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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Sep 08. 2018

'너의 의미'의 세 가지 해석

- 시 같은 노랫말, 시처럼 읽기

밥 딜런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충격이었으나, 가사를 문학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 충격은 단순히 없던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생겼다. 우리는 모두 가사가 문학의 일부임을 안다. 가사는 시와 같고, 시는 멜로디가 지면에 가라앉은 가사와 같다. 시와 노랫말은 한 뿌리에서 왔다. 그 근원은 우리의 마음인데, 그래서 모든 시와 가사에는 감정이 담겨있다. 때로는 숨기고, 가끔은 드러내지만 어느 쪽이든 하고 싶은 말의 일부만을 한다. 길어서 안 될 것은 없으나, 나는 조금 짧은 시와, 가사를 좋아한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은 가사를 물으면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산울림의 ‘너의 의미’를 꼽을 것이다. 이 노래는 거의 완전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흠잡을 데가 없다. 표절 시비에 걸릴 여지도 없다. 음악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그렇다. 짧지만 깊고, 쉽지만 어렵다. 하지만 모두에게 공감을 선물한다.      


나는 ‘너의 의미’를 세 가지 상황으로 각기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노랫말은 연애하고 있는 사람이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짝사랑하는 사람의 말 같기도 하고, 지나간 사랑의 기억 같기도 하다. 김창완 선생님이 아니래도 문제될 것은 없다. 내 마음에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므로. 노랫말을 나름대로 이해하는 일은 나에게 즐거운 놀이 같다.


어떤 식의 해석이 가장 좋을 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한 번 쯤은 사랑의 기억, 짝사랑의 기억, 이별의 기억이 있으니까. 가사풀이는 연애중, 짝사랑, 지나간 사랑의 기억에 대한 순서로 적어보았다.


연애중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연애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상대방의 모든 행동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된다. 허름한 골목길도 첫키스 장소라면 특별한 공간이 되는 것처럼 ‘너’의 모든 행동은 ‘나’에게 모두 특별해진다. 그것이 한 마디의 말이라도, 흔해빠진 웃음이라도 그렇다.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그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이 문장을 최대한 줄여본다면 ‘너는 나에게 약속이다’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너’는 ‘사랑’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좋을 텐데, 그렇다면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하기로 약속했다는 말이 된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고 싶은’ 너뿐만 아니라, ‘사랑할 수 없는’ 너의 모습까지도 사랑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너’의 웃는 눈빛이나 팔 벌리고 달려오는 모습은 기쁜 약속이 되겠지만,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흘리는 작은 눈빛도, 너의 쓸쓸한 뒷모습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은 ‘나’에게 힘겨운 약속이다. 하지만 힘에 겨워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힘겹지만 사랑하겠노라고 스스로 내뱉는 다짐에 가깝다.    


너의 모든 것은 내게로 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푸는 일과 같다.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 걸까, 너는 왜 나를 사랑하는 걸까. 너도 나만큼 행복할까, 우리는 어떻게 만나서 사랑하게 되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답을 할 수 없다. 애초에 정답이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는 데에는 별 논리적인 이유가 없다. 그래서 너의 모든 것은 나에게 문제이다. 해답지나 해설지 같은 것은 없다.    

 

슬픔은 간이역의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나’의 슬픔은 ‘너’로 극복된다. ‘너’를 만나기 전의 ‘나’는 온통 슬픔이었으나, 우연을 밟고 미끄러진 너는 향긋하게 나에게로 왔다. 스쳐 불어오듯이.


간이역은 소박함, 여유, 평화 같은 단어들과 닮았고, 그건 마치 우리의 사랑 같다. 여기엔 목적지를 향해 매시간 내달리지 않아도 되는 아늑함이 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한 기꺼움이 있다. 너는 거기 피어있는 한 송이 코스모스 같다. 화창한 8월의 하늘 아래에서.     


나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너 향해 창을 내리 바람드는 창을     


언제나 ‘너’를 볼 수 있는 곳에 ‘나’는 성을 짓고, 언제나 ‘너’를 바라보겠다고 한다. 창을 내겠다는 것은 창을 통해 바라보겠다는 것인데, 여기에서의 창은 유리창도, 창살달린 창도 아니다. 아무것도 막힌 바 없는 바람 드는 창이다. 왜냐하면 이 창은 열거나 닫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뭉게구름은 우리의 사랑이 늘 맑으리라는 ‘나’의 기대의 반영이고, 겁도 없이 바람 드는 창을 뚫은 이유는 비를 걱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짝사랑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짝사랑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을 때 그리고 나조차도 나를 확신할 수 없을 때 짝사랑에 머문다. 그럴 때는 ‘너’의 사소한 행동들까지 나에겐 너무도 중요해진다. 나를 보고 지은 웃음이나 별 시덥잖은 행동 하나하나에도 모두 의미를 부여하고, 기대한다. 짝사랑은 그런 것이다.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그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나’는 ‘너’를 사랑하므로 모든 초점이 ‘너’에게로 향해 있고 ‘너’의 작은 눈빛 하나하나, 너의 쓸쓸함까지도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의 짝사랑은 지키기 어려운 약속 같다.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해야 하는 사람의 마음은 약속을 할 때부터 그것을 지키지 못 할 때까지 내내 불편할 것이다. 멀찍이서 바라만 봐야하는 ‘나’의 사랑이 시작할 때부터 짝사랑의 결말이 날 때까지 내내 힘겨울 것임을 ‘나’는 안다.     


