 뭐냐?’하고 물으면 그 많은 작품을 어찌 알겠냐며 쿨한 척 얼버무리지만 마냥 덤덤하기 어렵다. 브런치에 글을 쓸 때에도 그렇다. 국어전공치고는 글이 별로네, 국어전공자라면서 맞춤법이 왜 이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전공을 밝히기 꺼리게 된다. 물론 ‘되가 맞니 돼가 맞니?’와 같이 간단한 질문에 대답하는 건 꽤 쉽고 썩 뿌듯한 일이다.     


한번 교양과목을 듣는 셈 치고, 역사학과의 전공수업을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교수가 무어라 무어라 질문하면, 학생들의 입에선 고려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이 하나의 랩 가사처럼 줄줄 흘러나왔다. 이 정도는 돼야 전공자라고 할 수 있겠구나. 놀라움과 부러움에 잔뜩 기가 죽어서 금방 수강정정을 해버렸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는 이유로 국어전공자가 되었는데, 어찌하다보니 시도 쓰게 되었고, 국어가 조금 더 좋아져서 국어교육전공으로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요즈음에는 교생실습을 하느라 바쁘다. 세상물정 모르던 고3 때의 결정이 인생의 방향에 무시 못 할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즉흥적인 결정이 내 인생의 길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무섭고. 참 놀랍다. 나뿐이랴, 내 수많은 친구들이 그랬듯.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린 날의 전공 선택에 운명이 뒤바뀌었을까.      


한 달 남짓한 교생실습이 거의 다 끝나간다. 담당하고 있는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의 웃음을 보면서, 매일 매일 분에 넘치는 행복감을 느낀다. 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하루하루 피곤하지만 시간이 가는 것이 참 아쉽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는 그 단순한 이유로 전공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이 아름다운 날들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매일 그 신기함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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