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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Dec 12. 2018

노력보다 후회가 쉬운 것 같아서

- 밤은 후회한다

밤의 성질은 단순하다. 그 시간엔 어둠과 정적만 있다. 오감을 자극하는 신호들은 깊은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거된다.


불면증은 아니지만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밤에는 은근히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음악을 들어야 하고,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은 하루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하고, 내일 이후의 삶에 대한 걱정도 해야 하고, 난잡하게 떠오르는 공상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자잘한 액세서리일 뿐. 후회의 비중이 가장 크다. 후회는 늘 마지막까지 남는 숙제다.


그날치의 걱정이나 반성도 가벼울 리 없지만, 마지막까지 남는 후회의 무게는 확실히 그보다 더 무겁다. 밤에는 늘 후회를 한다. 짧게는 오늘, 멀게는 십수년전의 일들에 대해.


후회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왜 더 잘하지 못했을까. 더 열심히 해보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이 있다. 좀 더 깊게 빠지다보면 목을 조르는 가장 아픈 후회도 온다. 너무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 이때 나는 하염없이 작아진다. 뒤척인다.


솔직한 것이 완전한 소통의 방법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군 전역 후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한 번쯤 내키는 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무한으로 솔직해져볼까. 나는 예쁜 사람에게 예쁘다고 했다. 피곤한 사람에게 피곤하다고 했고, 소심한 사람에게 소심하다고 했고, 나대는 사람에게 나댄다고 했다.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했다. 그때의 나는 늘 당당했고 거침이 없었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는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은 의외로 내 눈치를 봤다. 솔직할수록 인기도 많아졌다. 예쁜 여자에게 고백도 받았다. 인생의 커다란 비밀을 깨달은 기분이었다. 이러면 되는 거였네. 나는 날카로운 말들을 흘리면서 나답게 살았다. 그 시절을 한정해서 본다면 지동설은 거짓이었다. 세상나를 중심으로 돌았다.


그리고 뒤늦게 몇 명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내뱉은 거침없이 솔직한 말들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의 오랜 아픔들. 소수였지만 나 따위의 편한 말에 그들은 오래 아파했다. 작은 부분이라 할 수 없었다.


비슷한 시기, 배를 타는 친구와 식사약속을 잡았다. 친구는 오랜 항해를 앞두고 있었다. 귀국까지 길게는 1년 까지도 걸릴 수 있다고 했다. 50도에 육박하는 기관실에서의 뱃일은 위험하고 고된 일이었다. 친구로서 응원과 격려를 해야 했을 타이밍이었다. 만나기로 한 전날이 되었는데 몸살기가 조금 있었다. 사실은 귀찮은 게 더 컸다. 여러모로 그럴듯한 핑계를 댈 수도 있었는데 ‘귀찮아서 그런데 마중은 안나갈게. 밥은 다음에 먹자.’ 입에서 나오는 대로 뱉었다. 단톡방에서 내 이기적인 메시지를 본 다른 친구가 말했다. “넌 솔직함을 가장한 개새끼야.” 농담조였지만 100퍼센트의 농담이 아니라는 것이 다 느껴졌다.


건방진 시간들이 차츰 지나고, 솔직함과 무례함이라는 단어를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 깨달음이 오고 나서야 나는 뒤늦게 겸손해지고, 사람들이 피곤하게 돌려 말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솔직할 용기가 없는 사람도 있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사람들이 실은 더 많다는 것. 그리고 나는 솔직할 용기만 있었던 천치였다는 것. 차곡차곡 마음에 자리했다. 그 사실은 꽤 아팠다.


그렇게 해서 겸손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이 되었냐하면 사실은 여전히 아니다. 해피엔딩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나는 왜 조금 더 열심히 살지 못하고, 왜 더 잘하지 못할까. 왜 나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이기적으로 굴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까.


내 마음을 해석하면서 이 노래를 썼다. 아마도 나는 노력보다 후회가 편해서 그런가보다. 그런 결론이었다. 나는 부지런하게 사는 것보다 나태하게 산 다음 후회하는 것이 더 편해서 그 쪽을 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배려하고 겸손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적당히 이기적으로 살면서 이따금 후회하는 것이 더 편해서 그 쪽을 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비겁하게도 노래의 제목을 지으면서도 ‘나는 밤에 후회한다.’거나 ‘밤에는 늘 후회한다.’라고 적지 않고, ‘밤이' 후회하는 이라고. 그렇게 떠넘겼다.


이 어린 버릇을 언제쯤 고칠까. 한동안 나의 밤 어둠은 후회라는 이름으로 나를 괴롭힐 것이다. 은 나를 위로하고 후회하는 편이지만 나는 여전히 보다  좋다. 어쩔 수 없이 위로보다는 후회에 가까운 사람인가보다.


윤동주는 ‘오늘 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말했지만 나의 밤은 오늘도 후회한다.


밤은 후회 한다
-
잠이 안 와 감은 눈 속으로 선명하게 들리는 내 목소리
참 미안해 나도 날 미워해 나 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서

밤은 후회라서 어둡고 어두운 것은 내 목을 조르네 멈춘 듯한 고요 속에
엎질러진 물은 마르지도 않고 축축한 허리에 퍼져 나를 잠 못 들게 하네

난 아무래도 변할 맘 없으면서 후회만 하기로 한 건가봐
날카로운 그 칼날에다 몇 글자 소리를 섞어 그대로 날리고만 있었나봐

짬이 안나 사과를 못 했어 그래 이건 초라한 변명이야
찬 이마 위 눈썹이 떠올라 그 얼굴은 내가 다 구긴 거지
/
밤은 후회라서 어둡고 어두운 것은 내 목을 조르네 멈춘 듯한 고요 속에
밤은 후회라서 마르지도 않고 축축한 허리에 퍼져 나를 잠 못 들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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