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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Oct 24. 2022

인체에 무해하나 먹지 마십시오

어린 시절, 겨울이면 초등학생들은 모두 일회용 손난로를 쥐고 다녔다. 똑딱이라고 불리던 쇳조각을 꺾으면 금세 따뜻해지던 것. 처음에는 말랑말랑하다가도, 한동안의 열 발산이 끝나고 나면 딱딱해졌다. 끓는 물에 넣으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 했지만, 다시 써 본 적은 없었다. 그냥 딱딱해진 손난로를 주물럭 거리면서 뽀득뽀득거리는 그 촉감을 한동안 느껴보는 정도였다.


손난로는 식으면서 서서히 딱딱해졌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눌러보다가 나중에는 이리저리 접어보고. 완전히 딱딱해지면 나는 그걸 씹기도 했다. 입에서 아삭아삭 거리는 기분이 독특했다. 처음에는 앞니로 잘근잘근 이빨자국을 내다가 나중에는 덥썩 물고 어금니로도 씹었다. 가끔은 그러다가 터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조금 시큼한 냄새가 났다는 것 말고는 더 기억이 없다.


그 무렵 일회용 손난로 뒷면에는 이런 저런 문구들이 적혀 있었는데 대체로 성분이라든지 제조사, 지역에 대한 정보였다. 권장 소비자가격이 적혀있었던 것도 같고. 하지만 지금까지도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는 건 한 줄의 경고 문구다.


'인체에 무해하나 먹지 마십시오'


그 문장이 참 이상하다 생각했다. '인체에 유해하니 먹지 마십시오.'라든가, '인체에 무해하니 드셔도 됩니다.'라고 적어야지, '인체에 무해하나 먹지 마십시오'라니. 가게에서 '판매중이지만 사지 마십시오'같은 문구를 발견하면 이런 기분일까. 하여튼 어린 날의 나는 그 문장을 중얼거려보면서 갸우뚱하고. 먹어보고 싶은 마음과 먹기 싫은 마음을 번갈아 느끼곤 했었다.


사실은 어릴 때도 그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음식이 아니니까, 먹어서 좋을 게 없다는 뜻이겠지. 그저 '무해함'과 '먹지 마시오'를 동시에 강조해보려는 제작사의 의도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나, 참으로 어쩔 수 없이.


어린 날의 나는 아직 그 이상을 생각해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식으면서 딱딱해지는 것이 손난로 뿐만은 아니라는 것을, 사랑의 마음이.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가. 열정 같은 것들이 모두 그와 같이 딱딱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무해하다 말하면서, 먹지는 말라는 것처럼. "싫다는 건 아닌데, 안하는 게 좋을 것 같아."같은 말을 내뱉게 되리라는 것을. 내 입으로 말하면서도 나조차 이해되지 않는 그런 어색한 문장들을 습관처럼 내뱉는 어른이 되리라는 것을. 


또 그 어린 날의 나는 예상할 수 있었으려나.


일회용 손난로가 인체에 무해하더라도 굳이 먹어 볼 필요가 없는 것처럼, 무해하지만 굳이 사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꽤나 있다는 것을. 무해하지만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으려나. 


무해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나에게든 남에게든 그것이 언제나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일회용 손난로를 떠올리며 늦은 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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