너의 모든 것은 내게로 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네      


‘네’가 ‘나’를 좋아할지. 어떻게 하면 나를 좋아하게 할 수 있을지. 너의 모든 말과 행동은 나에게 힌트가 되고 너는 수수께끼와도 같다. 호의였는지, 애정표현이었는지 고민하는 밤은 혼란스럽다. 만나면 어떤 말을 할지 생각하고, 거울을 보면서 표정을 연습하면서 ‘네’가 남긴 모든 기호들에 대한 의미를 해석한다. 왜냐하면, 짝사랑은 그런 것이니까.     


슬픔은 간이역의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나’는 사람들이 좀처럼 찾지 않는 간이역 같은 사람이다. 너는 나의 우주(cosmos)이다. 나는 너라는 질서에 압도적으로 지배된다. ‘나’는 ‘너’를 중심으로 공전하는데, 정작 ‘너’는 ‘나’를 의식조차 못하는 것 같아서 ‘나’의 슬픔은 그런 ‘너’로 인해 생겨난다. ‘너’를 사랑하지만 가질 수 없다는 것. 슬픈 일이지만 향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역시 짝사랑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나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너 향해 창을 내리 바람 드는 창을     


언제나 ‘너’를 볼 수 있는 곳에 ‘나’는 성을 짓고, 언제나 ‘너’를 바라보겠다고 한다. 창을 내겠다는 것은 창을 통해 바라보겠다는 것인데, 여기에서의 창은 유리창도, 창살달린 창도 아니다. 아무것도 막힌 바 없는 바람 드는 창이다. 왜냐하면 이 창은 열거나 닫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뭉게구름은 ‘너’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구름처럼 뭉친 하늘의 공간이다. 매일 ‘너’를 생각할 때마다 ‘너’는 ‘나’의 하늘에 뭉게뭉게 떠오르고, ‘나’는 거기에 성을 짓고 살고 싶다. 막힌 바 없는 바람 드는 창은 비가 오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아니라, 비가 와도 개의치 않겠다는 마음의 반영이다.  

   

지나간 사랑의 기억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네’가 남긴 행동들은 모두 ‘나’에게 여전히 큰 의미들로 남아있다. 나는 네가 남긴 의미들을 제외하고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이제는 볼 수 없는 너이기에 그 사소한 기억들은 하나같이 소중하고 커다랗다.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그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이제 너무 멀어져 버린 ‘너’는 사실 기억조차 희미하다. 너의 형체는 저만치 멀어져서 작은 눈빛 정도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헤어지던 날의 아련한 뒷모습은 사랑한 시간들을 무색하게 한다. 영원히 함께하자던 약속들은 덧없는 것으로, 미안함으로 박제되었다. 그것은 너무 힘겨운 약속이 되었다.     


너의 모든 것은 내게로 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네

      

‘너’와의 이별은 명료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갈수록 막연해지는 법이라서, ‘나’는 퍼즐을 이리저리 맞춰보는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한다. 이랬어야 할까, 저랬어야 할까, 우리는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없고, 이미 지나버린 사건 앞에서 무력하다. 되돌릴 수 없으니 수수께끼는 평생을 풀어도 풀리지 않을 테고 너의 의미를 되새기는 밤들은 아직도 한참이 남았을 것이다.     


슬픔은 간이역의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기차는 간이역에 매번 서지 않는다. 살아가는 어떤 순간마다 ‘나’는 마치 뜻하지 않은 역에 잠깐 정차한 기차처럼 ‘너’를 떠올린다. 이를테면 ‘너’와 걷던 길이나, 추억이 담긴 음식을 볼 때 그렇다. 갈등이 소각되어버린 추억은 늘 아름답다. 그래서 스치듯이 불어온 ‘너’의 기억은 향긋하기만 하다.      


나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너 향해 창을 내리 바람드는 창을     


‘너’는 어디에 있을까. 이제는 ‘너’의 소식조차 찾을 수 없기에 ‘나’는 저기 하늘에 성을 짓고 싶다. 거기라면 온 세상이 내려다보일테니까. 가끔은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너’를 궁금해 한다. ‘너’는 ‘나’의 일상 어느 순간마다 향긋하게 불어왔기 때문에, 그 성에는 바람 드는 창이 꼭 필요하다. 그 향기를 따라가야 ‘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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