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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y 24. 2018

글 잘 쓰는 예쁜 누나

- 미숙한 것도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것에는 별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 그냥 책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갔다. 막상 가고 보니 문학소년, 소녀들은 별로 없었다. 대체로 점수를 맞춰오거나, 다른 과에 지망했으나 떨어진 아이들이었다. 수능을 보기 싫어서 수시로 빨리 합격해버린 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복학한 후에 과목의 학년 구분은 아예 없어졌지만, 내가 1학년 때에는 과목 옆에 권장 학년 비슷하게 붙어있었다. ‘현대시론 (4학년)’ 이런 식이었다. 1학년도 수강할 수는 있었지만, 대체로 학년에 맞게 수강하는 편이었다. 나는 허세일지 고집일지 모를 마음으로 4학년이 대부분인 현대시론을 신청해서 듣게 되었다.       

교수님은 나이가 아주 많으신 분이었다. 등단시인이셨고, 계간 문예지에도 편집장으로 계셨다. 아주 완고하고, 근엄하고, 항상 불만이 많아 보는 인상이셨다. 중간고사 과제는 시 한 편씩을 써오는 것이었는데, 제출한 다음 시간에 우리 모두의 눈 앞에서 시를 쫙쫙 찢어버리셨다.      


‘이건 시가 아니야. 국문학과 4학년씩이나 되는 것들이 시 한 편을 못 쓰나?’     


지금 생각해보면 시가 아니긴 했다. 내가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로부터 거의 오년이 지나서였고, 당시에는 어설프게 흉내만 낸 글자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었으니 그런 반응을 보이실 만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조금 충격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너희들은 시를 쓸 줄 모르는데, 평가는 해야 하니까 시 대신 수필을 한 편 씩 써오거라.’   

  

시를 쓸 줄 모르니까 알려주는 게 당신 역할이잖아요. 그렇게 반문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냥 수필을 써갔다.      

다음시간에 수업에 들어가니 교수님이 수필을 다 읽어보셨는지 잘 쓴 수필 두, 세 편을 뽑아놓으셨다. 그 중 한 편은 4학년 선배 누나의 글이었다. 교수님은 나와서 읽어보라고 하셨고. 그 누나는 앞에서 자신의 수필을 읽기 시작했다.     


계란프라이에 대한 글이었다. 계란프라이의 익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이름들과 사람마다 선호하는 익힘 정도로 사람의 성격을 추측해볼 수 있겠다는 내용이었는데, 무슨 전업작가가 쓴 것 마냥 깔끔하고 세련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때 심한 부끄러움과 부러움을 느끼면서, 나도 4학년 쯤 되면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막연한 기대를 했다.     


그 누나는 친해질 기회도 없이 금방 졸업해버렸다. 가끔 과방에 가서 마주치면 온화하게 인사를 해주고, 말을 붙여주긴 하였으나 그 뿐이었다. 나는 4학년 쯤 된 어느 날 글쓰기 과제를 하면서 그 누나를 떠올린 적이 있었다. 내가 쓴 글을 다시 한 번 소리 내서 읽어보면서 그 계란프라이 수필과 막연하게 비교해보았다. 1학년 때보다는 많이 늘었나. 아마도 그런 것 같네. 자화자찬했다.     

4학년 때 나는 학과 교수님이 자그맣게 꾸린 문예창작동아리에서 활동했었는데, 교수님은 내 시를 참 좋아하셨다. 서댐군. 계속 시를 썼으면 좋겠는데. 교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렇게 할게요. 하고 대답했다.(하지만 작년에는 한 두 편의 시를 썼을 뿐이었다. 시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졸업 직전에 한 후배는 나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저도 형처럼 시를 쓰고 싶어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는 그 ‘글 잘 쓰는 예쁜 누나’의 후계자가 된 셈이었다. 네가 부러워할 만한 능력이 나에게 전혀 없어. 하고 대답했다. 진심이었다. 좁은 동아리에 글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보니 나를 잘 쓰는 사람으로 오해한 것일 테지. 민망해서 그 후배의 정신을 교정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나서 문득 나는 그때의 글 잘 쓰는 예쁜 누나를 떠올렸다. 아마도 내가 그 누나에게 같은 오해를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누나와, 나와, 후배의 얼굴을 번갈아 떠올렸다.


어설픈 사람도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겠다.


그렇게 미숙한 사람이 미숙한 사람을 조금씩 부러워하며 성장하는 게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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