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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Sep 07. 2018

노래, 이렇게 들어보세요

- 소리의 조각들

원래는 제목을 ‘음악을 듣는 방법’같은 것으로 지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음악 듣는 데 방법이 있을 리 없을뿐더러 오만해보이기까지 해서, 넌지시 제안하는 방식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래도 몇 분은 ‘네가 뭔데 제안 같은 걸 해?’ 라고 생각하있을 것 같아 처음으로 존댓말로 적어봅니다.

 

제가 음악 듣는 데에도 방법 비슷한 게 있다고 느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학교에서 밴드를 하던 형이 어느 날 친구에게서 헤드폰을 빌려와서는 제게 들어보라고 건네주었습니다. 두툼하고 세련된 소니 MDR시리즈 헤드폰이었습니다.

“이걸로 들으면 다른 게 있어?” 제가 물었고, 형은 별 표정도 없이

“소리도 안 뭉개지고 선명하게 들려.” 하고 답했습니다.

저는 핸드폰을 사면 공짜로 주는 싸구려 이어폰으로도 소리가 뭉개진다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뭉개진다.’는 표현을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이어폰과 헤드폰을 여러 번 번갈아가면서 들어보고 나서야, 그 말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소리나 멜로디에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악기들의 소리, 효과음 같은 것들이 선명히 들렸습니다. 소리의 조각들이었습니다.      


소리의 조각들  

   

대중가요를 편하게 노래,라고 칭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목소리나 멜로디, 가사를 의식하며 듣게 됩니다. 이를 노래의 정체성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해도 이상할 것은 없겠죠.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노래를 소리의 조각들이 모인 덩어리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저는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부분과 ‘따라 부를 수 없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 부를 수 있는 부분은 창법이나 멜로디, 가사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 이외에 노래에서 감지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소리의 조각들입니다. 여기에는 들릴 듯 말 듯 한 베이스 소리가 있고 비교적 잘 들리는 드럼 소리, 기타 소리가 있습니다. ‘MIDI’로 만들어낸 효과음도 있습니다.      


두 곡의 노래를 준비해 봤습니다. 제 글을 읽고 그대로 들어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BLUR- Girls And Boys     

유튜브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z1Ir489EpgI


베이스 소리는 대부분 노래의 기본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 음식에서 마늘정도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제육볶음에 설탕이나 소금, 고추장이 들어가도 마늘 없이는 무언가 애매한 맛이 나는 것처럼, 된장찌개에 된장을 넣어도 멸치육수가 없이는 허전한 맛이 되는 것처럼 베이스는 노래의 중심을 채워줍니다. 거의 모든 노래에는 베이스가 있습니다.

    

블러의 Girls And Boys는 16초부터 등장하는 베이스 리프(패턴의 반복)가 노래 끝날 때까지 반복됩니다. 처음 강조되는 베이스를 놓치지 않고 노래가 끝날 때까지 계속 들어보시면 베이스가 노래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묵묵하게 중심을 잡고 가는지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결코 튀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가장 단순한 음들을 반복합니다. 다른 노래들을 들을 때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둥둥거리는 베이스 소리에 집중하다보면 청각이 훨씬 예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이언 – Bulletproof   

유튜브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_nhq5z1ce14 (노래 23초부터 시작)


소리의 조각들과 만나는데 이보다 좋은 노래가 있을까요. 잘게 쪼개진 소리들이 좌,우 위,아래 앞,뒤에 가득합니다. 정박과 엇박으로 배치된 효과음들은 침울한 노래가 깔리는 공간을 가득하게 채웁니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멜로디와 가사들은 귀에 얹는다는 기분으로 놓고, 마구마구 뒤섞이는 소리의 조각들에 집중하다보면 정신없이 3분 37초가 지나가 있습니다.  


많은 노래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배경에서 수많은 조각들로 빈 공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오른쪽이나 왼쪽에 치우쳐있거나, 아주 짧게 나오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목소리와 멜로디만 따라가서는 놓치기 쉬운 부분들입니다. 숨은 그림처럼 노래의 소리들을 찾아보시면 새로운 기분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     


노래의 따라 부를 수 있는 부분과 따라 부를 수 없는 부분을 한꺼번에 듣기란 참 어렵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책을 읽으면서, 공부를 하면서는 느낄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의 어느 시간을 꼭 내어서 음악 감상을 하는데 보내곤 하는데, 그때는 평소에 배경음악처럼 들을 때와 다른 마음으로 노래를 맞습니다. 눈을 감고, 헤드폰을 끼고, 노래의 모든 소리들을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같은 노래를 여러 번 들으면서 각기 다른 부분에 집중해봅니다. 같은 노래의 다양한 리메이크 곡을 한 번에 들어보기도 하고, 가사의 의미를 제 나름대로 해석해보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노래는 저에게 다른 온도와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파란색 같던 노래가 빨간색으로 다가오는가 하면, 절절하다고 느낀 가사가 유치하게 들리는 날도 있습니다. 진정한 음악 듣기란 그런 게 아닐까요. 성의 있게 듣고, 나름대로 이해하고, 매번 달라지는 나의 감정과 상황에 맞게 새롭게 느끼는 것.      


오늘은 언니네 이발관의 ‘인생은 금물’을 듣다가, 역시나 가사가 참 좋군. 기타도 참 발랄하네. 그러고 보니 베이스가 엄청 독특하구나. 같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소리의 조각들에 대한 글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느끼는 이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오지랖이 마구 치솟았습니다. 글을 읽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한번쯤 소리의 조각들을 의식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적었습니다. 그런 제안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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