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퍼스트 맨’ 리뷰
아폴로 11호와 달 착륙에 대한 영화를 만들자면, 닐 암스트롱은 어쩌면 조금 진부한 소재일 수 있다. 우리는 달에 착륙한 첫 번째 우주인이 닐 암스트롱이라는 것을 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명언 ‘이것은 한 인간에 있어서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 있어서는 위대한 도약이다.’도 익히 알려져 있다.
주인공으로 가공하기에는 달에 두 번째로 착륙한 ‘버즈 올드린’이 더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만큼, 상상력을 발휘하기에도 자유로울뿐만 아니라 그의 삶은 영화로 만들기 좋은 소스도 여럿 가지고 있다. 토이스토리의 주인공 버즈 라이트의 이름도 그에게서 왔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전설적인 전투기 파일럿이기도 했다. 달 표면에 딸의 이름을 남기고 온 로맨틱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감독이라면 닐 암스트롱의 그늘에 가린 비운의 우주인 버즈 올드린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이 더 욕심나지 않았을까. 달에 딸의 이름을 새기는 로맨틱한 장면과 묵묵히 2인자의 자리를 지키는 굳은 표정을 담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데미언 셔젤은 닐 암스트롱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퍼스트맨'은 대단히 좋은 영화다. 그렇다면 왜 닐 암스트롱이어야 했는가. 영화를 보고나서야 왜 묵묵한 2인자가 아니라 유명한 1인자에 대해 다뤘는지, 그리고 왜 영화 제목이 ‘퍼스트 맨’이어야 했는지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게 된다. 이 영화는 최초의 우주인과 그의 달 착륙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퍼스트vs퍼스트(도전과 우선순위)와 맨(개인)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랑하는 딸은 종양으로 인해 죽고, 실의에 빠진 ‘닐’은 얼마 전 자신이 낸 비행 사고의 여파로 근신 처분을 받는다. 그런 와중 그는 NASA의 우주비행사 모집공고를 보게 된다. 면접에서 진심과 용기있는 자세를 보이며 합격한 ‘닐’은 아폴로 프로젝트의 핵심 비행사가 되기 위해 훈련받는다. 동료들의 사망이나 정치적 후폭풍 등 여러 역경을 겪지만 담대하게 이겨내고 끝내는 달에 간다. 퍼스트 맨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퍼스트 맨’은 먼저 도전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수많은 반대론자와 회의론자들을 보면서 그들을 일종의 방해꾼처럼 느끼게 된다. ‘닐 암스트롱이 저렇게 노력하는데 귀찮게도 구는 군.’ 하면서. 허나 이는 시점의 농간에 불과하다.
아폴로 프로젝트에 투입된 예산은 현재 가치의 한화로 180조가 넘는다. 양 체제간의 자존심 대결일 뿐인 달 탐사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는다는 것. 명분도 없는 프로젝트에 불필요한 사망자까지 속출한다는 점은 반대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된다.
하지만 그들의 집요하고 허황된 도전과 노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어떻게 진보할 수 있었을까.항상 효율적이고 안전한 것을 택했다면 케네디의 말마따나 우리는 대서양을 비행기로 날아서 건널수도, 지구를 뚫고 날아가 우주를 개척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도전은 무모하고 위험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안주하는 사람들이 절대로 가닿을 수 없는 세계를 여는 열쇠가 되기도 하는 것. 영화는 이렇게 도전을 마냥 찬양할 수도, 마냥 비판할 수도 없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어느 한 쪽의 손을 명쾌하게 들어줄 수 없다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닐’이 보내는 시간은 건너뜀이 없이 부드러워 보이는데 반해, 가족들의 시간은 띄엄띄엄 급하게 간다. 딸이 아프다가 죽는 것도 순식간이고, 이사를 하는 것도, 새로운 아이를 배는 것도 급하게 넘어간다. 몇 분 전까지는 멀쩡하던 아내의 배가 한,두 씬 만에 불러있는 식이다. 그의 훈련은 차근차근 순서에 맞게 진행되지만 두 아들은 어느새 자라있다. 그는 가족을 퍼스트로 생각하는 남자이면서 인류의 도전이라는 과제도 퍼스트로 두어야 한다. 데미언 셔절의 전작 ‘라라랜드’에서도 두 주인공은 사랑과 꿈이라는 목표 사이에서 방황하는데, 이번 ‘퍼스트 맨’에서는 주인공이 가족과 도전이라는 목표 속에서 헤맨다. 이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다.
역사적 사건에서 개인은 상징화된다. 그들의 행적은 마치 이력서와 같이 굵직한 몇 개의 단어로만 설명된다. 영화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성취를 이루어낸 빛나는 개인에 대해 파고들면서 그 삶 속의 진한 그림자를 끄집어낸다. 이는 영화 ‘황산벌’에서 인상 깊은 장면 하나를 떠올리게도 한다. 계백이 출정하기 전 자신의 자식과 아내를 직접 죽이는 장면인데, 거기에서 계백의 아내는 순순히 죽어주지 않는다. 아이들을 온몸으로 감싸고 계백에게 욕을 퍼붓는다. 이런 장면들은 역사적 인물과 한 개인의 간극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퍼스트 맨’의 닐 암스트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영화를 되짚어볼 때 데미언 셔절 감독은 닐 암스트롱의 명언을 비틀어 영화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영화를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류 전체에 있어서는 위대한 도약이지만,
그 작은 걸음은 결국 한 인간의 것이다.’
p.s
이로써 우주영화 Best 5가 완성된 기분이다.
2018.10.19, 용산 아이파크몰 CGV I-MAX관, J-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