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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y 24. 2018

형한테는 형이 없잖아

- 나는 형을 좋아하는 동생이다.

나에게 형은 조금 각별하다. 어릴 때는 많이도 싸웠는데, 형이 고등학교 가면서부터는 갑자기 잘해주기 시작했다. 뭘 잘못 먹었나, 하고 몇 달이나 경계했는데 꾸준히 잘해주었다. 우리 집 형편이 아주 안 좋았던 시기, 나에게 버팀목이 돼주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형은 고등학교 2학년 당 교보문고 앞에 있는 버거킹(지금은 없어진)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교가 끝나면 버스를 타고 경복궁까지 갔다가 늦은 밤에나 돌아오곤 했다. 피곤해하면서 뭘 사겠다고 그렇게 돈을 모으나 했는데 정작 월급날에는 어머니를 조금 드리고, 나에게는 옷을 몇 벌 사주었다. 60만원 쯤 되는 월급은 그렇게 슝 날아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굳이 알바를 하나 했다. 내가 옷에 크게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우리 집도 굶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무튼 형은 계속 알바를 했다. 당시에 여자친구가 있었으니 그 돈으로 소소한 데이트도 했을 것이다.

형은 고3때 기타를 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하고는 기타 입시에 매진했다. 기타를 사겠다고 새벽에 우유배달도 했다. 결국 샀다. 하지만 1년의 입시는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났다. 사실 실용음악과로 진학하기 위해서 1년 남짓한 입시생활은 턱없이 부족했다. 형은 재수를 했지만 그때도 알바로 바빴다. 이듬해 내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 형은 나에게 최초의 스마트폰, ‘아이폰’도 사주었다. 기죽지 말라는 배려였다. 옷 사라고 30만원도 쥐여주었다.


그리고 같은 해 형은 재수에서도 떨어지자 8월 군대에 갔다. 군대에 가기 두 달 전. 형은 갑자기 노트북을 사겠다더니 가지고 있던 음향장비를 다 처분했다. 기타 빼고 다 팔았다. 나는 형이 알바를 하며 하나씩 사모았던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봤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다. 형은 장비를 다 팔고 그 돈으로 노트북을 샀다.

‘군대 가면 어차피 2년 동안 못쓰게 될 텐데 차라리 전역하고 새 거를 사.’

나의 만류에도 형은 막무가내로 두 달 동안 노트북을 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정말 두 달 동안 매일 가지고 놀았다. 그리고 형은 나에게 노트북을 넘겨주고 슝- 군대로 떠났다.

‘대학가면 노트북이 되게 필요하다던데.’ 대학 간 친구들한테 그렇게 들었다면서. 그 한마디를 흘리는 말로 전했다. 그냥 사준다고 하면 안 받을 것을 아니까 그랬을 것이다.

형이 준 노트북으로 나는 과제도 하고, 영화도 보고, 글도 쓰고, 게임도 했다. 나는 다음 해에 군대에 갔다.

내가 군대에서 일병 쯤 됐을 때, 형은 전역을 했다. 워킹홀리데이를 하겠다며, 전역 후 몇 달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호주에 갔다. 시드니에서 친구와 함께 방을 잡아 도서관이나 술집의 화장실을 청소했다고 들었다. 나는 형이 어떻게 지내는지 페이스북을 통해서 간간이 확인했다.


내가 전역할 무렵에도 여전히 형은 호주였다. 형은 페이스북으로 자주 메시지를 보내며 내 안부를 물었다. 전역일이 언제라고? 그런 질문도 자주 했다. 형이 전역하는 날 용돈 보내줄게. 하면 나는 됐어. 괜찮아. 했다.

전역 날에 맞춰서 나는 카드에 있는 돈을 다써버렸다. 월급이 크게 많지도 않았고, 남은 후임들에게 간식을 잔뜩 사서 나눠주느라 남은 돈이 없었던 것이다. 전역을 하게 되면 으레 동기들과 술 한 잔을 하고 헤어지게 되는데, 밥 한 끼 사먹을 돈이 없어서 일단 동기에게 빌리기로 했다. 술과 밥을 다 먹고 나는 괜히 민망해서 돈이 없다는 걸 보여주려고 카드를 긁었다. 그런데 웬 걸. 결제가 잘 됐다. 친구들은 ‘좀 남았나보다.’ 하고 나는 ‘그럴 리가 없는데.’ 했다.


근처 ATM기에 카드를 넣어보니 1,990,000원이 찍혔다. 형이 200만원을 보내준 거였다. 형에게 전화를 했다.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보냈어. 나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마음으로 물었다.


“형이 전역할 때 쯤에, 나가서 뭘 할지 리스트를 쭉 적었었거든. 여행도 하고, 옷도 사고, 이것 저것 살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형한텐 형이 없잖아. 막상 전역하고 보니까 돈이 없더라. 그걸 하려고 알바를 하니까 흥이 식어서 딱히 사고 싶었던 것도 그냥 그렇고. 하고 싶던 마음도 없어지더라구. 너도 아마 지금 하고 싶은 게 잔뜩 있을 텐데. 하고 싶을 때 형이 준 돈으로 바로바로 해봐. ”


형은 별 생각 없이 뱉었을 텐데, 나에게는 한 문장만 들렸다. 형에게는 형이 없다는 말이 왜 그렇게 슬펐는지. 나는 왈칵 울고 싶었다. 형이 없었던 형은, 사실은 얼마나 외롭고 불편했을까. 형은 나를 보면서 늘 과거의 자신도 함께 보았을 것이다. 사실은 늘 부족했던 과거의 자신을 쓰다듬듯이, 형은 늘 나를 챙겼던 것이다.

형의 용돈으로 나는 정말 전역과 동시에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사고 싶어 메모해놓았던 꽤 비싼 옷들도 몇 벌 사고, 다 낡았던 집의 컴퓨터도 바꾸었다. 그렇게 하고도 돈이 남아서 친구들과 술을 먹고, 신나게 노는 데에도 썼다.

친구들과 가끔 대화하다 보면, 각자의 형제, 자매를 신나게 험담하는 시간도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별로 할 말이 없다. 나보다 형을 좋아하는 동생은 없을 거라고 속으로만 생각한다. 너희 형은 어때? 누군가 그렇게 물으면. 잘해줘. 우리 형 진짜 좋아. 나는 늘 그렇게 대답한다.


형은 한국에 들어와서 다시 기타입시를 시작했고, 그때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형에게 용돈을 거의 매달 주었지만, 형에게 받은 것에 비하면 턱없는 액수였다.

나는 슬픈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어도 전혀 눈물이 나지 않는데, 가끔 형 생각을 하면 고맙고 미안해서 혼자 울컥하곤 한다. 글을 쓰는 지금도 약간 짠하다.

오늘은 우유가 건강에 안 좋다는 얘기가 있더라면서, 너무 많이 먹지 말라는 형의 카톡을 받았다. 그거 별 근거도 없는 말이야. 라고 답장하려다가. 한 달 쯤 끊어봐야겠다. 그렇게 답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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