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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y 01. 2018

어벤져스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 과감한 방식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킨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 집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이 있었다. 당시로서도 신간은 아닌 90년대 초중반 나온 책이었다. 정확한 책이름은 기억할 수 없지만 대략 ‘유머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 와 같은 느낌의 제목이었다. 아홉 살 쯤 되었던 나는 그 어린 날부터 성공에 뜻이 있었던 것인지 아무튼 그 책을 명절 연휴동안 읽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이야 당연히 까먹어버렸지만 아직도 내가 그 책을 통해 지키고 있는 하나의 원칙이 있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때는 절대 기대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게.’ 라고 말하는 순간 나에게는 신동엽의 말빨, 그 이상이 필요해진다.     


이번의 어벤져스는 ‘내가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게’하고 영화를 시작한 것과 다름없다. 10년 동안 무수히 많은 영웅들을 월간 윤종신 마냥 발표해왔던 마블의 그 모든 시리즈는 ‘인피니티 워’를 향했다. 무엇을 준비하든 그 이상을 상상하고 있을 관객들을 사로잡아야 하는 상황. 그런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마블은 성공했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면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를 재미있게만 만들기에 마블의 여정이 너무나 길었다. 그냥 좋은 시를 쓰는 것과 백일장에서 입상하는 것이 다른 문제이듯, 인피니 워에서는 지켜야할 필수 사항이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등장한 수많은 영웅들에게 각자의 역할과  분량을 할당하는 문제, 높아진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액션과 대규모 전투신. 마블의 골수 팬들도, 마블을 잘 모르지만 아무튼 재밌고 싶어하는 가벼운 관객들의 취향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너무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뻔하지 않은 스토리.


그뿐만이 아니다. 지켜야할 조건들은 사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이전 시리즈와의 연계성, 떡밥 회수, 복잡한 계약과 촬영, 그리고 투자 문제 등등 사실 이런 조건들을 충족하면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마블이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

나는 두 달 전 인피니티 이전의 마지막 마블 무비 ‘블랙 팬서’를 보고 이런 코멘트를 적었다.      

‘이제 마블의 영웅들은 더 힘겹게 이겨야한다. 혹은 져야한다.’     


나는 인피니워의 결말을 예상하면서 ‘말도 안 될 정도로 힘겹게 이기거나, 혹은 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구에서 뿅뿅거리는 악당들에게도 허덕이는 우리 어벤져스가 우주적 스케일의 최고 악당을 같은 방식으로 (처음엔 밀리다가 마지막에 각성해서 이기는 발단-전개-위기-절정-해소의 전형적 구조) 이긴다면, 결국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말 어벤져스가 졌다.(설마했는데 진짜.) 하지만 이 패배를 몇 명이 죽고, 우주가 타노스의 손에 넘어가는, 일반적인 패배의 모습이 아니라, 주요 캐릭터 대부분이 사망하고, 승리한 타노스마저 기뻐하지 않는 등의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냈다.     


계약이 끝나거나 곧 끝날 것으로 알려진 토르, 아이언 맨, 캡틴 아메리카가 살아남고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스파이더 맨, 닥터 스트레인지, 블랙팬서를 비롯한 젊은 히어로들이 사망했다. 모두의 예상을 깼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

그렇다면 앞으로 있을 어벤져스는 어떻게 진행될까.      


나는 사망한 히어로들과, 살아남은 히어로들. 그리고 그들이 사망한 방식에 조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죽는 방식은 힘없이 픽 쓰러지며 시체를 남기는 방식이 아니었다. 불에 탄 종이가 흩어지듯이 가루나 바스라진 낙엽처럼 조각지며 사라질 뿐이었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누군가의 흔적이라고 볼 수 없는 작고 무수한 조각들 뿐이고, 그마저도 바람에 날린다. 이는 우리에게 죽음(Death)보다는 사라짐(Disappear)에 가까운 기분을 준다. 주요 영웅들은 비록 패배의 대가로 죽었지만, 시체를 남기지 않는 죽음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이는 시체를 남기고 죽는 비전, 로키와 대조된다. (이렇게 죽는 모습을 현현하게 보여준 로키와 비전은 아마도 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역할을 다하기도 했다. 로키는 시종 유다같은 배신자의 면모를 보여줬지만 막판에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면서 자신에 대한 변명을 다했고, 비전의 역할은 타노스를 지구에 불러들이는 것 외에 없었다.)


타노스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별반 기뻐하지 않았다. (심지어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한다.) 다음 편에서 그가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건네받은 타임 스톤을 사용한다면, 이를 되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신화적 모티프를 가지고 와서 페르세포네를 구하러 저승으로 가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가 변주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살아남은 아이언 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등은 영계나 혹은 그 비슷한 곳으로 떠나고, 사라진 젊은 영웅들을 자신들의 희생을 통해 구해내면서 영광스럽게 은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두에게 기대를 주고, 과감한 방식으로 관객들을 설득시키는 마블과, 이번 영화가 놀라웠다. 어벤져스4가 지나면 아무래도 히어로 물은 한동안 힘이 빠질 수밖에 없겠지만 아직까지는 여전히 유효하고, 나는 다음 편을 변함없이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미리 보았다는, 단 하나의 승리한 미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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