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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un 18. 2018

이겨도 져도, 우리의 승리 우리의 패배

- 스웨덴전을 앞두고.

1998년 월드컵은 아직도 생생하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나는 엄마 무릎에 앉아서 경기를 봤다. 엄마는 양 손으로 내 손목을 잡고 박수를 막 쳤다. 날쌘돌이 서정원을 소리치던 해설자와 엄마를 따라, 나도 날쌘돌이 서정원을 발음했다.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지만, 우리 네 식구는 월드컵을 신나게 즐겼다. 아까운 골 찬스를 놓칠 때마다 아빠의 고함과 탄식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2002년 월드컵, 스페인전은 극적인 승부차기 접전이 벌어졌다. 나는 처음 세 번씩 골을 주고받을 때까지는 베란다에 나가 있었다. 한 골을 넣을 때마다 아파트 단지에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함성이 터져 나왔기 때문에, 그걸 구경하려고 그랬다. 마지막 홍명보의 슛이 골 망을 갈랐을 때, 스피커를 틀어놓은 듯한 사람들의 함성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나라에 있어 가장 절망적인 조편성이 되었다. 세계 최강이라고 불리는 독일과, 전통의 강호 멕시코. 우월한 신체조건과 조직력의 스웨덴. 스포츠는 모르는 것이라지만 아무래도 1승의 가능성이 많아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오늘 첫 경기를 기다리면서 조금 안타까운 것은, 신태용 감독을 향하는 날선 비판과 조롱이다. 축구에서 감독의 역량은 승패를 가르는 주요한 요인이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실력이 엇비슷할 때 통하는 이야기다. 객관적인 전력이 절대 약세인 상태에서 전술은 한계가 있다. 결국 경기는 선수가 한다. 그리고 선수들 사이에서 극복할 수 없는 실력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데 여전히 사람들은 2002년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희일비하며 모든 탓을 선수와 감독에게 돌리고 있다. 혹자는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투지의 문제라고 하던데. 참 야박하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군대에서 한 선임은 내가 무언가 실수할 때마다, ‘내가 너 실수한 거 때문에 화내는게 아니야 임마. 넌 정신상태가 글러먹었어.’라고 말했었는데. 그 선임은 해이한 정신상태라도 실수하지 않았다면 나를 절대 혼내지 않았을 것이다. 선수들의 정신상태를 지적하는 댓글을 보면 나는 자꾸 그때의 선임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월드컵으로 가는 평가전은 모조리 보았는데. 내 생각에 설렁설렁 뛰는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기량의 차이였을 뿐, 실수에 관대하지도 않았다. 선수들은 분한 마음을 표현해도 인성논란, 패배에 순응해도 승부욕논란에 휩싸인다. 경기장에서 웃으면서 서로를 독려하면 배알도 없는 놈들이라고 비난하고, 인상을 쓰면 동료애가 없다고 한다.


주요 멤버들이 부상으로 줄줄이 탈락하고, 월드컵을 1년도 남기지 않고 부임한 감독에 대해서 조금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야 함은 마땅하다.

(패배의 책임을 온통 감독으로 돌리기 바쁘니, 축구협회도 자꾸 감독을 갈아치우며 면피한다.)     


나는 월드컵 같은 세계대회에서는 항상 결과의 재미보다 과정의 재미를 추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축제에서 설령 부끄러운 수준의 참패를 당하더라도 아쉬움을 같이 짊어질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나. 이기면 우리의 승리, 지면 너희의 패배가 되는 이기적인 응원 말고 적어도 90분 이내에 콜드게임이 없는 이 각본 없는 드라마를 모두가 즐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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