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Nov 07. 2018

능숙해진다는 것

- 능숙과 미숙

능숙해질때마다 나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기분이다. 괴물이 되어가는 것 같다. 공식없이 푸는 문제에서 어느 순간 공식같은 게 생기면. 나는 삶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릴 것만 같다.     


능숙한 사람과 능숙한 사람이 만날 때 진심으로 통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에 맞는 가장 아름다운 말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그렇게 차갑다. 둘은 각자 아름다운 관계를 위해 노력했지만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     


미숙하고 불편한 많은 것들로부터 치일 때마다, 나는 조금 더 매끄러운 관계를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왔지만, 그래서 칭찬에 능숙해지고 인사에 능숙해지고, 대화에 능숙해지고, 적절히 화내는 것에 능숙해지고. 그렇게 능숙해져왔지만.


한편으로는 처음 겪는 감정에 조금 덜 아프려고, 만남과 헤어짐에 능숙해지고, 실수에 능숙해지고, 비난에 대처하는 것에 능숙해지고,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것에 능숙해져왔지만.

능숙해진다는 것은 능숙해질수록 본연의 연약함만 드러내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슬픈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무례할 정도로 당혹스러운 지적을 하고, 아픈 말을 내뱉고, 자기비하같은 것을 하면서 진심을 어필할 때도 있다. 조금 쓴 맛을 내고 벌레먹은 자국을 보여줌으로써 유기농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적절한 흠을 보여가면서 유기농임을 강조하는 모습조차 너무 능숙해지는 것을 보고 나는 한참 우울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자세는 회귀한다. 또 순환한다. 솔직함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면 어느 순간에는 완전히 사회적으로 변하고, 또 배려가 가식의 선으로 넘어가면 다시 자신을 되찾느라 애쓴다. 그렇게 돌고 돈다. 여전히, 완전한 나는 어디에도 없다.      


능숙한 성직자의 능숙한 기도를 듣고 있으면, 그 목소리는 내 마음이 아니라 고막에서만 진동한다. 그렇다고 수줍은 아이를 단상에 세워야하느냐면 또 그렇지도 않다. 그러니까 나는 능숙한 성직자였다가, 투박한 어린아이였다가를 반복하면서 기도를 하는 셈이다.


어떤 욕심일수도 있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을 눈으로 보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