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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y 21. 2018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 영화와 만나는 완벽한 자세

나는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하는 매 순간마다 설렌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게 백 번은 넘었을 텐데도 그 기분은 여전하다.      

극장에서,

자리에 앉으면 어딘가 조금 불편하다. 뭔가 걸리적거리고, 앞사람의 머리카락이 화면을 가리든 가리지 않든 어딘가 거슬리고, 뒷좌석 사람들의 대화소리는 내 귀에 잘도 들린다. 사람이 꽉 차있을 때는 오른쪽이 내 것인지 왼쪽이 내 것인지 모를 팔걸이에 눈치를 보며 팔을 걸친다. 누군가와 같이 보러 가면 고개를 좌,우로 돌려 귓속말로 몇 마디 소곤거린다.(나는 적당히 할 말이 없어도 극장에서 하는 귓속말이 좋다.) 영화관 광고는 시원시원해서 가끔 볼 맛이 난다. 그러다가 갑자기 소란스럽던 극장의 불이 뜬금없이 꺼지는 것이다. 소리도 없이. 그럼 관객석도 일시에 조용해지고, 화재 시 대피경로를 안내하는 영상이 나오고, 극장과, 배급사의 시그니쳐 영상이 나오고, 영화사의 로고영상도 나온다. (가끔 외국 영화사의 로고영상이 영화인줄 알고 ‘헙.’ 집중하는데 몇 초 만에 싱겁게 사라지면서 나를 허무하게 하기도 한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스피커에서는 본격적인 영화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불이 켜져 있는 소란스러운 극장에, 불이 꺼지고 자질구레한 토막 영상들이 지나가고 나면 마치 터널을 지난 후 밖으로 나오듯이 영화의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일종의 어떤 의식같이. 현실과 가상의 분리된 세계가 그 자질구레한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단절되었다가 이어지는 것 같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영화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첫 번째 자극은 소리다. 그 소리는 보통 대사보다는 잡음일 때가 많은데 일종의 소음 같은 것이다. 마이크로 새어 들어간 영화 속 세계의 일상 소음. 그게 극장의 거대한 스피커에서 조금 먼 듯한 느낌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나는 의식도 못한 채로 어느새 영화에 몰입하고 있다.        


짱구 극장판은 매년 나온다던데, 나는 두 세편을 봤다. 그 중에서 ‘폭풍을 부르는 석양의 카스카베 보이즈’ 편이 인상 깊었다. 영화관에서 영화 속 세계로 들어간 짱구 일행이 영화 속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영화 바깥으로 빠져나온다는 이야기인데, 나에게 영화보기란 매번 ‘석양의 카스카베’나 마찬가지다. 카메라의 렌즈로 들어갔던 빛은 영사기를 통해 다시 스크린에 비치고. 나는 그 스크린을 통해서 내가 아닌 미지의 삶을 안전하게 경험한 다음 빠져나온다. 숨 막힐 듯이 무서운 영화도 내 몸의 털끝하나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영화의 진짜 묘미가 아닐까.     

나는 영화를 참 많이 보는 편인데, 거의 대부분은 넷플릭스, 왓챠플레이를 통해서 본다. 유튜브로 단편을 구매해서 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렇게 봐서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겠냐는 말을 하지만 영화를 감상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극장과 극장이 아닌 곳에서의 감상 차이는 큰 스크린에서 오는 영상미나, 화끈한 음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눈은 어떤 사이즈의 화면이든지 적응하게 되어 있고, 적당한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도 소리는 생생하게 전달된다. 진짜 차이는 밝은 영화관의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서 환한 세상이 열리는 그 사이의 순간. 그 때 발생하는 나의 자세에서 온다. 영화를 받아들일 완벽한 자세. 어떤 자세로 영화를 봤느냐가 사실은 영화를 감상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매번 새로운 영화를 볼 때 마다 극장에서 느끼는 그 설렘은 아마도 그 극장의 분위기와 나의 자세가 연결되는 기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한다.

나는 죽을 때 까지 영화를 볼 것이다. 과학기술은 예측불가능하게 발전하고 있어서 앞으로 극장과 영화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극장의 불이 꺼지고 다시 켜지는, 노란 빛의 마법 같은 순간을 앞으로도 죽- 사랑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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